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요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 2:32)

요엘은 아달랴 6년에 걸친 왕위 찬탈 뒤에 여호야다에 의해 왕이 된 요아스 왕의 통치 초기에 사역하였습니다. 당시 어린 왕을 보필하던 제사장 여호야다는 여호와의 주권을 인정하는 새로운 언약을 세웠으며, 바알 신전을 파괴했습니다(대하 23:16). 요아스 왕은 이댤랴가 들여온 우상숭배를 척결하였으며 손상된 성전을 수리하였습니다(대하 24:7). 그리고 이 성전 수리를 위해 모금 운동을 벌였는데 큰 성공을 거두고 진정한 예배가 정착되도록 노력하던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외적 변화뿐만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예배가 드려지게 하기 위하여 요엘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엘 앞서 선지자 역할을 한 오바댜(여호와께 예배)의 이름의 뜻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요엘은 성령강림에 대해서 최초로 예언한 선지자입니다(욜 2:28-32).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하셨고(마 1:18, 20), 성령과 함께 활동하셨습니다(마 3:11, 눅 4:14, 눅 10:21).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그리고 오순절 날 성령이 강림하여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성경을 보고 바로 이해가 되면 별로 해석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고도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성경을 해석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절제된 해석이 필요합니다.  확대해석, 과잉해석은 금물입니다. 조금만 벗어나도 탈선의 위험이 있는 책입니다. 그것은 성경은 소설이 아니고, 또 저작자가 보이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능력이 많이 나타날 수록 위험요소가 많은 겁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 정치적인 판단, 이데올로기 등이 첨가되면 성경에서 통일교도 나오고 몰몬교도 나오고, 구원파도 나오고, 여호와의 증인 등 헤아릴 수 없는 이단이 나옵니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해석학적으로 요엘서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특별합니다.
첫째, 요엘서는 저작 연대와 ‘요엘’의 인물이 확실하지를 않습니다.
두 번째, 모든 예언자가 부르짖었던 것이 죄에 대한 책망인데 예언서 중에 두 권만 특이하게 죄에 대한 책망이 나오지 않습니다. 바로 ‘요엘’서와 ‘스가랴’서입니다.
그리고 예언서의 특징은 ‘죄책, 권면, 외로, 소망’이런 순서인데 ‘죄책’에 대해서 다루지 않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말로 하다가하다가 안되니까 매를 드는 것입니다.
매를 든 분은 아버지 하나님이신데 때리는 분은 “이 정도 맞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더 맞을 것을 이 정도로 끝내는 거야!” 그러시는데 맞은 자식은 너무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필요한 분이 누구냐! 엄마입니다. 엄마가 네가 왜 맞았는지 생각해봐라? 결코 많이 맞은 게 아니다? 그리고 앞으로 매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책이 요엘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분위기 파악이 먼저입니다. 다른 집에 가면 분위기가 어떤지 읽어야 합니다. 각 성경의 분위기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의 연속성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욜 1:3) “…말하고…말하고…말할 것이니라” 한글(개역개정) 성경에는 ‘말하고’가 세 번 나왔지만 원문에는 이에 해당하는 ‘싸파르’라는 단어는 한번만 나옵니다. 그 대신 ‘아들, 후손’(벤)이 세 번 나오고 도르(영원히), 아헤르(다음 세대, 영원)가 나옵니다. 말만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계시전달 자체보다는 계시의 연속성과 역사성이 강조된 명령입니다. 복음을 잇지 못하면 실패입니다. 현 시대에 크리스찬이 몇 %이냐, 교회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출석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철저한 심판을 말함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 1:4)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은 히브리어 “가잠(자르다), 아립베(많은 떼), 얄레크(급하게 갉아먹는 모습), 하실(끝장을 낸다)”를 번역한 것입니다. 메뚜기 떼로 심판을 하시는데 끝장을 내신다는 것입니다.

회개 촉구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욜 1:5) “깨어 울지어다”(하키추 우베크), “너희는 울지어다”(웨헤일리일루)는 모두 히필형의 남성복수 명령으로 비슷한 의미의 단어를 세 번에 걸쳐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지금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포도주에 취해 있다는 것입니다. B.C. 8세기 전반의 이스라엘(남북왕국)은 최고의 영화를 누리던 시기입니다. 아울러 사치가 팽배했던 시기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예후 왕조(예후(10년), 여호아하스(17년), 여호아스(16년), 여로보암2세(41년), 스가랴(6개월))시기이고, 남유다는 요아스(40년) 시대입니다.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욜 1:7)고 하십니다.
호세아가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을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조상들을 보기를 무화과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그들이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호 9:10)고 표현한 것을 기억합니다.

심판의 원인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욜 1:9). 소제와 전제는 매일 드리는 제사입니다(출 29:38-42, 레2장, 민 15:5). 요엘 선지자 당시 제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으로 드려지고 있었습니다(호 6:6, 암 4:4, 미 6:6). 제사가 드려지지 않는다는 것은 여호와와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관계가 파괴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판을 벗어나는 방법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욜 1:14)
‘금식일을 정하고’는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라는 말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대속죄일이 하루뿐이지만(레 16:29), 특별한 경우에 국가적으로 금식이 선포되었습니다(느 9:1-3, 렘 36:9) 그리고 장로들, 주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 온 국민이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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