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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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욥 41:11)
욥기서의 사상의 깊이는 아무리 연구해도 미완으로 남을 정도로 심오합니다. 저도 이번에 다시 설교준비하면서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욥기서의 저자와 기록 연대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몇가지 사실로 추정하는 정도입니다. 첫째 욥의 생존 기간을 200여 년으로 봅니다. 성경에 기록된 족장들의 수명의 길이와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욥 또한 아브라함과 비슷한 시기의 족장시대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둘째 욥의 부귀정도가 가축의 수효로 제시되고 있는데(1:3) 이는 족장 시대의 관례와 같습니다. 셋째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마찬가지로 욥 또한 자기 가문의 제사장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창 12:8, 35:1-6, 욥 1:5). 넷째 족장 시대의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솨다이’ 였는데 욥기서에도 이 호칭이 무려 31회 사용되었습니다(창 17:1, 28:3, 48:3). 다섯째 ‘케쉬타’(크시타)가 야곱 시대의 화폐 단위였다는 점(욥 42:12, 창 33:19), 마지막으로 한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출애굽사건에 대해서 언급이 없다는 점 등이 족장시대로 보는 것입니다.

욥기서의 제일 큰 주제는 의인의 고난입니다. 또한 사실상 욥이 받은 고난을 보면 누가 그런 고난을 당할 수 있을까? 의문점을 남길 만큼 큰 고난이었습니다. 천상에서 하나님의 허락을 얻은 사탄이 마음놓고 욥을 괴롭혔습니다. 욥은 특정한 징벌로서가 고난을 받은 것이 아닌데 친구들은 자꾸만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욥기서는 결론을 내 놓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욥의 친구들이 만만치 않게 똑똑해서 잘 보지 않으면 보는 사람이 혼동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막으려고 저자는 처음부터 확실히 합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그리고 결론도 마찬가지입니다.
“1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3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욥 38:2)

지금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욥입니다. 그리고 전무후무한 고난을 당합니다. 사실 이런 사람 앞에서면 아무 말도 안나올 것 같습니다. 욥은 끈질긴 친구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다 답변을 합니다. 그러면서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욥 16:20)라고 말합니다. 하도 답답하면 “하나님은 아시지요?” 하면서 사실 다 말 안 합니다.

욥기서에서 토론에 나온 페널은 욥과 친구 세 명(엘리바스, 빌닷, 소발)과 나중에 한 사람이 또 나옵니다. 이 사람은 욥과 세 친구보다 더 젊은 사람 엘리후입니다. 처음에 하는 말을 들어보면 중재를 하는 척 하지만 아닙니다. 사실 저도 성경에서 이 한 구절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을 대단하게 평가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한 절이 저를 완전히 실망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욥과 세 친구들이 다 말을 하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대단한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제가 이 엘리후를 대단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구절이 저를 완전히 실망시켰습니다.

“35 욥이 무식하게 말하니 그의 말이 지혜롭지 못하도다 하리라 36 나는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 대답이 악인과 같음이라”(욥 34:35-36). 바로 이 부분입니다. 아니 욥이 자기에게 뭐라고 했다고 “욥이 끝까지 시험 받기를 원하노니”라고 합니까? 이 젊은 사람이 또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말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마음가짐이 이 정도로는 안됩니다. 여러분! 똑똑한 것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하고는 다른 겁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 같은 발언을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간혹 욥이 말하는 것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들과 죽음에 이르고 싶은 충동은 아마도 말로만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막상 그러한 처지에 우리가 이른다면 우리는 더 절망하게 될지 모릅니다. 인간의 한계를 보인 것이 바로 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그에 대하여 꾸짖으신 일이 없습니다. 욥은 자신의 고통 때문에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괴로움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누가 우리 중에 욥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 광경을 보노라면 눈물겹습니다.

잘난척한 엘레후의 말이 끝날 것 같지 않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 욥은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1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욥 42:1-3).

하나님은 욥하고만 말씀하시지 다른 사람하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욥은 이런 하나님에 대해서 “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욥 42:5-6)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욥이 말한 27장부터 31장까지 보면 욥이 얼마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욥이지만 지나친 자만 감은 회개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욥은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조용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에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욥 38:1) 하시면서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아는 것이 뭐가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욥의 생각, 다 했다고 생각한 욥의 생각이 회개의 대상입니다.

우리는 욥기서를 통해서 전적인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것도, 내가 아는 것도 모두가 주님이 주신 것이며 그분이 거둘 때도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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