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라(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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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요한복음의 기록연대는 최하한선을 A.D. 70년으로 추정하며 최대한계선은 사도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때 밧모섬으로 귀향 가기 전인 A.D. 96년으로 봅니다. 좁혀서는 85-90년경으로 봅니다.
기록 년대가 90년쯤인데 신약 27권 중에서 거의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성경입니다.
로마 황제의 3차례의 혹독한 박해가 지나갔고 이미 제자들이 모두 순교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전도 A.D. 70년 허물어졌던 시대입니다.

마가와 누가와 같은 복음서가 헬라 지방으로 전달된 지 약 25년 지났습니다.
마가복음이 전달될 때는 상당한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있던 성도들에게 목숨을 건 신앙생활을 독려했습니다. 누가는 복음의 시작부터 기록해 나갔으며 이를 통하여 헬라의 지식층과 고위층들까지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기여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약 25년이 지나서 헬라지방에는 교회를 위협하는 케렌티아니즘(Cerinthianism) 즉 케린투스의 영지주의(Gnosticism) 사상과 이원론에 입각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체를 부정하는 ‘가현설’(Docetsm)을 공박하기 위해 기술되었습니다. 영지주의는 이 때부터 3세기까지 이어졌던 왕성한 이 시대의 종교 다원주의적 종교입니다.
우리말로 ‘영지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앎”(gnosis:그노시스)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가 이런 종교(이론)에 부딪히게 된 것은, 복음이 헬라에 머물지 않고 세계로 퍼져나가는 과정에서 ‘페르시아의 영지주의’, ‘시리아-이집트의 영지주의’등과 자연스럽게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영지주의는 이 지역에서 기독교를 강력하게 부정하는 대립구도를 이끌었습니다. 영지주의는 헬라, 애굽, 페르시아, 인도의 신화와 그 나라들의 철학과 신지학(神知學)에서 대부분 끌어왔습니다. 

영지주의 특징은
첫째, 어떤 특정 계급만이 권세를 누리고, 인류의 대다수가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파멸에 이른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둘째, 요한이 나중에 좀더 구체적으로 요한 일서 2장 22절, 4장 2,3절에서 그 잘못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셋째,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저하시키려 했으며, 기독교를 자기들 나름대로의 곡해한 구약성서해석에 뜯어 맞추고 심지어 이방 종교의 가르침에까지 관련시키려 했습니다. 오피트 종파는 아담과 하와에게 ‘지식’을 가져다 준 뱀을 숭배하는 영지주의의 한 분파인데 이들은 하나님은 악하고, 뱀은 선하다고 가르쳤고, 바로 왕과 아합을 성자로 추켜세우고, 모세와 엘리야는 죄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한마디로 영지주의는 오늘날로 말하면 완전한 종교다원주의와 혼합종교의 형태를 띄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요한복음은 또렷하게 다음 네 가지 사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다’에 해당하는 ‘피스튜오’라는 단어가 98번이나 사용됩니다. 한마디로 요한복음은 믿음으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마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 것을 말합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요 1:7)
부활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라고 밝힘으로 요한이 이 성경을 왜 기록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말씀(로고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서두에 1:1-5 말씀과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우리를 구원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인데, 그 하나님이 어디 먼데 계신 것이 아니고, 또 지식 속에 계신 것이 아니고 바로 ‘말씀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선포합니다. 
또 오늘 본문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셋째, 요한복음은 영생에 대해서 말합니다. 생명과 구원, 영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만 올 수 있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으로 나오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아울러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만이 그 영원한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넷째, 속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없이 영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은 바로 제물인 것입니다. 죽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속죄의 양인 것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4-15)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세상의 생명을 위한 살”(6:51)이라고 하셨으며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요 10:11)이십니다.

이러한 것들을 예수께서 직접 “나는…이다”(에고 에이미)라는 자기 선언으로 직접 확인해 주셨습니다. 표를 확인해 주세요.
다섯째, 요한복음은 성령의 복음서입니다.
누가복음과 마찬가지로 요한복음도 성령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강조한다(요 3:5).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오셨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이시다”(요 4:24)고 말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주는 것은 영이지 육이 아님을 강조합니다(요 6:63). 요한복음서만이 성령을 “보혜사”(요 14:16, 14:26, 15:26, 16:6,13), 혹은 “진리의 영”(요 14:17, 15:13, 26)이란 특별한 명칭을 부여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활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명령한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성령의 복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며(요 14:8), 제자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며(요 16:13),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요 14:26). 언제나 성령과 함께 사람의 생각을 지배하고 계십니다.

여섯째, 사랑의 복음입니다.
사랑은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단어가 다른 복음서보다 배 이상 많이 사용되었습니다(마 10, 막 6+1, 눅 10+1, 요20+21). 요한복음은 사랑이 기독교윤리의 기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에는 “새 계명”이 주어집니다. “서로 사랑하라”(요 13:34, 15:12, 17)고 말씀하십니다.

위에서 요한복음의 여섯 가지 특징을 말씀드렸습니다. 잘 기억이 안 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생은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이 혼자 무엇을 깨달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이 땅에 말씀으로서, 생명으로서, 양의 문으로서, 선한 목자로, 부활의 주로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구원으로 문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힘으로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만 영생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 신가?’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없습니다.  예수는 위로부터, 하나님께로 오신분이십니다. 나의 구세주로 오신 분입니다. 오늘도 성령으로 나와 함께하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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