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시작

초대교회의 시작 / 행 2:37-42

교회란 말이 옛 히브리어로는 “카할”과 “에다하”라는 단어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모임이나 그 모인 사람들 자체를 의미했고 신약시대에는 “에클레시아”로서 이스라엘의 회중이 특별히 여호와 앞에 종교적인 목적으로 모였을 때를 의미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열국들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으로 불러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의 증인들로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요즈음 한국에서 잡다한 이방 종교들이 그 명칭에 “교회”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교회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모인 무리”가 교회인데 그 뜻에 어긋나게 주님을 부인하고 자신들을 신격화 시켜나가는 사이비 종파들이 교회란 말을 쓸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이 “교회”를 의미하는 말들이 많이 있는데 그 명칭들을 택함 받은 자들로, 아브라함의 후손들, 열두 지파로, 흩어진 나그네로, 하나님의 이스라엘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에는 “교회”를 직접교회로, 거룩한 자의 회중으로 정직한 자의 회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한 몸으로, 온몸으로, 그의 몸으로, 몸인 교회로, 그의 몸된 교회 가지(요15:1-16)로, 나의 심은 가지로, 그리스도의 지체로,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로,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교회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로, 장자들의 교회,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성도의 회,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 비둘기,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 하나님의 양, 양, 내 어린양, 내 양 ,한 무리, 장자들의 총회, 야곱의 하나님의 전, 금 촛대,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밭,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하늘의 예루살렘, 거룩한 성, 성상, 거룩한 산, 그리스도의 집, 신령한 집, 하나님의 권속, 주의 산업, 하나님의 이스라엘, 온 세상의 기쁨, 왕의 딸, 하나님의 나라 천국, 그의 나라, 내 나라, 주의나라, 어린양의 아내, 여호와의 분깃, 택하신 기업, 시온산, 여호와의 전의 산, 진리의 기둥과 터, 내 보좌의 처소, 새 예루살렘, 즐거운 분깃, 기쁨의 시내, 여호와의 성소, 그리스도의 누이, 버리지 아니한 성읍,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 하나님의 성전, 성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 포도원 영광스러운 교회, 성령의 전, 새 이스라엘 등으로 비유하며 표현하고 있습니다.

1. 교회 시작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는 “에클레시아-교회”란 말을 두 번밖에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첫 번째는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할 때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고 말씀하신 때이고 또 한 번은 형제가 범죄 했을 때 제자들이 해야 할 의무에 관하여 말씀하신 중에 “만일 그들의 말고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18:17)고 하실 때입니다.
그 후에 사도들의 서신에 보면 이 “교회”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많이 사용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갈1:2) 에는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 들의 모임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고 안디옥교회의 경우에는 그 부근의 같은 지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에 제자들을 모았고 이 제자들이 새 이스라엘의 핵심 인물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본질적으로 그 기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단순히 인간적인 기관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기에 달려 죽어 장사되었다가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다락방에서 기다리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 예루살렘에서 베드로를 중심한 사도들의 전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최초의 교회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고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과 가까운 장래에 재림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고 그의 생애와 죽으심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이 없었다면 교회는 형성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건과 성령주실 것을 믿은 제자들의 열성과 기도와 하나로 뭉친 마음이 시초가 되어서 결국은 “새 이스라엘”의 교회가 부흥과 발전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왜 “예수의 피로 사신교회”라고 부를 수 있느냐 하면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의 뿌리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줄 압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분명히 알지 못하여 신앙은 제쳐놓고 세상 의학으로는 못 고칠 병을 고치는 곳으로 알고 있거나 귀신 쫒아 내는 곳으로 알고 있으며 정신수양이나 하는 곳으로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 병 고쳐주면…..헌금도 하고, 교회에 다니겠다”라고 하기도 하고 “이 고민 해결해 주면………하겠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 데 참으로 잘못된 생각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된 이 교회는 먼저 예수를 메시야(구세주)로 믿어야 하며 병 고치는 것 고민 해결하는 것은 그 부수적인 결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정녀에게 탄생하심으로 이 세상에 오신 능력과 기적으로 교회를 세우셨고 그 몸으로 대속의 제사를 드림으로 주의 백성들을 사셨으며 죽은자 가운데서 영생을 얻도록 그를 살리셨고 성령을 보내시어서 성도들을 충만하고 넘치는 은혜아래 생활하게 하셨습니다.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목자와 양’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성전의 모퉁이 돌’로서 ‘대 제사장과 제사장 나라’로서 ‘머리와 많은 지체를 가진 몸’으로서 ‘신랑과 신부’로서 ‘많은 형제중의 첫 열매’로서 ‘주인과 종’으로 설명되고 있으며 이 설명들은 교회의 거룩함과 교회의 하나됨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교회는 성령 충만을 통하여 시작되었습니다. (행2:4)“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오늘 본문에 보니 성령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용기를 얻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으로서 성령은 임하였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작은 무리가 합심 기도하는 중에 성령은 임하셨습니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교회의 역사가 이룩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상근 주석’에 보면 “성령강림은 그리스도교회의 중요한 사건이라기 보다는 교회 그 자체의 탄생을 뜻한다”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교회의 시작이 되기 시작했다면 ‘성령강림은 그 시작을 힘있게 출발시켜준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힘을 얻은 베드로의 위대한 설교 앞에 듣는 무리들이 가슴이 찔려 통회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약 삼 천명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말로 한다면 교회는 오순절에 성령강림에 의해 태어났다고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교회의 기원을 이룩하시려 제자들을 불러 새 예루살렘 즉 새 이스라엘의 인원으로 지으셨고 이 인원을 가지고 성령의 힘이 그 속에 불에 넣어짐을 통해 교회는 조직되어 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3. 교회는 복음 증거를 위해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능력을 얻고 담대히 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의 진리를 증거 했습니다. 베드로의 전함을 듣고 주님께 돌아온 제자 수가 삼 천명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부터 지상생활과 기적이사의 능력 행하심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예언을 성취 하셨으며 이 분이 곧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지은 인류를 상기하게 하였더니 “우리가 어이할꼬”하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치던 군중들이 주님 앞으로 겸손히 머리 숙이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고전2:2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결론.
1) 교회에서 받는 것
38절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성령을 받으라”, 40절 “구원을 받으라”

1907년 평양 대부흥회가 길선주목사의 인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장대현교회에 모인 1500여명은 길목사의 설교에도 변화가 없었다. 기도도 터지지 못했고 성령의 은사도 임하지 않았다.그 때 길목사는 은혜의 단절은 자신의 탓이라 깨닫고 외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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