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일 5:8)

어떤 분들은 사람은 죽으면 끝이다.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럽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고 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 여행 나온 사람처럼 말합니다. 돌아갈 곳이 있다고 말합니다. 여행은 기쁘고 즐거워야 합니다. 그리고 여행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면 그곳에 갔다 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준비도 하고 계획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무엇보다 여행은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한번 안 가본 사람 없을 겁니다. 소풍가기 전날 그렇게 잠이 안 옵니다. 그리고 소풍가는 날, 내일 비가 안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 땅에 소풍 나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돌아갈 것입니다. 아버지 집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입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을 흉가라고 합니다. 보기 싫게 됩니다. 집에는 사람이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추한 것이 있습니다. 더 흉한 것이 있습니다. 영혼이 없는 육체입니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이 없는, 주님이 없는 육체입니다. 빈집보다 더 흉합니다. 사탄들이 우글거립니다.

“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에”라는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현재는 이 땅에 몸담고 살아가고 있지만 영혼이 돌아갈 본향을 위해 언제나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인생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언젠가는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이 땅에 현세적 이익과 재미만에 묻혀 살아가는 것은 건강한 영혼을 소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행을 하는데 거기에 충실해야지 어떤 사람은 여행을 왔는데 집 걱정만 하다가 갑니다. 그러면 여행이 재미없습니다. 제가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균형감각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영혼을 사모하지만 이 땅의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나의 영혼의 미래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야 합니다. 여행 나온 사람이 돌아갈 집만 걱정하고 있으면 여행이 재미가 없고 망가집니다. 그렇다고 여행이 영원한 것처럼 살아서도 안됩니다. 치우치지 않는 균형 잡힌 신앙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북한에서 먼저 말했잖아요. 남한이 ‘통큰 지원’ 해 달라고요. 그러고는 정작 자기들은 통큰 것 하나 안 하는 겁니다. 남보고는 통큰 것을 강조화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열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통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손을 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사랑합니다. 왜요? 여기에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노자도 공자도 좋아합니다. 후대에 사람들이 그들을 우상화해서 믿는 도교(노자), 유교(공자)를 좋아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말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을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전도서 정도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전도서만 있습니까? 성경은 창세기가 나옵니다. 세상 어디에 창세기가 있단 말입니까? 요한은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경은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계시록이 나옵니다. 세상 어디에 계시록이 있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선물을 아직 풀러보지도 않은 사람이 많은 겁니다. 무엇이 있는지도 몰라요.

현대인의 최대 관심사는 건강입니다. 미국 잡지사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보다 수명이 길었고 기독교인이 천주교인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사람이 찬송을 많이 부르기 때문이고 기독교인이 천주교인보다 찬송을 많이 부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샘물이 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서 예수께서 긴 대화를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주제가 영생입니다. 충만입니다. 건강을 넘어서 영생입니다. 영생할 수 있다면 솔직히 인간은 더 바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진시황이 꿈꿨던 것입니다. 저 피라미드들이 꿈꿨던 것입니다. 우리는 압니다. 불로초가 무엇인지, 피라밋이 무엇인지? 예수님의 십자가가 불로초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피라밋이었습니다.

중국의 노자는 인간에게 최고의 선은 물이다라고 했습니다. 노자가 예수를 알고 이야기했겠습니까? 노자는 춘추시대(기원전 770년 주(周)왕조의 천도 후부터 기원전 221년 진 시황제(秦始皇帝)의 통일까지를 말한다.) 초(楚)나라 때 인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살다간 그의 출생일과 사망일 등은 알 수 없습니다. 예수 탄생이전의 인물입니다. 만일 그가 예수를 만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가 말한 물은 최고의 도에 경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물의 특징은 누가 막으면 막힌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은 영원히 가두어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은 차면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단 한번도 위로 흐르는 적이 없습니다. 또한 물은 스며들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다 들어갑니다.
강태공은 그를 버린 아내를 만났을 때 항아리의 물을 쏟으라 하고 다시 담으라고 했습니다. 물을 다시 담지 못하듯 당신과 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은 이렇게 진리와 연관되어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생을 물에 비교하셨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노자와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릅니다. 심지어는 구약과 신약이 차원이 다릅니다. 구약이 어렵습니까? 신약이 어렵습니까? 신약이 어려운 겁니다. 구약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구약이 어렵다는 분은 책이 두꺼우니까 어렵게 보이는 것입니다. 옛날 이야기니까 어렵게 보입니다. 언어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어렵게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은 신약이 어려운 겁니다.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먼저 본문을 다시 보겠습니다.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 5:8)고 했습니다. 마치 삼위 일체처럼 세 가지가 함께 나타납니다. 우리는 여기서 성령과 피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을 관과하고 있습니다.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위에 있는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일 5:6)고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고 말합니다. ‘물’이 먼저 나옵니다,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는 물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피만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물도 흘리셨습니다. 물은 눈으로 나옵니다. 사람이 감동할 때 슬플 때 눈물이 나옵니다. 피는 상처가 나야만 나오지만 물은 감정에 의해서 나옵니다. 회개의 상징이 무엇입니까? 눈물입니다. 콧물입니다. 어떤 사람은 침도 질질 흘립니다. 너무 좋으면 다 나옵니다.

둘째는 보편성입니다.
물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물이 필요하지 않은 분계십니까? 물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서양에는 거북이 신자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는 먹지 않고 9일을 살 수 있습니다. 개는 먹지 않고 20일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먹지 않고도 무려 500일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찬이라고 하면서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을 거북이 신자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밥은 안 먹어도 물은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샘물, 영원, 근원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하셨습니다.

물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바다 속의 물고기만 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도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필요가 절대적인 것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 없이는 죽습니다. 물 없으면 죽습니다. 물은 사치품이 아닙니다. 꼭 필요합니다. 영생은 그런 것입니다. 영생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바로 그것이 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갈증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솟아나는 샘물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생명의 근원이셨던 것입니다. 예수만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 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최고의 영광, 축복, 기쁨, 행복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셔서 그 안에 살아가는 것 보다 더 영광스러움은 없습니다.
그 이상은 없습니다. 모두 다 그 아래 입니다. 예수 믿는 거 이상의 성공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공을 해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찌라도 하나님을 믿는 축복 같은 이 복을 이 세상에서는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 안에서 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시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배설물 같다고 했습니다. 대단한 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돈을 벌어도 좋고, 안 벌어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 하나 때문에 죽고 살고 일이 벌어지는데,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성경구절 하나 말씀드립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 자 잘 보세요? 앞에만 말하면 이해가 안됩니다. 뒤에을 보아야 합니다. 왜? 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은 결코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 할 수 없습니다. 쾌락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더 재미있는 것, 조금 더 자극적인 것.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께는 만족함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충만한 것입니다. 충만이 무엇입니까? 만족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그것이 충만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충만케 하십니다. 충만하다고 해 놓고는 또 돈 이야기를 합니다.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충만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예수께서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그리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물은 무엇입니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그것은 곧 영생인 것입니다.

우리 속에는 두 개의 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그 뜻을 따르며 살고자하는 내가 있고 유혹을 따르고 악을 따르며 살고 싶어하는 내가 있습니다. 바울 사도 역시 두 개의 자아가 서로 싸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합니다.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7)고 했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고 했습니다. “지나간다”는 말을 주목하십시다. 이 세상의 것은 열차 차창 밖으로 풍경이 지나가듯 모든 것들은 지나갑니다. 권력도, 성공도, 부귀도, 영광도 아름다움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유행을 타선 안 되는 것, 유행에 휩쓸리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리이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입니다. 예수께서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본문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나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령과 물과 피가 모두 예수께 있습니다. 이 예수를 믿어 영생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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