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세요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 28:10-16)

2단지 입구에 보면 자동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말뚝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곳은 돌 같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은 철로(스텐레스)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 두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그 통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보는 것입니다. 한참을 두드리다가 또 옆으로 가서 다른 통을 두드립니다. 엄마는 가려고 서 있는데 이 아이는 가지 않고 이통 저통 두들겨 봅니다. 이 아이에게는 호기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이 아이에게 꿈을 꾸게 합니다. 이다음에 커서 해 보고 싶은 것이 많이 생기게 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기쁨을 얻게 됩니다. 바로 아이들에게는 무한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아이들과 같이 꿈만 꿀 수 있다면 어린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여러 가지로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의 특징중의 하나는 꿈이 있다는 것입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베푸신 첫 이적은 혼인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것이었습니다(요 2:1-10). 어머니 마리아가 난처한 표정으로 예수를 바라보며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의논했을 때 예수님은 “아직 내 때가 아닙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혼인잔치의 기쁨을 망칠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만들어 내셨습니다(요 6:9-13).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면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고 위로 하셨으며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꿈은 헛된 꿈이 아닙니다. 우리의 꿈은 이루어지는 꿈입니다. 그것은 바로 천국의 꿈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꿈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 땅에 잠시 살면서 무슨 꿈을 못 꾸겠습니까? 꿈을 꾸세요.

페르디난드 데 레세피는 1854년 이집트로부터 수에즈 운하 건설권을 획득하여 1859년 4월 공사를 시작한 뒤 10년만인 1869년 개통시켰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그는 그렇기 때문에 더 성공시킬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감, 열정,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파나마 운하에 도전합니다. 그는 1879년 파나마 운하의 공사권을 파나마 정부로부터 따냅니다, 하지만 10년 뒤인 1889년 이 공사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그와 함께 그가 운영했던 회사도 파산하고 맙니다.
나중에 미국 정부가 사들여 완성하지만 사실 레세피가 시작하지 않았으면 파나마 운하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파나마 운하도 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가능해 보이고 어려워 보이지만 시작을 하세요. 내가 못하면 다음 사람이 합니다. 다음 세대가 합니다. 그것이 선한 일이라면 포기하지 마세요.
징기스칸은 “한 사람의 꿈은 꿈으로 남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습니다.

“Boys,Be ambitious!”(젊은이들이여 꿈을 가져라) 널리 알려진 이 말은 19세기 세계적으로 유명한 식물학자이며 농학자였던 미국 윌리엄 클라크 박사가 한 말입니다.
매사추세츠 주립농과대학 학장이었던 그는 1876년 7월 일본 삿포로 농림학교 초대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그의 일행이 처음 일본에 도착했을 때 유난히 ‘큰 짐’을 본 장학관이 “무슨 짐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성경이지요.”
“성경은 가르칠 수 없는데요.”
“그러면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겠다는 말에 크게 당황한 장학관은
“강의 시간 이후에 가르치시지요”라고 허락했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농업기술을 전수하는 한편 ‘성경에 인생의 꿈이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 그는 고별사에서 ‘젊은이들이여 꿈을 가져라’란 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일본 삿포로농과대학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에 이 세계적인 명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을 살리는 ‘꿈’이 있습니다.

중국에 선교사로 간 허드슨 테일러가 1847년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다시는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수개월 동안 침대에 누운 채, 머리맡에 달린 줄을 잡고서야 간신히 옆으로 몸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허약했기 때문에 편지도 쓸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허드슨 테일러는 편지를 받아쓰게 했습니다. 침대 발치 벽에는 커다란 중국 지도를 걸어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계획을 구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허드슨 테일러는, 아직 들어가지 못한 중국 내륙에 있는 9개의 성에서 개척 선교를 할 18명의 선교사 후보생을 모집하였습니다. 누군가와 시간을 많이 보내면, 그 사람의 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과 대화하면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함으로써 시작됩니다.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요? 주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꿈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을 향한 주님의 사역 중에서 제사 감당해야 할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되고서도 꿈이 없다고요. 저는 단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분명히 그분은 기도하지 않는 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꿈을 꾸게 합니다. 하나님이 꿈을 갖게 하십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잘 보이는 벽면에다 이 계획을 붙여 놓았습니다. 어느 것도, 심지어는 병마도, 중국 내지를 복음화 하려는 그의 꿈을 막지 못했습니다.

최근 “순교자의 소리”측은 중국으로 사람을 파견하여 왕 다오(40) 목사를 접견했습니다. 왕 다오 목사는 광조우시의 리앙그렌교회에서 목회 하는데, “공공 질서 교란을 위해 폭도들을 규합”한 혐의로 지난 해 5월에 체포되었다가 몇 주만에 석방된 적이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계속해서 그를 감시하며 최근에 중국 당국은 수감과 추방 가운데 택일 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왕 목사는 둘 다 원하지 않는 상황이지만, 추방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장기간의 수감생활을 할 각오를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옥에 가둔들 우리들의 꿈이 사라지겠습니까? 우리를 죽인들 우리의 꿈이 사라집니까? 우리의 꿈은 영원한 것입니다.

꿈이 무엇입니까? 꿈은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랬습니다.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상의 재물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헌신의 결과로 오는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기로 결정하고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 닥쳐와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 이것이 다니엘과 세 친구의 꿈이었습니다. 헌신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왕들과 그 나라 방백들의 모함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 결과는 승리요 축복이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야곱은 꿈을 가졌습니다. 운명처럼 여겨지던 당시 장자권의 축복을 차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야곱은 꿈을 꾸어도 아마 장자로 태어나는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온 것입니다. 형 에서가 사냥을 나간 후 마침 어머니의 집안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고 있던 야곱이 팥죽을 쓰고 있었는데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때 사냥 나갔던 에서가 배가 몹시 고프든 차에 팥죽 냄새를 맡고는 야곱에게 갔습니다.
야곱 형이 지금 배가 몹시 고픈데 팥죽 한 그릇 줘라, 대답을 않습니다. 두, 세 번 말을 합니다
그때 야곱이 심각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형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이 팥죽을 줄 테니 형의 장자권 나에게 주면 안 돼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농담인지 진담인지를 몰라도 에서가 말을 합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지금 배가 고픈데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냐! 그래 장자권 네가 가져!” 그럽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형과 동생이 뒤바뀌는, 하나님의 축복의 물줄기가 에서로부터 야곱으로 바뀌어지는 영적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야곱에게는 수많은 고난이 따르고 줄을 이으면서 쫓아오고 있습니다.
먼저는 아버지를 속이게 되는 불효자식이 됩니다. 형의 보복을 피해 집을 떠나게 되는 나그네 신세가 됩니다. 삼촌 라반에게 3번이나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그의 생애가 참으로 파란 만장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후에 야곱은 바로 앞에서 험악한 130년의 생애를 보내었다고 과거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야곱처럼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이 없으면 아무일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본문에 야곱이 긴 꿈을 꿉니다.
물론 구약시대이고 하나님의 특별한 꿈이었다고 판단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특별한 꿈이 아니더라도 꿈은 사실 그 사람이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나타납니다.
저도 가끔 꿈을 꿉니다. 그런데 거의 교회와 관계 있는 꿈을 꿉니다. 늘 교회만 생각하니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16절에서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합니다. 꿈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이 이곳에 계십니다. 우리교회에 계십니다. 내 옆에 계십니다.

역사상 위대한 선교사가 많이 있지만 제가 관심을 가지는 선교사중의 한 사람은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입니다. 슈바이처는 독일의 의사, 음악가, 철학자, 개신교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입니다. 이것도 다 대충한 것이 아니라 박사학위만 4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박사학위 때문만은 아닙니다.
슈바이처는 1875년 알자스의 카이제르스부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인 루이 슈바이처 목사의 큰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슈바이처의 건강 때문에 몸이 약한 아들의 건강을 위해 독일 농촌인 귄스바흐에서 자랐습니다. 귄스바흐에는 가난한 루터교인들이 살았습니다. 거기다 아버지는 또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비참한 삶에 대해서 자주 설교했습니다. 거기서 슈바이처는 가난한 자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 시절, 19세 이상의 독일국민은 군복무를 해야 한다는 병역법에 따라 군복무를 하였는데 이때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1899년 스트라스부르의 목사가 되었으며, 1902년 모교의 신학부 강사가 되었습니다.
군대 복무 중 성령강림주일 휴가를 집에서 보냈는데, 이때 “나는 이렇게 가족들과 행복하게 휴가를 보내는데, 이러한 행복을 나만 누려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나만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아프리카(현재 가봉 공화국) 랑바레네로 떠났습니다. 병원 건물은 선교사가 사용했던 닭장을 수리하여 사용했습니다.
그는 저술과 강연, 연주, 레코드 등에 의한 수입으로 병원을 자력으로 운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자금이 달려 운영이 어렵게 되자, 병원의 기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돌아왔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태어난 알사스 지방은 당시 독일의 영토였으므로 독일 사람이라는 이유로 구금되었으며, 1917년 프랑스 포로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그에게 준 가장 큰 상처는 어머니가 1916년 프랑스 군인들의 군마(軍馬)에 치여 죽은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가두고, 어머니를 죽인 프랑스를 국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이 지역이 단순히 프랑스로 넘어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가봉에서 선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갔으나, 병원은 부서져 뼈대만 남아 있었습니다. 병원운영에 필요한 돈은 3년에 한 번 꼴로 유럽으로 돌아와 연주회를 열어 번 돈과 저서의 인세, 강연으로 받은 돈과 기부금으로 충당했습니다. 슈바이쳐도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화려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 많은 재주를 가지고 보통 선교사와 마찬가지로 살았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한 영혼을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생명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나는 나무에서 잎사귀 하나라도 의미 없이는 뜯지 않는다. 한 포기의 들꽃도 꺾지 않는다.
벌레도 밟지 않도록 조심한다. 여름밤 램프 밑에서 일할 때 많은 벌레의 날개가 타서 책상 위에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창문을 닫고 무더운 공기를 호흡한다.” 고 했습니다. 우리도 생명을 소중히 여깁시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내부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안에 빛이 있으면 스스로 밖이 빛나는 법이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앙교회는 컴퓨터선교와 인터넷를 통해서 복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미래에 비전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교회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다음세대의 우리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부르짖는 것은 ‘다음 세대에 더 좋은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세대에게 물려 줄 믿음의 유산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하여 기꺼이 대가를 지불할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조금 더 고생을 해도 다음세대에게는 더 좋은 것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것까지 더 좋은 것을 물려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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