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살 길(히브리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오전예배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히 10:16-20)

히브리서는 누가 기록했는지, 언제 기록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신약 성경 중에 유일한 책입니다. 저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언제쯤 기록되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데 히브리서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신학자들 중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개는 바울, 바나바, 아볼로, 브리스길라 등이 기록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먼저 왜 기록자의 이름이 없을까 하는 궁금한 점은 선교를 하시는 분들은 쉽게 이해합니다. 비밀문서나 굳이 이름을 적어 놓으면 해가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이후 서신들은 대개는 ‘누가 누구에게’라는 식이 일반화 되어있는데 그런 표현이 없는 것은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저자의 이름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신자 역시 공동서신의 특징이 특정 개인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일단 추측컨대 아무리 헬라어 문장실력이 바울을 능가하는 세련된 것이라 해도 이러한 글을 쓴다는 것은 역시 숨겨진 어떤 다른 사람이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마지막 부분에 보면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히 13:23)고 나옵니다. 이런 표현은 사도 바울이거나 아니면 그 일행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별적으로 히브리서는 저작 자체가 공동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세기말 극심한 기독교의 핍박이 있었고, 또 이 때에 유대교인들의 신앙방해는 극히 심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교인들이 죽인 것입니다. 이런 유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을 끈질기게 핍박하고 물고 느러졌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기독교인이 되는 것에 대해서 핍박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더 나아가 성경과 교리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봅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알게된 바울 일행은 이 문제를 보다 분명히 정리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팬을 든 저자는 하나의 박사학위 논문을 쓰듯 논증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 나갑니다.
그 첫 번째가 ‘그리스도의 뛰어나심’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그리스도는 선지자들보다, 천사보다, 모세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특별히 천사보다 뛰어나시고 모세보다 뛰어 나신 것에 대해서 논증합니다. 지금도 정교회는 천사를 숭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중보자시라는 것은 아시죠. 그런데 이 문제는 다 똑같이 비슷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리아에게, 천사에게 경배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이 그들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것 아닙니까? 바로 이러한 문제점들을 바로잡기 위해서 본서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이 제일인 것입니다.

천사보다 뛰어나시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 중에서 제일 이라는 것입니다.

천사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히 1:5)라고 하십니다.
이슬람의 마호멧, 불교의 붓다, 그 어떤 종교의 교주보다 뛰어나신 분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보다 뛰어나시다는 것입니다.

모세에 대해서는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히 3:5-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일 문제가 되는 부분이 제사장의 직분과 그에 따른 예수님의 직분입니다. 이 부분이 해결이 안되기 때문에 계속 제사장이 필요하고 양 잡는 제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처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저자는 이점을 증명하기 위해서 멜기세덱 제사장과 레위지파의 제사장을 비교합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레위지파의 사람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론 이후는 그렇습니다. 아무도 이 부분에 대한 논증을 한 적이 없는데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과 비교합니다. 레위지파이전에 이미 제사장이 있었는데 그 제사장은 레위 지파처럼 대를 잇지 않고 단번에 마치셨다는 것을 말하면서 예수님도 그와 같은 대제사장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히 7: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심을 말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로서 “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히 8:6-7)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지성소의 옛 제물은 비유이고(히 9:9)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어린양이 실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정리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죽으셨다는 것이 오히려 비유처럼 느껴지고 구약의 양 잡은 제사가 실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예수님이 실제이고 구역이 모형이었습니다.

이후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안 있는 뛰어난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양이 이리 가운데 있는 것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양은 무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양은 주인이 있기 때문에 이리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아무 능력이 없지만 주인께서는 능력이 많으십니다. 이를 믿고 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는 5가지의 경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표 참고하세요).

첫 번째 무시에 대한 위험입니다.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3-4)

두 번째 불 신앙에 대한 위험을 지적합니다.
“3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4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히 3:8-9). 지금도 하나님을 못 믿고, 계속 시험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 번째 미성숙에 대한 위험을 경고합니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

네 번째 침륜에 대한 위험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히 10:26) 배교 행위는 단순히 조직을 이탈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버리면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이 사람들이 제일 안타까운 사람들입니다.

다섯 번째 하나님을 거부하는 위험입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히 12:25)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 위의 절을 보시겠습니다.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히 12:14).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받지 않는 것은 인간의 최고의 교만입니다. 겸손과 순종이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는 믿음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는 위대한 논증서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남을 증명한 책입니다. 아울러 우리 자신들도 더 이상 방치되거나 버려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다섯 가지의 경고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 예수께 돌아올 때에는 반대로 그의 보호하심을 받게될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답글
  • 이선구말하길

    이 설교를 반복해 듣고 요한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어떤 부류인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잘 알게됬습니다. 그리고, 보석과도 같이 귀중한 깨달음이 많이 있었습니다. 영계와 교통하는 것이 신령한 것이 아닐뿐 아니라, 사람은 이렇게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과 성경저자의 영적수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을 들을 때 시원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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