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2차 전도여행
Posted 2011-09-15
By 이 영제
바울
☞11. 사도회의가 열리게 된 이유(예루살렘 3차 방문)
행15:1-2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대에서 내려온 자들과의 변론을 해결하지 못하고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의뢰하게 된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한 후 만 3 년 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고, 아가보의 예언으로 부조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2번째 방문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사도회의 참석은 3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되는 것이다. 유다와 실라가 결정된 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내려오게 된다.
2. 갈라디아서를 기록함 (사실 사건순서는 1.사도회의가 열리게 된 이유보다 앞에 두어야 하지만 설명의 편의상 여기에 둔다.)
일반적으로 바울의 서신서 중 데살로니가 전서를 가장 먼저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다음에 기록된 여러 상황으로 볼 때 갈라디아서를 바울이 가장 먼저 기록하였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그 시기도 1차와 2차 전도 여행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사료된다. (저자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많은 현대 학자들이 갈라디아서의 목적지로 전통적인 북 갈라디아설 보다 남 갈라디아설에 기울여지고 있다(P.458, 도날드 거쓰리.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8, 신약개론). 그러나 지금도 그 반대라고 주장하기도 할 만큼 팽팽하다(P.335, 모리슨등 신약개론. 은성출판사. 1993).
2.1 갈라디아서의 기록 시기에 대한 주장들
갈라디아서의 저작시기는 다음의 2 가지에 의해 크게 변하게 된다.북 갈라디아설과 남 갈라디아설에 의해1 차 전도여행과 2 차 전도여행사이에 기록했다고 하여도 사도회의 전, 후에 기록했는지에 따라 북 갈라디아설: 북쪽의 갈라디아 지방을 2 번 방문했다는 설.
이 설의 문제점은 성경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
남 갈라디아설: 2 차 전도여행 중에 방문한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지역이 갈라디아서의 수신지라는 설
과거에는 북 갈라디아설이 지지를 받았으나 윌리엄 람세이(Sir William Ramsay)이후 현대 학자들은 남 갈라디아 설로 기울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저작시기는 AD 48-49 (예루살렘의 사도들의 회의가 있기 전)라고 받아들여진다. 이를 토대로 하면 갈라디아 지방은 1 차 전도여행 후 변질되었다고 생각된다.
갈라디아 2장에서 말하는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
사도행전에서 보면 바울은 다섯 번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갈라디아서 기록 당시까지 2 번의 예루살렘방문만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의 저작시기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갈라디아 2 장에 나타난 바울의 2 차 예루살렘 방문은 사도회의인가, 구제 헌금전달시인가?이 문제에 대한 변론을 보기 위해서 (갈라디아서2장문제.html)을 더블클릭 하시오.
2.2 갈라디아서
●기록시기 : AD 48-49년경(사도회의 참석 전)
AD 56-58년. (바울의 3차 선교 종반, 북 갈라디아인에게.)
● 기록목적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갈라디아 교회를 세웠지만 그 후, 율법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교사들은 이방인 개종자들인 갈라디아 성도들은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바울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함으로 갈라디아 성도들이 안식일과 유대인의 절기를 지키게 되어 바울은 자신이 수고한 것이 헛되게 될까봐 두려워하였다(갈 4:10). 그래서 바울은 다른 서신서에 있는 감사하는 말은 생략하고 갈라디아서를 적게 되었다.
● 기록 장소 :안디옥 추정.
바울이 전한 복음의 신빙성을 위해서 자신의 사도권을 주장하여,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과 동등한 교제의 악수를 한 것과 베드로를 책망한 사실까지 말한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고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었다는 그들의 경험을 상기시킨다.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 율법은 아브라함 시대 훨씬 이후에 나타난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역할과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일 뿐임을 설명한다.(갈 3:24)
할례를 전하는 자는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자들이며(갈6:12) 십자가로 인한 핍박을 면하려 하는 자들이다.
▶3.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목적
행 15:1-2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하니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위 말씀처럼 바울이 있는 안디옥까지 유대인 형제들이 와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도들의 회의를 열게된다. 바울이 있는 이 곳 안티옥까지 라면 다른 곳, 즉 1차 전도여행을 한 곳에서도 능히 주장하였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갈라디아 사람들을 흔들어 놓은 뒤 걱정이 되어 바울이 이때(1차와 2차 전도여행 사이) 갈라디아서를 적었다.그러나 그 후에도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더욱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성도들을 대면하여 격려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목적으로 2차 전도여행은 시작되었지만 성령께서는 그들의 발걸음을 마게도냐와 아가야(그리스 쪽)쪽으로 옮겨 놓으셨다.
다음구절이 생각난다.
☞24. 바울과 바나바가 다툼
행 15:37-40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2 차 전도여행은 마가 일로 인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갈라서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실라를 택하여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를 굳게 하였다. 이후의 바울과 바나바의 관계는 1차 로마 투옥의 인물 마가 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5. 수리아와 길리기아 전도
갈 1:21-24 그 후에 내가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
수리아와 길리기아의 교회들은 바울이 회심하기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8~10년 동안 그 지방들에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6.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전도팀에 합류시킴
행16:1-3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 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디모데를 택한 후 그 지방의 유대인 때문에 할례를 행한 뒤 함께 전도여행을 떠나게 된다. 디모데는 그 근처의 지방에서 형제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자였다. 이미 증명된 사람을 택한 것을 알 수있다. 자기가 있는 곳에서 증명되지 못하고 선교에 마음만 있는 자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한다. 성도들에게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인정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란 행 15장의 사도회의의 결과를 말한다.
▶7.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성령
행 16:6-7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비두니아로 나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성령님은 참으로 복음이 필요한 곳을 아시고 복음전파의 주관자로서 역사하시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다.
▶8. 누가의 일시적 합류와 빌립보 전도
행16:8-10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행 16:15-17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지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어라
드로아에서는 의사 누가(사도행전의 저자이므로 우리 속에 자신이 포함)가 합류했다가 빌립보에서 헤어졌음을 알 수있다. 누가의 사역지가 빌립보(존드레인, 바울, 두란노서원, 1989, p63, 누가는 빌립보에 남아서 새 교인들을 돌보았다.)라면 바울이 어느 교회보다 빌립보교회에 자신의 깊은 것을 꺼내어 놓은 이유를 우리는 짐작 할 수있다. 왜냐하면 누가는 참으로 바울을 사랑했음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인물 누가 참조). 그들이 배려를 잘 해주었기 때문에 이곳에는 바울의 동역자들이 나중에 많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빌4:2, 3).
빌립보에서 바울일행은 기도처를 찾다가 루디아를 만나는 데 이곳 빌립보는 유대인들이 적어 회당은 없고 기도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인 것같다. 이 자매는 유럽에서 바울이 얻은 첫 번째 회심자이다. 그는 영향력이 꽤 있었던 것같다. 나중에 바울이 옥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빌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나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 책에 있느니라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할 때 다른 지역에서도 그렇게 했겠지만 이곳에서는 특히 부녀자들이 함께 힘을 많이 쓴 것같다. 그것은 루디아의 영향력이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다. 루디아는 매우 적극적으로 자기 집을 열었던 자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곳이 빌립보 교회가 모이는 장소일 가능성이 크다. 이곳의 형제는 간수와 그의 가족도 포함될 것이며, 루디아의 친구들도 많이 포함되었을 것이다(그의 적극적인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눅 10:5-7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군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복음전도자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루디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많은 평안을 받았을 것이다.
빌1:5-7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 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이렇게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빌립보서를 보면 마음이 늘 바울과 함께 했음을 알 수 있다. 빌립보 교회는 물심양면으로 바울을 도왔다. 안디옥 교회는 보내었고, 기도했겠지만, 빌립보 교회는 지속적인 교제가 있었던 교회이며 함께 전도한 교회이다.
▶ 9.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전도
행17:1-2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행 17:4-6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데살로니가에서는 처음에는 야손의 집에 머문 것같다. 유대인의 소동으로 3주일 정도 머문 것같다. 이곳에서 바울 팀은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했던 것같다. 그러나 람세이의 말처럼 3주일간은 유대인 회당에서만의 기간이고, 많은 헬라인들이 믿은 것을 볼 때는 람세이 주장처럼(St. Paul the Traveller and Roman Citizen(1920), p228. 신약개론, p 570, CLC) 6개월 정도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살후3:7,8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위의 말씀과 같이 빌립보 사람들에게서 헌금을 한번 이상 받았다면 3주 이상 머문 가능성이 있다. 이때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머물면서 빌립보 사람들에게서 헌금을 받았다(한번,두번). 바울은 유럽으로 건너가서는 빌립보 교회 외에는 돈을 받지 않고 자급자족하여 일하는 본을 보였고 복음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했다.
베뢰아에서는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고 로마 사람들도 믿게 되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이곳까지 쫓아와서 소동을 버리는 바람에 바울만 먼저 아덴으로 떠나게 되었다.
10. 아덴에서 데살로니가와 마게도냐로 파견되는 디모데와 실라
행 17:14-16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살전 3:1-2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이상의 말씀으로 보아 실라와 디모데는 일단 아덴으로 와서 바울과 합류했음을 알 수있다. 그러나 유대인과 동족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는 그들이 걱정이 되어 디모데만을 데살로니가로 보내었음을 알 수있다. 그러나 디모데가 돌아와서 한 보고는 바울에게 위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살전 3:6-7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나 디모데의 보고를 들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고 데살로니가 전서를 적었다. 성적인 면에서 거룩해야 할 것과 그리스도안에서 먼저 죽은 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가 필요함을 알고 그는 데살로니가 전서를 적게된다.
그러나 다음 말씀을 보면,
▶ 아덴에서 실라도 어떤 이유에서 마게도냐 지방(빌립보일 가능성이 크다. 아덴에서 고린도로 이동한 후 , 바울은 고린도에 있으면서 마게도냐 지방으로부터 헌금을 받았는데 어쩌면 실라의 방문으로 바울의 필요를 빌립보 성도들이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으로 떠나고, 바울만 고린도로 오는 것을 알 수있다. ▶이후 디모데와 실라가 함께 내려와서 고린도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함을 알 수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힘써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데살로니가의 소식을 듣고 난 뒤 걱정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11.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머뭄.
행 18:2-3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고전1:14-16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은 고린도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스데바나 집사람에게만 직접 침례를 베풀었는데 바울이 3차 전도여행중 에베소에 머물 때 그 가이오가 편지를 들고 찾아오게 된다.
여기서 바울은 그의 귀한 동역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만나게 된다. 이때 갈리오 총독이 이곳에 임직하고 있을 때이므로(행18:12) AD 51 혹은 53년경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의 방해를 받은 후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디도 유스도라하는 사람의 집에서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였다. 회당장 그리스보까지 믿게 되었고 주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으니 두려워 말라고 격려하신다.
고전1:4-7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바울이 1년 6개월 동안 가르친 고린도에서는 그리스도의 증거가 풍부하게 나타나고 많은 은사가 있는 교회가 되었다.
12.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보냄
일반적으로 고린도에 머물면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적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2. 1. 데살로니가 전서
● 데살로니가 : 이 당시의 그리스는 북쪽 속주 마게도냐 와 남쪽 속주 아가야로 나뉘어져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는데 데살로니가는 북쪽 마게도냐의 수도였다. 로마와 소아시아를 연결하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어 상업이 발달하였고 로마 관리들과 외국인이 많았다.
● 기록시기 : 바울이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물 때의 초기 ( AD 51-52 혹은 AD 52-53년에 갈리오가 총독으로 취임한 때는 바울이 고린도에 머문 1년 6개월의 마지막 때,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전서는 AD 51-53년경 기록: 존드레인)
● 기록목적과 내용 : 2차 전도 여행중 데살로니가에서 3주 정도 회당에서 복음을 전한 뒤 빌립보에서 방해하러온 유대인들 때문에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베뢰아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울은 2 번이나 데살로니가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으나 (살전 2:18) 사단이 막으므로 가지 못하였고, 결국, 그들의 믿음을 알고 그들을 믿음을 굳게 하며 위로하기 위하여 (살전 3:5) 아덴에서 디모데를 보내게 된다(살전3:1-2). 고린도로 돌아온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전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바울일행을 간절히 보고자 함으로 바울은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고 데살로니가 전서를 적게 되었다. 성적인 면에서 거룩해야 할 것과 그리스도안에서 먼저 죽은 자가 예수님의 재림 시에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침으로써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가 필요함을 알고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전서를 적었다.
● 기록장소 : 고린도
▶12. 2. 데살로니가 후서
● 기록시기 :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한 후 얼마 지나지 아니한 시기(AD 51-53년경)
● 기록목적 : 데살로니가 전서를 받고 난 후 핍박은 점점 심하여 졌고 바울 일행이 적었다는 위조 편지로 성도들이 쉬 동하게 되자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바울이 데살로니가 에 2 번째 편지를 적게 되었다.
● 기록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재림 때에 핍박하는 자에게는 환란을, 데살로니가인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함으로 그들을 위로함(1장).
바울과 그 동역자들이 썼다는 가짜 편지에서, 주의 날이 이르렀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이 동요하게 된다. 이에 바울은 먼저 배도 하는 일과 멸망의 아들이 나타난 뒤에야 주의 날이 이른다고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안정시킴(2장).
주의 재림을 핑계로 규모 없이 행하고 일 만 만드는 자를 훈계 할 것을 권함(3장).
● 기록장소 :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므로 고린도에서 기록하였다.
● 고린도에서 마게도냐 지방으로부터 온 헌금을 받음
고후 11:7-9 내가 너희를 높이려고 나를 낮추어 하나님의 복음을 값없이 너희에게 전함으로 죄를 지었느냐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13. 안디옥으로 돌아감.
행 18:18-19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그는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고린도를 떠난다. ▶ 함께 떠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에베소에 머물고 바울은 가이사랴를 거처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뒤 안디옥으로 내려간다. 이때 바울은 예루살렘을 4 번째 방문하게된다.
14. 바울의 동역자들
☞314.1. 실라(Silvanus)
아람어 형태인 실라라는 이름과 라틴어 형태인 실루아노라는 두 가지 이름으로 성경에 나타난 인물이다.
14.1.1. 안디옥으로 파견되는 실라.
행 15:22-23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실라는 사도행전 15장의 사도들의 회의결과를 안디옥에 전달하는 장면에서 성경에 처음 등장한다. 안디옥 교회에 문제가 발생한 뒤 회의 결과를 적은 편지를 전달할 만한 사람으로 유다와 함께 추천된 사람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달자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차분하며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독단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시민권
행 16:37-38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 라 한대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은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바울뿐 아니라 실라도 로마시민권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실라의 이름이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 외에서는 모두 실루아노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도 그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음을 짐작할 수도 있다.
그는 형제 중에 인도자였다. 예루살렘의 여러 형제들 중에서 신뢰할 만하고 지도자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면 때문에 안디옥교회로 보내지게 된 것같다.
14. 1. 2.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의 동반자.
또한 그는 선지자였다. 그는 그의 은사로 안디옥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웠다. 그는 사람들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 지를 아는 형제였다. 그는 드러나지 않고 자기의 할 일을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임을 알 수있다.
행 15:38-40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마가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진 바울이 바나바와 심하게 다툰 후 격한 마음가운데에서도 정말 주님의 일을 한가지로 같이 할 충성된 형제로 실라를 택한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실라의 충성됨을 바울은 많이 느꼈기 때문인 것같다.
14. 1. 3. 바울과 함께 투옥됨.
행 16:21-23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 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빌립보에서 그는 바울과 함께 투옥되었는데 누가와 디모데는 갇히지 않고 바울과 실라만 갇힌 것을 보면 실라는 뒤쳐있지 않고 바울과 함께 담대히 복음을 전한 것같다. 갇히기 전에 그는 바울과 함께 많은 매를 맞았다. 그러나 바울과 함께 그는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 매를 맞았다고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아마 40에 하나 감한 매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 이 매를 맞으면 거의 죽게될 지경에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여기까지 동참하였던 것이다.
14. 1. 4. 마게도냐 지방으로 파견되는 실라.
그는 교회를 격려하기 위해서 아덴에서 바울을 떠나 마게도냐지방으로 여행하였다(바울 편 참조).
행 18:1 이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덴에서 실라도 어떤 이유에서 마게도냐 지방으로 떠나고 바울만 고린도로 오는 것을 알 수있다. 이후에 고린도에서 실라와 디모데가 합류함을 알 수있다. 실라는 디모데가 돌아오기 전에 떠나서 마게도냐지방에서 합류했을 가능성이 있다.
데살로니가 전, 후서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시 고린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데살로니가 전, 후서에 실라의 이름이 모두 언급되었다.
14. 1. 5. 2차 전도 여행중 실라의 이름이 사라짐.
행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행 17:14 비교)을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갈 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고린도 이후부터 실라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두 형제들도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그 곳에서 실라는 남고 디모데는 바울을 따라 안디옥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다.
14. 1. 6. 2차 전도 여행이후 성경에 나타난 실라.
이후 3차 전도 여행 중에 기록한 고린도 후서에서 고린도에 처음 복음을 전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가운데 그의 이름이 잠시 언급된다.
그는 그후 베드로가 로마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는 베드로 전서의 대필자 혹은 전달자임을 알 수있다. 베드로도 그를 신실한(faithful)자로 알고 있다.
☞414. 2. 디모데(Timothy)
14. 2. 1. 2차 전도 여행중 전도팀에 합류하는 유대인 디모데.
행16:1,2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는 유대인이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어머니가 유대인인 경우 그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디모데도 유대인이었다. 그는 루스드라에서 출생하였고 바울이 디모데를 부를 때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때 바울이 1 차 전도여행에서 디모데에게 복음을 전한 것같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중 다시 루스드라에 도착했을 때에는 디모데는 자기 고향에서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있었다. 바울이 디모데의 믿음을 거짓이 없는 믿음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그것은 어머니와 할머니 속에 있었던 것이며 디모데 속에도 동일하게 있다고 하였다.
디모데가 전도여행에 함께 동참할 때 바울은 유대인들 때문에 디모데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였다. 유대인들은 할례 받지 못한 자들 특히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아니며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무시하기 때문에 더더욱 유대인인 디모데가 할례 받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에 할례를 행하였다.
고전 9:20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물론 디도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복음과 율법을 구별하는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에 디도는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하였다.
14. 2. 2. 디모데의 건강과 은사.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갖고 있었듯이 디모데도 자주 나는 병을 갖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물을 마셨던 것으로 보아 위장병인 것같다. 이 병이 언제부터 시작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몸을 가지고 바울과 함께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또 문제가 있는 교회 속으로 (스트레스로 위장병이 더욱 악화될 수 있는 곳으로) 바울을 대신하여 갔던 것이다. 이런 디모데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더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안수를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 장로들의 모임에서 안수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바울의 전도팀에 처음 합류할 때 교회장로들로부터 안수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떠날 때 안수를 받았듯이.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이라는 말은 그의 은사가 이미 드러난 뒤에 그에게 무슨 은사가 있다고 말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은사가 드러나기 전에 예언으로 말해진 것으로 보아 전도활동의 시작시기에 안수를 받았을 가능성을 더욱 굳게 한다.
14. 2. 3. 2차 전도여행 중 데살로니가로 파견되는 디모데.
행 17:14-16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살전 3:1~2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2 차 전도여행 중에 아덴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그들의 믿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내게 된다. 바울의 전도여행기간 중 바울을 대신하여 여러 교회로 보내어진 사람들 중에서 최초로 보내어진 사람은 디모데였다. 이때 바울은 디모데를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데살로니가 교회에 말할 정도로 디모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바울은 벌써 디모데를 귀하게 보았으며 디모데는 이러한 격려에 더욱 힘을 얻었을 것이다.
그는 마게도냐에서 실라와 함께 고린도 지방으로 돌아와 바울을 만났다. (자세한 내용은 인물 바울 편 참조.) 디모데의 보고를 들은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염려를 들어 버리고 오로지 말씀 전하는 것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결국,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로하였을 뿐 아니라 바울이 염려를 벗어버리고 집중할 수 있도록 바울도 도운 것이었다. 이곳에서 데살로니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하게 되었고 그 후 데살로니가 후서도 기록하게 되었다.
살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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