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14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1- 15)

얼마 전 미국 경제가 좋을 때 미국에 이민 가면 그림 같은 집들을 집 값 10%만 내면 산다고 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은 시간문제로 보였습니다. 이것이 착각입니다.
진실은 10%입니다. 집 값을 내고 20-30년 매월 할부금 내느라 투 잡에 심지어는 스리잡에 주 7일 근무를 해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말 그대로 잠만 잡니다. 집(건물)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꼴이 된 겁니다. 여관도 아니고 오죽하면 이런 말이 있겠습니까. 멕시칸 가정부 호강시켜주러 미국 이민 왔다고 한탄합니다. 하루종일 돈 벌어다 하루종일 집 청소하는 가정부 다 같다줍니다. 그래도 가정부는 집에서 살아보지만 돈벌어오는 그 집 주인들은 집에서 살 시간이 없습니다. 그 뿐 인줄 아십니까 할부금을 조금이라도 못 내면 바로 은행 넘어가 다시 월세아파트로 돌아갑니다. 지금 이렇게 된 분이 많습니다.

이 집을 내 집으로 만들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가지게 하려면 진실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것은 믿음은 아무 노력도 힘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0%만 내면 당장 내 집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많습니다. 돈은 좀 못 벌어도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식구들에게 믿음이 생깁니다. 아버지가 열심히 살면 자식교육은 저절로 됩니다. 진실한 믿음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믿음은 부지런한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12절 “게으르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믿음이 있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부지런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이 부지런합니다.
하나님이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고 했을 때 바로 4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면 지체할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며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삭을 바치러 가는데도 지체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창 22:3) 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하는 이 절박한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고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치라고 했으니까 믿고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뭐가 급해서, 뭐 좋은 일이라고 새벽에 일어나 갑니까.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출 24:4) 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소유자들은 모두가 열심입니다.

믿음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본문 12절 “오래 참음으로” 15절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바울은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 8:25)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하는데 그것을 못 기다립니까 예수님도 말세 때에는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4:13)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끝까지 참고 기다릴 때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 1:8)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주님이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 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8-29절에 보면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두아디라교회에 보낸 말씀이 나옵니다. 이 교회는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 2:9) 고 했습니다. 열매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처음에 비해서 많은 결실을 맺은 교회입니다. 성장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유명한 이단자 이세벨을 용납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습니다. 우리가 제사음식도 기도하고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18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경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입니다. 이 말씀이 최종적인 말씀입니다. 제사 음식 먹으면 안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안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을 말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것”은 아폴로 신전, 제우스 신전 같은 곳에서 일하고 그 대가로 먹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기가 힘들다보면 우상의 제물에도 욕심이 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아폴로신전에가서 일해주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싫어하십니다. 이 두아디라교회에는 이것 이외에는 더 바랄 것이 없었습니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계 2:24)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계 2:26)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힘이 들어도 주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이 들어도 청소년에게 술, 담배 팔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노아는 600년을 그리고 에녹은 300년을 아브라함은 175년을 이삭은 180년을 야곱은 147년을 요셉은 110년을 모세는 120년을 여호수아도 110년을 모두 믿음을 지켰습니다. 치우치지 않았던 분들입니다. 롯이라는 분은 가다가 물질에 치우치기도 했습니다. 그런 분들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믿음은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13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13절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믿음이라는 말에 항상 따라다니는 것은 “약속”입니다. 약속을 못 믿는다면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 6:14) 하나님의 이 약속을 아브라함이 믿지 못했다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를 버리고 못 떠나는 것입니다. 정들었던 고향보다, 친척과 아버지가 있어 안정되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떠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오시기전에 기록된 말씀을 ‘구약’이라고 하고 예수님 이후의 말씀을 ‘신약’이라고 합니다. 둘 다 하나님의 변함 없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믿는 다는 것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든 고행을 떠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네 놓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반드시”라고 번역된 원문은 “levgwn, Ei mh;n(레고 에 멘)”입니다. 말(레고), 그 다음에 나오는 ‘에’는 분명하게는 참으로의 강세형 부사입니다. 그리고 ‘반드시(멘)’ ‘확증 적으로’라는 뜻의 강세형입니다. 그러니까 반드시 라는 번역의 단어는 ‘에 멘’ 인데 두 단어모두 강세형으로 나옵니다. 우리말 ‘반드시’ 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 고 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죄인도 자기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주는데 죄가 없으시며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더 어떻게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합니다. 거짓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약속을 하고 지킬 수 없는 의지도 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약한 인간이 약속하는 것을 금지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돈이 거짓말시키지 사람이 거짓말 시키냐”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기에는 많은 변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이 우주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나의 사정을 나보다 더 잘 아시는 분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육신의 부모는 육체를 낳을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나의 영혼까지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낳으셨기에 나를 아십니다. 그 하나님이 이제 나를 믿으라 하십니다. 우리가 육체가운데 거하였을 때에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없었지만 이제 우리가 영으로 하나님께 이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믿고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은 내 인생을 바치는 것입니다.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찬양하십시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몸바쳐 주의 일 힘쓰시기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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