제자의 삶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18. 제자의 삶) / 눅 12:22-32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23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5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26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아시느니라 31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2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목숨은 귀한 것입니다.
저희 집사람 친구 사모님이 있는데 이분이 얼마 전 유방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지난번에 만나서 대화를 하는 가운데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누워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목숨이다. 세상에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목숨 앞에서는 다른 것이 없어서 불평을 한다든가 하는 것이 너무 사치스런 고민이요 문제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은 본문 23절에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24절에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부정한 새로 말씀하셨습니다(레 11:15, 신14:14). 왜 까마귀를 생각하라고 하셨습니까? 부정한 새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까마귀를 돌보시는데, 하물며 이런 부정한 새와는 비교도 안 되는 하나님의 일꾼들, 제자들을 위해 준비해 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74:19 “주의 멧비둘기의 생명을 들짐승에게 주지 마시며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숨이 귀한 것이기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기에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 3:16) 이것은 어떻게 우리가 목숨을 사용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십니다.
22절 하반절에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25절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하셨습니다. 헬라어 ‘키’ hJlikiva(헬리키아)는 ‘키, 나이, 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팔꿈치부터 손까지 말하는 한 규빗(창 6:15)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키를 이야기하지만 본문에서는 시간(시 39:5)의 개념으로 보아 생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염려한다고 우리의 생명을 늘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 우리가 할 수 없는, 생명을 연장시키는 일이 하나님이 보실 때는 아주 작은 일입니다. 우리가 염려한들 되지 않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올해 일본에 태풍이 10여 개가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지진 공포까지 겹쳐있습니다.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일본이지만 하나님이 바람한번 불고, 땅좀 흔들리게 하니까 아무 힘도 못씁니다. 하나님이 만일 태양을 조금만 더 쬐면 온도가 한 평균 20도만 더 올라가도 난리가 날겁니다. 반대로 해를 조금 물리거나 가려서 한 20도만 더 추워 지만 지구는 살아가기가 힘들어 질 겁니다. 하나님께 이런 일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일입니다. 출애굽기 15:8에 홍해를 가르신 것의 표현이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콧김한번 불었더니 바다 물이 갈라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채기 한 번하시면 지구가 마구 흔들릴지 모릅니다. 열왕기하 20:8-11에 보면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징조를 보이라고 이사야에게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생각하기를 태양이 10도를 나아가는 것보다 뒤로 물러가는 것이 더 어렵겠다고 생각되어 물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가 기도하고 난 후에 태양은 10도를 물러갔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먹을 것에 대해서는 까마귀(새)로 비유했으며, 입을 것에 대해서는 백합화로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27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28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라고 하십니다. 인간에 비하면 형편없는 가치를 가진 들풀의 꽃, 그리고 그 유한성이 있지만 그것이 살아있을 때는 솔로몬의 영광보다도 더 귀하게 하나님이 보살피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망정 현재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한다면,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할 우리들이 입을 것 때문에 문제가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요즘이야 대한민국 사람들은 먹고 입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40년 전쯤에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우리 나라는 2004년 10월 22일 수출 2,000억 달러 넘어섰습니다. 금년 연말까지 하면 2,500억불쯤 한다고 합니다. 정확히 40년 전인 1964년에 1억 달러를 돌파하고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수출의 날로 정했습니다. 당시에는 수출 1억 달러 목표를 할 수 있을까 의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40년만에 1억 달러에서 2,000억 달러가 된 것입니다. 지금 국민 소득이 1만 달러 정도인데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2만 달러가 되어야 한답니다. 그러면 수출은 4,000억 달러가 되어야 한답니다. 수출전선에 있는 분들 정말 고생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노력해서 된 것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축복해 주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작년 2003년 2월 10일 ‘케몬스 윌슨’이 90세에 세상을 떠나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태어난지 9살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미국의 경제가 최악인 대 공황 때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어서 50불을 빌려 팝콘 장사를 해서 1,700불을 법니다. 이 돈으로 집을 구합니다. 그리고 집을 다시 담보로 돈을 빌려서 쥬크박스(노래방 같은 것)를 만들어 몇 년 열심히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동업자에게 배신을 당해 망했습니다. 그는 세상에 낙담하고 죽기로 작심하고, 아내에게 “여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아직 당신은 한가지 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나는 당신이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부터 ‘케몬스 윌슨’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던 어느날 가족과 함께 워싱턴에 가서 값싼 호텔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이 너무 더럽고 지저분했습니다. 그 때 그는 값싸고 좋은 호텔을 만들 수는 없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싼 호텔을 드디어 하나 구해서 영업에 들어갑니다. 그 때 그는 호텔의 3대 원칙을 세우게 됩니다.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둘째. 십계명을 지킨다.
셋째. 손님을 활금율의 원칙에 따라 대접한다. 어린이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 정신으로 세계적인 홀리데인 호텔의 최고부자가 됩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는 먹고, 입고 사는 문제가 남의 이야기처럼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구촌에,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에 보면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인데 15명은 비만입니다. 이 마을에는 한해에 28명씩 태어나고 10명은 죽습니다. 그 중에 3명은 굶어죽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는 이렇게 죽어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이 사는 유대는 그야말로 로마가 좋은 것, 먹는 것, 돈이 될만한 것은 모두 빼앗아가 전쟁물자로 사용했습니다. 유대지방에 남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정말 살기가 힘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자연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예수님의 대부분의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출신입니다. 갈릴리바다는 이들에게 생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당시 어부라는 것은 아주 좋은 직업입니다. 왜냐하면 고기만 잡으면 그래도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모든 것을 버리고 무턱대고 예수님을 따라나선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제자들이 오죽 배가 고팠으면 안식에 하지 못할 밀 이삭을 따먹었겠습니까? 저는 오늘 너무 행복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내려가서 배부를 만큼 점심을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박수로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제자들에 비하면 오늘날 먹고, 입는 문제로 솔직히 하나님의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좀더 나은 생활, 편리하고 고급스러운 생활을 위해서 주님의 제자가 못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할 문제를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먹고, 입는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솔로몬보다 더 잘먹고 입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나아갑시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십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31절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입니다. 물질적 관심보다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물질의 축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영적 축복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물질적 축복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2차 대전 중에 한 비행기 조종사는 비행 훈련을 받으면서 교관으로부터 비행의 기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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