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25. 나의 알파와 오메가이신 예수님) / 본문 : 계1:8-20

오늘본문 8절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했는데 17절에서는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분이 곧 하나님이시오 예수그리스도이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삼위(성부, 성자, 성령)를 때로는 구분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의 개념으로 사용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에게 나타나신 현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은 밧모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자신에 대해서 친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중에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 부분은 8절과 11절 그리고 17절 하반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로부터 20절까지 삼위일체이신 예수님이 친히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1. 전능하신 분입니다.
본문 8절에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계시록에는 ‘전능자’(판토크라토르:pantokravtwr)라는 말이 9회 나옵니다. 앞으로 일어날 마지막의 세상 심판을 하시는 분은 곧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솔직히 하나님을 잘 모릅니다. 그분이 너무 크시고 우리의 지식의 한계로 그분을 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분은 자유로우시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한계를 뛰어넘으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안 되는 것이 없고,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나실 수 있습니다.
속도로 우리지구를 말해볼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을 축으로 하여 도는 아주 작은 별인데 태양 주위를 한번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입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속도는 시속 6만 6천 마일이라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입니다.
1997년 월드시리즈에서 플로리다의 마무리 투수 ‘롭 넨’이 던진 103마일(166키로)가 현재 야구 기록상으로는 가장 빠르게 던진 것입니다. 여객기는 이보다 7.4배 이상 빨리 날아갑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여객기의 속도는 최고 마하 1.2정도로 날아갑니다. 마하1이 초속 340미터니까 시속으로 환산하면, 340미터*3600초=1,224,000미터로 시속 1,224킬로미터로 가는 겁니다. 1마일이 1,609km이니까 대략 비행기보다 8만7천 배 이상 빠른 겁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도는 지구가 지금 흔들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얼마나 충격을 최소화하느냐는 겁니다. 흔들리지 않고 소음이 적은 차가 좋은 차입니다.
크기로 말하면,
태양은 은하수를 중심 축으로 그 주위를 공전하는데, 한번 도는데 약 2억 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우주에는 은하수와 같은 성군들이 수백만 개나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계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만드시고 지금도 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처음 나타나실 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소개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하사 너로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창 28: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은 것입니다
‘전능자’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타나는 곳은 욥기서입니다. 32번으로 성경 전체의 약 절반정도가 나오는 횟수입니다. 제일 처절한 고난 가운데서도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된 것이고 믿게된 것입니다.

2. 세상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알파’는 헬라의 첫 문자이며 ‘오메가’는 마지막 문자입니다. 영어의 ‘알파베트’라는 말은 헬라어의 알파, 베타를 말한 것입니다. 영어로 한다면 AB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어의 기원이 헬라어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17절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ejgwv eijmi oJ prw’to” kai; oJ e[scato”:에고 에이미 호 프로토스 카이 호 에스카토스)는 요한복음에서 요한이 “나는 …이니”로 사용한 것과 같은 뜻입니다. 회교와 불교에서는 윤회설로 끝이 없습니다. 돌고 도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끝이 있다고 말합니다. 시작하신 분이 있고 이 분이 끝도 책임지실 분입니다.
시작할 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하다말면 아니한만 못한 경우도 흔합니다. 특히 선한일과 믿음은 끝까지 해야할 일입니다.
‘끝을 맺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가 없다’(노자)
‘끝이 좋으면 모두가 좋다.’(셰익스피어)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그라시안)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고 반문합니다.

톨스토이가 쓴 글 중에 한 농부와 지주의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엄청난 땅을 가진 부자 지주가 농부에게 하루 종일 걸어서 그 안에 들어가는 땅을 주겠다고 말하자 한 평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죽을힘을 다해 뛰어서 해가 지기 전에 겨우 들어와 지주 앞에 쓰러졌습니다. 너무 피곤한 줄 알고 이제 그만 일어나 보게 했는데 숨어 끊어졌던 것입니다. 그 때 그 지주는 ‘한 평의 땅이면 족한데’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다 이 땅의 생애를 마쳐야 합니다. 우리 개인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세계 최고의 재벌인 빌게이츠가 자기의 대부분의 재산을 세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한 것을 읽었습니다. 자녀들에게 수십 억의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건설적이 아니라고 했으며, 이것이 자기 삶의 철학이라고 말했습니다. 존경할만한 말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 3:14)고 합니다. 세상의 끝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개인의 끝도 예수님께 있습니다.

3. 주님은 영존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끝까지 함께 할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시며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라고 했으며 하바국은 “선지자가 가로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자시여 주께서는 만세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를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를 세우셨나이다”(합 1:12)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하나님이 원칙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분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우리는 정신 못 차릴 겁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약속을 어기시거나 변경하신 적이 없습니다. 원칙이 없는 것처럼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시종일관’으로 일을 추진하는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고 하셨습니다.

4.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18절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것을 말합니다. 심판자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세상을 막 살아갑니까? 심판자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자기들이 심판합니다. 자신의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을 지적합니다. 자신은 꼭 심판에서 제외될 사람처럼 말합니다. 어찌 보면 자기자신이 신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악마가 천사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어이, 우리 지옥 식구들과 너네 천당 친구들과 축구 한게임 하자구!”
그러자 천사가 한참을 생각하고는 말했다.
“좋아. 하지만 우리가 이길껄? 전세계 슈퍼스타는 다 천당에 있잖아?”
그러자 악마가 말했습니다.
“낄낄낄.. 과연 그럴까? 심판이란 심판은 다 여기 있는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하시겠다고 말씀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서울시내버스기사들의 이야기입니다.
경쟁회사 버스가 추월해 갔습니다. 몇 번 버스라고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우리 쪽 버스 옆으로 갑자기 버스가 다가오더니 창문을 열고 기사끼리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예이 c8놈아 그렇게 차를 그렇게 몰면 어떡하냐?, 그런 너는 뭐가 잘 낫냐? 입에 담기 민망한 욕설이 오고갔습니다. 우리 쪽 기사는 더 열을 받았는지 상대방 버스를 따라가 내리더니 그 버스를 탔습니다. 그러자 그 버스 운전기사는 우리 쪽 버스 기사를 태운 채로 떠나버렸습니다. 우리 쪽 승객들은 기가 막혀서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내려야 하는 건지 그래도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하는 건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우리 쪽 기사가 승리한 장군처럼 위풍당당하게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인슈타인이 와도 설명이 안될 상황입니다. 이 재미있는 상황을 한 아줌마는 핸드폰으로 생중계 합니다. 그래서 이민 갔던 사람들이 미국은 재미없어서 못살겠다고 재 이민 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궁금증은 잠시 후 경찰이 버스를 따라오면서 풀렸습니다. 경찰이 앵앵거리며 따라오더니 버스를 옆으로 세우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빼앗아온 00번 버스 차 키를 내놔라!”고 방송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상황은 이렇게 된 겁니다. 우리 쪽 버스기사가 그쪽버스를 타고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춰 섰을 때 그쪽 버스 키를 잽싸게 빼 가지고 우리 쪽 버스로 달려온 겁니다. 그래서 경찰차가 따라와서 “버스키 내놔라!”고 방송을 한 겁니다.

이 버스기사들은 승객의 불편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영업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승객은 그저 짐짝처럼 필요 없으면 버려도 되는 것처럼 취급한 것입니다. 제일 많이 고객의 눈치를 보는 곳이 광고카피하는 곳입니다. 광고하나 만들기 위해서 수 없는 회의를 하는데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고객의 마음의 방향이 어디로 흐르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이 곧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 사랑하듯 하셨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막 7:11-12)라고 말씀하시면서 ‘고르반’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하심을 로마서 11:36절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는 시작을 말합니다.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는 현재 진행을 말합니다.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는 세상의 끝마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저와 여러분들의 주인이시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분이십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