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회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6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5-10)

펄벅은 ‘살아있는 갈대’ 머리말에서 “나는 이 소설에서 한국인들을 묘사할 때 항상 그들에게 진실되려고 노력하였다.” 고 했습니다. 펄벅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항상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도록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한국문화는 정의 문화이기 때문에 정이 진실보다 더 중요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인맥 만들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좋은 사람 만나서 교재하면서 좋은 영향을 받겠다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뜻이 아니라 많은 사람 알아 두어서 출세를 해 보겠다는 것이지요. 교회도 인정에 끌려서 교회 다니고 교회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정만 통하면 무엇이든지 다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큰 교회 목사님이야기 하면서 자기가 잘 안다는 것입니다. 큰 교회 목사님 알면 저절로 천국가게 됩니까? 교회를 하나로 묶어주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묶어주는 진정한 힘은 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서로에 대해 참된 진실을 말하고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 삶에 있는 것입니다.
제 9계명에 보면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때 가장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의 배경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후 그의 남편 우리아를 음모로서 적에게 죽게 만든 다윗이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했으나 그 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보내 그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때의 죄를 기억하면서 다윗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범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죄를 알고 회개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특히 왕이 되면 더 교만하여져서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실 왕을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며, 예수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것이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왕을 뽑았고 그 왕들은 대부분 타락했습니다. 정말 자신을 왕으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비록 왕이었지만 자신이 절대적인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납작 엎드리는 마음과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했습니다.

5절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부모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죄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지은 죄는 간음과 의도적인 살인죄입니다. 만일 평민처럼 하나님의 법대로 한다면 그는 돌로 쳐죽임을 당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기 때문에 그를 돌로 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만일 포악한 왕이었다면 당시의 왕권을 생각한다면 평민 한사람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방인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차이입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원인을 “너희가 가난한 자를 밟고 저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취하였은즉…”(암 5:11)이라고 말합니다. 이 당시의 이방 왕들은 말 그대로 자신들이 왕입니다. 왕이라는 말은 인간에게는 신이라는 말로 지칭되었습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그랬고 당시 앗수르, 페르시아 왕국 등이 모두 그랬습니다. 나중에 생겨난 로마 역시 황제라고 칭하면서 자신을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일본의 천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김일성, 김정일 부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다릅니다. 자기 위에 계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진정한 의미에서 왕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서 전달하고 시행하는 종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이 바라시는 왕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출생을 말하면서 죄인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근본 된 죄인임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가 부모에게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래 죄인으로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동시에 하나님만이 진실하신 분이며 이 땅에 아무도 깨끗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4절에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범죄가 사람에게 대한 것이기에 앞서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라는 고백입니다(삼하 12:13). 자신들의 죄가 인간관계에서만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어떤 사람입니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라고 했습니다(엡 2:1). 우리는 다 죄악이 많고 허물이 많은 우리들입니다.
다윗은 말로만 죄를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이 죄로 얼마나 아픈지를 고백합니다. 8절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꺾으신 뼈”는 정신적 고통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뼈는 인간 신체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을, 그리고 사람에게 제일 통점(痛點)이 있는 부분으로 묘사됩니다(6:2, 사 58:11, 렘 23:9). ‘꺾으신 뼈’(hj;fu:투하)는 콩팥, 가슴속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투하’는 ‘hj;f;:타하’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타하’는 궁수나 화살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제일 깊숙한 곳에 화살을 맡은 것 같은 아픔을 다윗이 느끼고 있습니다. 뼈속깊이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아픔 없이는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아버지는 폴란드 사람입니다. 고향인 폴란드의 슐레지엔으로 가기 위해서 말을 타고 산길을 갔습니다. 그때 우려했던 대로 강도들이 나타났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기고 말도 빼앗겼습니다. 강도가 물었습니다. “숨긴 것이 없느냐” “없습니다.” “그럼 가거라” 무사히 강도들 틈을 빠져나와 한숨을 쉴 때 바지춤에 비밀히 감추어둔 금덩어리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강도들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회개합니다. 조금 전에는 너무나 무섭고 정신이 없어서 숨긴 것이 없느냐고 물을 때 없다고 대답했는데 가다보니까 이 금덩이를 숨긴 것을 발견했습니다. 받으십시오.” 강도에게 숨겼던 금덩어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러자 강도는 빼앗은 물건과 말을 내주면서 엎드리더니 “나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당신이 두렵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주께서 진실을 원하신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문 6절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하나님께 거짓은 통할 수 없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4) 왕을 세워 달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무엘이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실이 빠져버린 형식적으로 변한 절기나 성회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암 5:21-22 “21 내가 너희 절기를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22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시 51:16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진실이 없는 의식에 빠진 제사를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진실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형식으로 굳어진 신앙과 믿음을 진실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바리새인들하고 많이 격론을 벌이신 것입니다.
마 23:27-28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우리가 주님께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진실입니다. 진실이 없어진 충성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결여된 예배와 헌금은 무익한 것입니다. 무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화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구약과 달라서 하나님이 직접 심판하시는 장면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니아는 아내 삽비라와 함께 하나님께 드리기로 한 땅 판 돈을 떼어먹었다가 죽었습니다(행 5:1-5). 하나님이 돈이 욕심이 나셔서 그러셨겠습니까? 진실하지 못한 것을 두고보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ejn pneuvmati kai; ajlhqeiva/ dei’ proskunei’n.:엔 푸뉴마틴 카이 알레데이아 데이 프로스퀴네온)는 원문의 단어를 나열하면 “안에서 영 그리고 진리 반드시 예배”입니다. ‘데이’(반드시)가 있습니다. 반드시 무엇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까? 진리, 진실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정결케 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본문 7-9절 까지는 자신을 깨끗하게 해 달라는 다윗의 간청입니다.
“7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8 나로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듣게 하사 주께서 꺾으신 뼈로 즐거워하게 하소서 9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우슬초는 문둥병이 완쾌되어 부정한 상태에서 벗어난 자나, 시체나 무덤을 만진 자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몸에 희생의 피나, 물을 뿌릴 때 사용하는 식물을 말합니다(레 14:4, 민 19:18). 다윗 시대(구약)에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예수께서 모든 죄를 속하시고 우리의 죄를 이미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다윗과 같은 진심이 있어야 합니다.

보스톤 어느 교회에서 4년 간 부교역자로 계셨던 한인 1.5세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몇 사람이 제직회에서 하도 부당하게 굴어서 젊은 나이에 참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혈기를 부렸더니 담임목사님이 ‘김 목사, 그들이 모두 성자라면 자네나 나를 왜 이 교회가 필요로 하겠는가?’ 하면서 충고해 주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아 나는 그들 때문에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솔직히 그들을 사랑하기가 어렵지만 자네마저도 그들을 미워하면 그들은 어느 목사에게 사랑을 받으라는 건가. 정말 나를 위한다면 자네는 그들을 선한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해 주게나.’ 이 말이 늘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본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자신이 완전히 달라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창조하시고”(바라)는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를 하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심령을 새 창조하듯이 완전히 변하게 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19남매가 있는 집에서 자랐어요. 한 어머니가 19남매를 낳은 겁니다. 그런데 그 자녀들이 모두 훌륭하게 됐어요. 아침마다 조회를 하는 거예요. 주-욱 세워놓고 “하나님이 너를 향하여 큰 계획을 갖고 계신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룰 수 있는 위대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거기에서 찰스 웨슬레가 나오고 요한 웨슬레가 나오고, 세계적인 인물이 그 가정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은 좋은 말을 들어야 돼요. 신앙의 말, 감사의 말, 믿음의 말을 들어야 하는 거예요. 사람은 맡아야 된다. 맡아야 정신을 차린다. 아닙니다. 잠깐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짐승이 아닙니다. 잘 가르치고 사랑과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주님의 손이 능력의 손입니다. 태어났다고 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 창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요.

저도 진실을 하나 말할께요. 지금 제가 제일 걱정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따가 주일학교 5분 설교하라고 강수경 집사님이 부탁했습니다. 얼마나 고민했는지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습니다. 기도해 주세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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