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는 자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습 3:17)

KBS ‘가요무대’가 전국 성인남녀 7115명을 상대로 조사한 ‘대중가요 선호도 조사’에서 심수봉씨가 불렀던 ‘그때 그 사람’이 응답자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최고 인기 가요곡’으로 선정됐습니다. 그래서 가요무대, 열린음악회 등에서 그 때 그 사람만 나옵니다.
광복 전후를 대표하는 곡으로는 김정구씨의 ‘눈물 젖은 두만강’이 1위로 꼽혔고 이어 이난영씨의 ‘목포의 눈물’등 이 뽑혔습니다. 옛날에는 주로 눈물과 관계가 있습니다. 이 민족의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노래로 슬픔을 달랬습니다. 그런데 70년대 들어서부터 눈물에서 점차 그리움으로 옮겨갑니다. 그 때 그 사람이 한 일은 외로운 병실에서 기타를 쳐 준 것입니다. 바로 그 사람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사람은 외로울 때 기타한번 쳐준 것도 잊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하셨습니다. 근래의 우리 문화는 지나치게 큰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인의 비교하는 습성은 저는 불치병이라고 봅니다. 북한의 통큰 발언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통큰 투자, 통큰 원조를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은 하나도 내어놓지 않고 상대방에게만 통큰 것을 요구합니다. 이것은 통이 큰 것이 아니라 통이 작은 것입니다.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 때에 나라 전체가 타락한 와중에도 5천 결사대를 이끈 계백장군은 우리를 눈물겹게 만듭니다. 진짜 통큰 사람이 어떤가를 보여줍니다. 물밀 듯이 밀려오는 신라의 10만 대군을 격퇴시키는 것은 역부족이라고 생각한 계백장군은 마지막 전투지 황산벌로 출전하기에 앞서 자기 아내와 자식들을 다 모아 놓고 눈물의 이별을 한 다음 칼로 그들의 목을 모두 베고 맙니다. 포로가 되어 비참하게 살아가느니 죽는 것이 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도 5천 결사대와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짐해야 합니다.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갈 4:8-9) 하나님을 모를 때는 우상에게, 세상에게 종노릇하면서 살았습니다. 강아지 목에 끈을 매어 끌면 이리 끌려가고 저리 끌려가듯이 사탄에게 끌려 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을 알고 난 우리가 어찌 사탄의 종 노릇 하면서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요 8:47)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지 않으면 자기의 기쁨도 행복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할 때 비로소 자신도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도록 사시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고백합시다. “나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곧 나의 행복입니다.”

예수님께 칭찬 받은 사람들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두 렙돈을 헌금함에 넣은 과부가 칭찬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 앞에 나온 이들이 칭찬을 받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주님 앞으로 나아가 자기의 병을 고쳐 달라고 소리친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결코 엄청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아닙니다. 높은 벼슬을 한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이 무시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으로 주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숨기신다, 여호와께서 숨기신 사람”이란 뜻을 가진 이름입니다. 스바냐는 그 이름처럼 “여호와께서 심판 날에 겸손한 자를 숨기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스바냐에 대해서는(습 1:1)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 예언의 표제에 언급된 족보에는 4대가 언급되어 있는데, 선지자 중에서 이와 같이 족보를 소급해서 올라간 사람은 없습니다. 스바냐는 왕족 출신으로서 히스기야의 4대 후손입니다. 따라서 스바냐는 요시야왕의 조카뻘이 되는 셈입니다. 그는 나훔보다 반 세기 정도 늦은 요시야 왕 때에 조카로서 삼촌(요시야)에게 예언했습니다. 므낫세와 아몬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왕이었지만, 요시야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통치자였습니다. 스바냐 자신이 왕족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당시 상류층이나 나라의 운명에 관해 직언의 예언을 하는데 적절한 예언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스바냐를 통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씀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이 잠잠히 사랑하시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잠히 사랑하시며” 라고 했는데 ‘잠잠히’라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잠잠히’는 원문에 ‘야하리쉬’입니다. 이 뜻은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안식할 것이다”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 누구에게 맡기면 안심이 되고 믿음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어떤 일이든지 나에게 맡기셨을 때 안심이 되시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욥처럼, 아브라함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성 포털사이트 이지데이가 2009년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1073명의 네티즌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주부들은 남편들로부터 안심시키고 위로해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부님들, 내 남편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는 말을 꼽았습니다. 이어 27%가 “당신이 최고야”, 26%가 “사랑해”라는 말을 꼽았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감동하고 힘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평안케 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사람은 두 가지 경우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사느냐 하나님의 버림받은 저주아래에 놓이느냐 입니다. 오늘 스바냐가 말하는 것도 빨리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것을 미워하면서 죄악 된 길에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회개의 정의입니다.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습 1: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복도 화도 내리지 않는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잘 못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라고 하셨습니다.
금속의 제련 과정을 보면 반드시 침전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 침전물을 이른바 완성품을 만드는데 독소와 같은 존재인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거르고 제거하느냐가 정제의 성공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찌꺼기 같은 자라는 것입니다. 소금을 정재하고 버려질 불순물과 같은 존재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 멸망의 대상일 뿐입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습 2:1)
조선 시대 성리학자였던 이이와 이황은 ‘사단 칠정론(四端 七情論)에서 인간에게는 자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수치지심(羞恥之心)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를 벗어날 때 스스로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 자기의 수치를 알았습니다.
“5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나의 죄가 주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6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7 내가 주를 위하여 비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나의 얼굴에 덮였나이다”(시 69:5-7) 여기 잘 보세요. 다윗이 자기의 죄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나만 잘 되면 그만이다라는 식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많이 배운 것도 부끄럽습니다. 건강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살지 못한 것 부끄럽습니다. 한 것도 없이 다른 사람만 비방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 17:9)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사 중에 삼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나실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성경에 출생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기록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삿 13:24)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그만 블레셋 여자, 기생이나 좋아하고 결국 하나님이 금지한 이방여인 들릴라와 결혼하고 쓸데없이 자기 과신으로 수수께끼를 내어 패가망신을 당합니다. 블레셋 적군에게 붙잡혀 두 눈을 잃고 당나귀처럼 연자맷돌이나 돌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그렇게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의 건강 축복을 소중히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2 명령이 시행되어 날이 겨 같이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2-3)고 하셨습니다. 무조건 하나님을 찾아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찾으면 산 것입니다. 천국이 무엇이냐, 누구의 것이냐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발견한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 밭을 사는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수치를 깨닫고 천국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 3:16)고 하십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야 하는 시점에서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는 큰 공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수 1:6, 9)고 하셨습니다. 원문에 ‘강하게’는 손에 힘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주먹을 쥐라는 것입니다. 손을 늘어뜨리는 것은 패배한 것입니다. 주먹을 쥐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습 3:15), 본문에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스1 3: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시고 함께 계시면 이스라엘도 국가도 교회도 집안도 개인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떠나가시면 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가운데서 하나님은 늘 함께 하셨습니다. 구름기둥으로 불 기둥으로 지켜주셨습니다.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 48:35)고 했습니다. ‘여호와 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700년 전의 예언자입니다. 그가 예언하기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시 51:15-19)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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