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교육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2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3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6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시 37:1-9)

금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양궁이 남, 여 단체전은 모두 금메달을 땄는데 개인전에서 그만 한 점차로 은메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절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금메달을 따다가 한 점차로 따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양궁을 잘 하냐 하는 것은 세계가 다 압니다. 그래서 세계양궁협회가 한국이 메달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규정을 매번 바꾸어 왔습니다. 아마 스포츠 사상 어떤 한 나라를 견제하기 위해서 이렇게 규정을 매번 바꾼 종목은 없습니다.
원래 양궁경기 규칙은 30, 50, 60, 70미터(여자부, 남자부는 30, 50, 70, 90미터) 경기로 각 거리별로 36발씩 발사하여 1,440점 만점으로 경기가 진행되었습니다. 한국이 다 따가니까 개인전과 단체전 메달만 올림픽에서 시상합니다. 그래도 다 따가니까 나온 방식이 국가대표 선수들 수를 3명으로 줄인 것입니다. 개인전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체전에서 만이라도 한국의 금을 한번 막아보자는 취지로 만든 방식입니다. 그래도 다 따갑니다. 그래도 안되니까 기록경기인데도 불구하고 두 명 씩 붙여서 토너먼트로 올라가도록 했습니다. 그것도 안되니까 빨리 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한국이 다 따옵니다.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는 0-10점까지 있는 표지판을 가운데 점하나 찍어놓고 0점과 1점으로만 구성한 것입니다. 한국 선수들은 8점 이외는 거의 안 쏘니까 이제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이것도 안되니까 양궁경기장 자체를 바람이 아주 지저분하게 부는 장소에 배정하여 경기를 치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안됩니다. 바람과 비를 감안하여 쏘기 때문에 그래도 10점에 들어갑니다. 이래도 안되니까 아예 경기장의 바람 방향이 한 방향이 아니라 쏘는 곳과 표적지의 중간지점에서 바람이 수시로 바뀌는 아주 요상한 장소에서 양궁경기를 개최합니다. 그래도 한국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성경(신약 헬라어)에서 죄라는 의미의 단어 하말티아(aJmartiva)는 ‘과녁을 못 맞히는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과녁을 잘 맞히는 대한민국의 양궁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깨닫고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의 말은 경우에 맞는 말이 있고 맞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말인데도 경우에 맞지 않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머리 신사를 보고 “참석해 주셔서 빛났습니다.” 라고 한다든가 출감하는 죄수를 보고 “꼭 다시 한번 들러 주세요.”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오늘 성경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는 말씀이 나오는데 우리가 쉽게 성경을 읽지만 이 말의 의미는 매우 깊습니다. 학자들이 인간 심리를 알기 위해서 시도한 ‘인식차단’ 이라는 실험이 있습니다. 구멍을 두 개 내어서 사람이 두 눈으로 안에 있는 그림을 보게 하는데 한 쪽은 아주 슬픈 그림을 한 쪽에는 아주 기쁜 그림을 동시에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두 개를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식에 따라서 슬픈 그림과 기쁜 그림이 잡힌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는 사람은 기쁜 그림이 보이고 슬픔이 있는 사람은 슬픈 그림만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두 개가 같이 보이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기쁨이라는 영역과 슬픔이라는 영역, 부정적인 영역과 긍정적인 영역 이 두 가지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개가 습관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습관이 사람을 만든다” 는 것입니다.

네 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가 유명한 현인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습니까?” 현인은 어머니를 정원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는 정원에 있는 네 그루의 나무를 한번 뽑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갓 심어놓은 첫 번째 나무를 아주 쉽게 뽑았습니다. 두 번째 나무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약간의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세 번째는 심은 지 꽤 지난 나무였습니다.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그것을 뽑았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나무는 이미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힘을 쏟았으나 나무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현인이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자녀교육도 이 나무와 같습니다. 오랜 습관은 깊은 뿌리를 내려서 그것을 바꾸기가 어렵지요. 어린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하십시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건강한 심성과 좋은 습관인 것입니다. 이것은 시련을 만날 때 더욱 빛을 발합니다.

본문 1절에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8절에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하게 치우칠 뿐이라” 분을 그치라,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이런 말을 거듭거듭 말합니다. 불평하고 투기하는 것을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기뻐하려면 우리 안에 있는 불평, 투기, 분, 노 이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서양에서 고전음악을 하는 대가들은 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프란츠 요셉 하이든 같은 사람은 우리에게 좋은 간증을 들려줍니다. 이 사람은 백곡 이상의 심포니를, 80곡 이상의 소나타를, 또 거대한 두 개의 오라토리오를 남겼는데 하이든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작곡할 때 늘 하나님을 생각한다. 그러면 내 마음에 기쁨이 솟아오른다. 그리고 마치 악보에 음이 춤추는 것 같고 내 마음도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다시 말하면 곡이 좋아서 내가 기쁜 것이 아니고, 내 마음에 기쁨을 가지니까 좋은 곡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든의 음악이 기쁨을 표현한 것이 많습니다. 기쁨을 가지니까 악보가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인다는 이 하이든의 고백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결과에 매인 기쁨이 아니다.

4절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 안 합니다. 반대로 말합니다. ‘내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기뻐하겠다.’ 이게 세상논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리하면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고 말씀합니다. 소원이 이루어져야 기뻐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먼저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내 마음에 감사를 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해야 우리 기도가 감사의 기도로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감사가 없을 때는 우리 기도에 감사와 반대되는 감정이 묻어 나오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 기도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성령은 기쁨의 영입니다. 가끔 원망하면서 기도하는 분들을 봅니다. 여러분! 감사하세요. 아직 몰라서 그럽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라는 것을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믿음 좋은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느 날 길을 가는데 참새가 날아 가다가 그만 실례를 했는데 그 배설물이 이 사람 머리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난처합니다. 기분 나빠집니다. 불평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 좋은 사나이가 무엇이라고 말한 줄 아세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황소를 날지 않도록 지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랬습니다.

기쁨을 관리하라

그런데 우리에게 여호와를 기뻐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이 자꾸 우리 안에서 일어납니다. 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자는데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농부가 곡식을 심었는데 그 곡식이 잘 되는 밭에다가 마귀가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비유는 아주 현실감이 있습니다. 마귀는 잡초밭에 가라지를 안 뿌립니다. 허허벌판에 가라지를 안 뿌립니다. 곡식을 심어 놓은 밭에 뿌립니다. 마귀는 은혜 받은 성도를 건드리지, 은혜 못 받은 성도는 마귀도 버린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시험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세 절을 확인합니다.
3절에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5절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맥스 루케이도의 ‘길을 버리고 길을 묻다’에서 고백한 말입니다.
필요한 건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뿐이었는데, 나는 말씨름을 벌였습니다.
필요한 건 그저 들어주는 일뿐이었는데, 입을 크게 벌리고 떠들었습니다.
필요한 건 참는 마음뿐이었는데, 주도권을 잡으려고 뛰어다녔습니다.
하나님께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어떻게든 내가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이라고 합니다.

기쁨을 보여주어라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은 좋은 생각만 합니다. 그러나 나쁜 습관을 가진 사람은 나쁜 생각만 합니다. 작은 생각의 차이 하나가 인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아동발달 분야의 권위자인 아널드 게젤 박사는 “어린이는 한 쌍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시각 세계를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다. 그 세계는 직접 만들어야 하고 그것은 자기만의 창조이다.” 고 말합니다. 눈은 가장 중요한 감각입니다. 분별력을 주는 기관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들어오는 정보의 80%는 눈을 통해 인지됩니다. 지금도 대부분 활자화된 언어에서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가 삶을 좌우하게 됩니다. 세상에 추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좋은 것을 취사선택하여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은 복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좋은 것을 보여줄 수 부모는 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육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교회에 나오세요. 기쁨으로 성경을 보세요. 기뻐하며 사세요. 세상 행복의 조건을 따져서 살려고 하면 기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큰 교회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나올 수 있는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세요. 도스토예프스키의《카라마조프의 형제들》중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본문 7-9절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9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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