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라(왕상)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열왕기 상서와 하서도 사무엘 상서와 하서처럼 히브리어 성경에는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히브리어 명칭은 말킴(왕들)입니다. 70인역 에서는 제3왕국기, 제4왕국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록자는 탈무드 성경 바바 바트라(Baba Bathra)에 의하면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레미야서와 열왕기 그리고 애가를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그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예레미야가 많은 영향을 미쳤고 같은 시대의 사람이 이미 있던 문서들을 자료로 삼아 옛 역사의 사건들에 관하여 기록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열왕기상 1-11장까지 약 40년 간의 역사(예루살렘)를 기록합니다.
열왕기상 12-22장까지 약 90년 간의 역사(유다, 이스라엘)를 기록합니다.

다윗 왕이 노쇠(70세)하자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졌습니다.
사람은 다 늙어 죽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가 늙는 것을 잘 모릅니다. 매일 보는 자기 얼굴이 늙은 것을 잘 모릅니다. 마음은 늘 28청춘입니다.

장군 요압과 제사장 아비하달(이스라엘 제사장)의 후원을 얻은 다윗의 넷째 아들 아도니아와 장군 브나야와 제사장 사독(유다 제사장)과 선지자 나단의 후원을 얻은 솔로몬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두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아도니아에 대해서 성경은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왕하 1:5)는 소개로 보아 다윗이 교육을 잘 못했습니다. ‘한 번도’ 아이에게 매를 때리거나 훈계도 한번 안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그 모양인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기억이 있는데 이것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남자아이는요 어머니가 교육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방향을 잡는데는 아버지가 확실히 교육해야 합니다.

암투가 벌어졌지만 솔로몬의 승리로 끝납니다.
아도니아와 솔로몬을 비교해 보면 장군은 요압과 브나야입니다. 요압은 군대총사령관입니다. 군사적인 면에서는 아비하달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대제사장이 두 명이었는데 대 제사장은 원래 한 명만 있어야 됩니다. 이 당시 대제사장이 두 명이 된 이유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왕이 되어서 7년 반을 다스렸는데 이 때 다윗 왕국의 제상이 된 사람이 사독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사울의 뒤를 이어 다윗과 왕권을 다투었던 이스보셋 때에 제사장이 된 사람이 아비하달입니다. 나중에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을 만들어 제사장이 두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도니아에게 없는 두 사람이 더 나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나단 선지자입니다. 제사장이 있었지만 나단 선지자의 지원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시킨 선지자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제사장 사독과 아비하달보다 이 시대의 영적 권위는 나단 선지자에게 있었다고 봅니다.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어머니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그 남편 우리아를 다윗이 죽였기 때문에 다윗에게 그렇게 애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솔로몬만 믿고 자식을 위해서만 산 어머니입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걸 수 있는 어머니가 솔로몬에게는 있었고 아도니아에게는 없었습니다. 결국 어머니와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을 설득하여 솔로몬을 왕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다윗이 죽기 직전에 솔로몬에게 제대로 당부합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왕하 2:2) 그럽니다. ‘우리도 그 길로 가고 있다’ 거기다 적어 놓으세요.

솔로몬 왕은 놀라운 지혜로 나라를 잘 다스리고 많은 부귀와 영광을 누렸으며 7년 걸려서 성전을 건축하고 13년 걸려 왕궁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노동력의 동원과 무거운 세금징수와 많은 이방인 비빈 들과 그들을 통해서 들어온 잡다한 우상 숭배 등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솔로몬의 성전을 다시 생각해야 됩니다. 과연 하나님이 그렇게 무리한 성전 건축 명령을 내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잘 해보겠다고 한 것까지는 문제삼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문제가 발생한 것은 그로 인한 이방과의 접촉과 우상숭배문화가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성전건축을 크게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문제생기는 교회가 많습니다. 꼭 경제적으로 감당이 안되어서 문제생긴 교회가 아니어도 많은 잡음과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 계속 건축위주로 가야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해 놓고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지만 그 하나님의 축복을 잘 다스리지 못하고 개인적인 향락을 위해 사용하다가 나라가 망하게 됩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두 번의 큰 죄를 지었지만 마지막으로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 2:3)
이 말씀이 솔로몬이 성전건축을 완공하고 난 후에 다시 강조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왕상 9:4) 더 읽어봅니다.
“6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7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에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왕상 9:6-7)라고 합니다. 이 엄중한 말씀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성전이라도 던져버리신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교회들을 볼 때 무엇을 느낍니까? 건물만 있고 말씀이 없는 교회들의 모습을 보지 않습니까?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교회가 말씀을 가르치지 않을 때 이단이 난무하고 성경을 가르친다는 이단들이 판을 치는 것입니다.
말씀 안 가르치고 솔로몬이 뭐하고 있었느냐 잘 살아 보겠다고 일꾼들을 불러들여 건축을 했는데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왕상 11:20)이 남았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외국인 100만 시대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왕은 두로 왕, 스바 여왕 등과 육상, 해상 이용해 교역을 시작합니다.
솔로몬이 무역하기 위해 받은 세금만 “솔로몬의 세입금의 무게가 금 육백육십육 달란트”(왕상 10:14)입니다. 현대적 가치로 이 금액이 정확히 어느 정도 되는지 알기 어렵지만 Living Bible에서는 2천만 달러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부강한 것까지는 큰 문제가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솔로몬 왕이 여자를 너무 좋아했다는 것입니다. 잘 사는 사람일수록, 잘 살게 될수록 믿음이 더 좋아야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기 쉽습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왕하 11:1). 3절에는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고 합니다. 여자들이 가만있습니까? 자기들 나라의 전통과 종교를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나라는 부강해 졌지만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하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분열 왕국이라는 참담한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분열 왕국시대(B.C. 933-722. 왕상 12장-왕하 17장)
솔로몬이 죽은 후 나라가 분열되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남쪽 두 지파의 왕이 되어 유다 왕국을 다스리고, 여로보암이 북쪽의 10지파를 규합하여 북쪽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웁니다.
그 이후 북쪽 이스라엘에는 아합 왕이나 여로보암 2세와 같은 영도력이 강한 왕들이 나오기는 했지만 정변이 많아 여러 왕이 암살되었고, 남쪽 유다에서는 르호보암의 후손이 대개 통치하였습니다.
당시의 예언자들은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 등이며 이들의 예언자 운동은 암흑기임에도 불구하고 영적 각성의 시기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열왕기상에는 북이스라엘 왕이 8대까지 소개됩니다. 북이스라엘에 19명의 왕이 있지만 1명도 선한 왕이 나오지 못했습니다. 어찌 이렇게 신앙이 없을 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갈릴리 지역으로 오셔서 사역을 하셨는데 이 지역이 북이스라엘 지역입니다. 이스라엘 열왕들(19명)이 못한 일을 예수께서 오셔서 말끔히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거의 다 지 지역 출신입니다.

유다 왕국의 역사(B.C. 722-561. 왕하 18장-25장)
남왕국의 왕은 모두 20명인데 북이스라엘이 패망한 후에 히스기야부터 하면 8왕이 더 이어졌습니다.
북왕국이 멸망할 때 남왕국 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습니다.
이사야의 경고에 감동되어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나라를 중흥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왕하 19장). 그 후 요시야 왕 때에 율법서를 발견하고 전국적인 종교 개혁을 단행합니다(왕하 22:-23:).

그러나 요시야 왕은 아깝게도 애굽과의 전쟁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친 애굽파와 친 바벨론파로 국론이 둘로 나뉘어 갈팡지팡하다가 586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게 점령되어 멸망하였습니다(왕하 24-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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