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빌립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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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6-11)

이 본문은 복음서 이후 신약성경에서 가장 뛰어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기독론) 정의요 함축된 복음입니다.
바울의 13권의 서신이 모두 특징이 있고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는 기독교의 ‘믿음’에 대한 확실하게 정리한 책으로 종교개혁자들이 좋아하던 책입니다. 또한 옥중서신 중에 에베소서, 골로새서는 교회론을 확고히 정립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책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바울 서신 중에 한 권의 책을 뽑으라면 저는 빌립보서를 뽑고싶습니다. 그동안의 여러 책들은 나름대로 교회에 문제가 발생했고 그에 대한 치유차원에서 보내졌습니다. 그 가운데 바울이 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책이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입니다. 고린도후서가 바울이 제일 섭섭하고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 기록된 서신이라면 반대로 제일 온화하고 사람과 감사를 가지고 기록한 성경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옥중서신 중에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가 두기고를 통해서 전달되었습니다. 이 세 지역은 아시아로 지역으로 방향이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의 7교회 서신이 보내어졌던 그 아래지역입니다. 그러나 빌립보서는 에바브로디도가 가지고 갑니다, 지역도 방향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는 옥중서신 중에서도 앞의 세 권하고는 별도의 시간에 별도의 장소에서 쓰여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드로아에서 배타고 마게도냐, 네압볼리에 도착하여 빌립보로 갈 때 시냇가에서 예배드리고 있던 몇 명의 유대인들을 만났습니다. 이 때 복음을 이들에게 들려주었는데 이 중에 루디아라는 자주색 옷감 장사를 하던 여자를 만나 바울을 강제로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행 16:14) 교회가 세워집니다. 이것이 유럽 최초의 교회입니다. 빌립보교회와 바울의 우정은 남다릅니다.

빌립보서는 교회로 보내지는 서신이지만 빌레몬서처럼 개인서신처럼 알려졌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바울이 공적인 면보다는 사적인 면이 더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적이라기 보다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그만큼 바울은 편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글도 제일 편안하게 쓴 것이 빌립보서입니다. 여러분 까다로운 사람이 많고 복잡하면 모든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사람이 어떤 사람이 좋겠습니까? 편안한 사람입니다. 처녀 총각 때야 이쁜 것, 멋을 밝히지요? 살다보면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편안한 사람이 제일 좋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나를 제일 편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나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는 바로 제일 편한 그런 교회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풀려나 마지막으로 생애를 보내고 싶어했던 교회가 바로 빌립보교회입니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빌 1:1) 이렇게 시작합니다. 바울의 13권의 서신 중에서 데살로니가서에만 아무 직분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데살로니가서가 바울이 제일 처음에 기록한 서신입니다. 이 때는 아직 바울이 정해진 어떤 방식을 사용하지 않은 겁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부터는 다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갈 1:1) 이렇게 시작하고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고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고후 1:1)라고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처음 기록된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빼고 나머지 모든 서신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서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사용합니다. 이것을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겠습니까? 바울이 굳이 빌립보교회에게는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고 또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은 낮춥니다. 제가 우리교회에서 여러분들에게 굳이 목사라고 하지 않고 종이라고 해도 여러분들은 저를 어떻게 알아야 합니까?
“겸손이 통하는 교회”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바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와 친한 이유는 유럽에 첫 번째로 세운 교회이기도 하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허물이 없었던 교회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옥중에서 고생하는 바울을 돕고자 애를 썼습니다. 빌립보지역은 경재적으로 고린도나 에베소 같은 지역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써서 바울을 도왔습니다. 물질을 모아서 에바브로디도편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고전 9:15)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빌립보교회 성도의 헌금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무나 준다고 다 받는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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