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125. 성경 말씀) / 본문 : 마 1:21-22, 딤후 3:15-17, 시편 19:7-10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어느 날,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함께 뜰에서 구름을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저쪽 학의 날개와 같은 구름이 내거냐?”
“저 산봉우리 맨 위의 접시 같은 구름이 내거야?”
“그럼 그 아래 주먹 같은 구름이 내거야?”
아이들은 저마다 이렇게 자기가 좋아하는 모양의 구름을 가리키면서 서로 자기 구름이 멋있다고 우겨대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름은 서풍에 의해 그 형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것을 보자 한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습니다.
“왜 그래?” 두 아이가 일제히 물었습니다.
“우리 구름들이 다 없어지니 저절로 눈물이 나!” 한 아이가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말했습니다.
“임마, 그럼 구름이 늘 그 모양대로 있는 줄 아니? 병신같이…”
“그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는 거야?”
“우리도 나중에는 저 구름처럼 없어지고 말게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서 어떻게 되었는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우리는 한낮 덧없이 사라지는 구름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말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1. 성경을 기록하신 삼위일체의 하나님

한 권의 성경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님의 연합하심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1,600여 년 동안에 걸쳐(구약 1500년, 신약 100년) 무수한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는데, 그들은 예언자, 목자, 음악가, 세리, 의사, 왕 등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과 저자들이 있었지만 그 내용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한가지 관심과 주제를 가지고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① 기록케 하신 이는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이는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우리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며 범죄한 인간을 구원으로 이끌기 위함입니다.

② 기록하신 이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성령 하나님께서는 감동 받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깊은 뜻, 즉 범죄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구원의 약속을 전달하시기 위함입니다.

③ 기록된 것을 이루신 분은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 24:27)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잡혀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때 한 제자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베었습니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다. 이 위기를 빠져나가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마 26:52-54)
성부 하나님이 성령의 감동을 통해 기록케 하신 그 약속을 이루신 분은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그 약속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다 이루시고 가셨습니다.
1994년, 기독교 선교팀이 성경책을 나눠주려고 러시아의 스타브로폴 지역을 방문했다. 그 지역의 오래된 창고 하나는 1930년대에 강제노동수용소로 사용된 곳으로 당시 압수했던 물품들을 보관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그때 압수했던 성경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 성경을 트럭에 실으러 왔던 사람들 가운데는 하루 품삯을 벌려는 젊은 무신론자 학생도 한 명 끼여 있었다. 그는 성경 한 권을 훔쳐 작업장을 빠져나갔다. 얼마 후 동료들이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수백 권의 성경 가운데서 그가 훔친 것이 바로 자기 할머니가 쓰던 성경이었던 것이다. 그 성경에는 자기 할머니의 서명이 그때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2. 성경의 역할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성경은 크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도구이며 또한 인생들을 이끄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경이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디모데후서 3:15-17 말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15절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예수께서도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눅 4:16)

② 교훈과 책망과 의로 교육합니다.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③ 우리의 행위를 온전케 합니다. 17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안전한 항구 되시는 하나님의 품에 이르도록 돕는 영적 인도서인 동시에 그 미래를 보장하는 소망의 책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게 될 때에 우리 인생 여정은 가장 안전하며 확실합니다. 성경 말씀이 아닌 다른 가르침을 좇음으로 인해 인생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3. 성경에 대한 바른 자세

올바른 성경 관은 올바른 신앙 생활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럼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한 바른 성경 관, 즉 성경에 대한 성도의 바른 자세란 어떤 것일까요? 왜 같은 성경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변화를 받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고 어떤 사람은 그대로 사는 것이겠습니까? 성경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① 사모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② 신뢰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③ 역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얹듯 믿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비전이 있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 24:32)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제게 뜨거워진 이 마음이 여러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뜨거워지지 않습니까?

4. 성경이 주시는 은혜

시편 19:10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십니다. 금은 귀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돈 대신 금을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경제가 불안하여 돈이 값어치가 없어지면 금을 삽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 금보다 훨씬 더 귀한 것입니다. 시편 19:7-10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① 생명을 줍니다. 7절(상)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금은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살리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② 지혜를 줍니다. 7절(하)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금은 우리를 지혜롭게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를 미련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만드십니다.

③ 기쁨을 줍니다. 8절(상)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금은 있을 때는 기쁨이 있지만 없어지면 그 기쁨도 금새 사라지는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훈이 주는 영혼의 기쁨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④ 영안을 줍니다 8절(하)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물질인 금은 탐욕을 우리 눈을 가려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정결한 여호와의 계명은, 그것을 지켜 행하는 자의 영안(靈眼)을 밝혀 천국을 보게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 아이는 성장하여 한국인 최초의 7인 목사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숭실학교와 숭덕학교을 설립했으며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사람입니다.
길선주 목사는 당시의 풍속에 따라 11살 때 나이 많은 아내와 결혼하였습니다. 하루는 서당에서 오전 공부를 마치고 점심 먹으러 집에 돌아온 선주는 곧장 부엌에 들어가 솥에서 밥을 퍼담는 아내에게 손을 내밀며 “나 누룽지 좀 줘. 하고 졸라대었다.”
선주는 아내 등에 업혀 뒷동산에 올라가 달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내가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있는 것을 내려다보자 어린 신랑은 아내의 두 귀를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뭘 그렇게 내려다보는 거야”
아내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흥, 등에 업힌 서방님의 강짜가 너무 심하네요”
그는 12세 글방 백일장(白日場)에서 장원했는데 그 시입니다.
[농부의 아내를 만들지 말지니
해마다 고생이 이와 같도다
옥 같은 소니에 신고가 그치지 않고
꽃다운 마음속에서 팔자를 한탄하네
청루에 있는 것은 뉘집 딸인고
밤마다 끄리는 옷이 닳는 소리뿐일세]

그는 17세 때 안주에서 불량배 윤학영 3형제로부터 억울하게 무수히 구타를 당합니다. 그의 부친은 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식구를 거느리고 평양에 이주까지 했으나 마음에 깊은 상처만 입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허망한 현세에서 불변의 영계(靈界)를 동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또 현실을 부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부친은 이미 늙어 그가 집안 살림을 보살펴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는 평양의 거상 이재경의 상점에서 1년 동안 상술을 익히고 18세 때 따로 상점을 경영하였습니다. 그는 성격이 맞지 않는 점포를 꾸려 가는 동안에 이해와 타산에 매인 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꼈고 늘 자기 자신을 자책하며 살았습니다. 평양 북 마을의 면장으로 있으면서 첩을 두고 두 집 살림을 하던 형은 물건을 닥치는 대로 가져다 쓰고 원금도 갚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장사에 으레 따르게 마련인 에누리를 할 줄 몰라 매상은 올렸지만 이문을 내지 못해 결국 장사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래저래 그는 세태에 대한 실망과 혐오만 더하여 염세에 빠진 데다가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은 어혈(瘀血)로 허약한 몸에 중병까지 겹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부인의 극진한 간호와 부모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병세가 차츰 호전되었으나, 그는 세상이 싫어 살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후 수도에 뜻을 두고 김순도(호 창일)라는 사람을 만나 수도의 길을 걷습니다. 산신차력(山神借力)에 도가 틉니다. 19세에 관성교(關聖敎)를 숭상하고 21-29세까지 9년 동안 선도(仙道)에 심취된 도인 길선주가 하나님을 만나가 된 것은 어느 날, 평양에서 이런 소문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평양에 괴상한 사람이 하나 나타났다더라. 키가 꺽다리이고, 파란 눈이 우묵 들어가고, 코가 크고, 머리털은 볼그레하고 옷은 괴상하게도 쳇다리 같은 바지에 무당의 덧옷 같은 긴 저고리를 입고, 말은 무슨 말인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데, 그게 바로 양귀자(洋鬼子)라고 하더라. 그런데 그 사람이 양교(洋敎)라는 교를 가지고 와서 전하는데, 한번 거기 발을 들여놓으면 혼을 뽑아서 미치고 만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선교사에 대한 이런 유언비어는 삽시간에 쫙 퍼져 온 성내가 떠들썩했습니다. 이 괴상한 인물은 한국에 파송 된 마펫(한국명 마포삼열, 인디애나주 매디슨 출생으로 1884년 하노빌대학을 졸업하고, 1889년 매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선교사로 와서 평양장로회신학교 세움) 선교사로, 그는 1890년 1월에 제물포를 거쳐 서울에 도착했으며, 그 해 8월에 평양에 와서 여문 앞 김선달의 집에서 유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독교에 귀화한 한석진(韓錫晋)씨가 평양에서 마펫 선교사의 일을 돕고 있었습니다.
길선주의 귀에 이 소문이 들어간 것은 그가 평양 널다리골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양귀자가 새 교를 전한다는 말에 호기심을 느끼고 어느 날 마펫 선교사를 찾아가서 담론을 나누었는데, 그 선교사가 전하는 교에는 뭔가 취할 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도무지 알쏭달쏭하여 감히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후 1893년 봄에 그는 친구 문흥준을 마펫 선교사와 한석진씨에게 소개하고, 그 해 여름에는 김종섭을 소개하였습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뭔지 좀더 분명히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길선주가 23세 때 김종섭은 선도를 숭상하면서 도인 길선주의 소문을 듣고 찾아와 도리를 담론하고 형과 아우를 맺은 사이었습니다. 그런데 양교의 내용을 알아보라고 마펫 선교사에게 소개한 김종섭이 어느새 예수를 믿게 되고, 길선주에게도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양교라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미 우리나라에 전해진 천주교를 새로 바로잡은 것으로 선도와는 댈 것이 아니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고 바르게 살아야 하오…”
“듣기 싫어요” 길선주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니 양코가 뭔지 알아보라고 선교사에게 소개했더니 형님은 금방 양귀신에 홀렸구려. 그런 경솔한 변심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러나 한편 길선주는 김종섭의 회도에 큰 충격을 받고, 필경 거기에는 그럴 만한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기독교를 철저히 연구하기 위해 중국 성서공회에서 발행한 관주 신약(貫珠新約)을 입수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관주가 있는지라 구약을 읽지 않을 수 없어 곧 한문으로 된 구약 성경도 구입하고, 성경 주석과 그 밖의 기독교 서적도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무슨 소린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전설이나 신화 같기도 하고 심지어 무당의 독백 같기도 하여 종잡을 수 없고, 불교와 같이 오도의 지름길을 설파하거나 유학과 같이 깊은 인륜도덕을 논한 것도 아니고, 선도의 주문처럼 신비의 교리를 제시한 것도 아닌 아리송한 내용으로 표현은 쉬운데 알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니 가타부타 비판할 수도 없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이 없이 사교에 젖은 머리에 하나님의 말씀이 쉽사리 들어갈 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길선주는 평양성내 해주골 입구에 집을 마련하고 가게를 내고 있었습니다. 김종섭은 매일같이 그를 찾아와서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권면 했습니다. 형님, 글쎄 예수가 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덮어놓고 믿으란 말이오 그러나 김종섭은 실망하지 않고 그를 찾아올 적마다 회보(回報)인 [그리스도 신문]을 갖고 와서 읽어 주었습니다. 하루는 김종섭이 [이 선생전]이라는 전도 책자 한 권을 가지고 와서 읽어보라고 길선주에게 주었습니다. 그 책에는 아편 중독자로서 방탕한 생활을 하던 어떤 중국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예수를 믿게 된 경위가 쓰여 있었습니다. 길선주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게 방탕한 생활을 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고 착해졌다는 이야기가 신기하기는 했으나, 별로 감동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김종섭은 다시 [장원양우 상론(張元兩友相論)]이라는 다른 책 한 권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해 주고받은 두 사람의 대화가 담긴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길선주는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김종섭은 또 다른 책한 권을 읽어보라고 주었는데 그것은 [천로역정: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것, 1888년, 토론토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 기독청년회 지원으로 25세 되던 1888년 12월 15일 기포드와 함께 내한했습니다. 성경번역을 주도했는데 마펫과 게일은 "하나님"으로 번역하기를 주장하여 결국 하나님으로 관철하였습니다. 그리스도신문 주간이었고 그는 제2대 독노회장을 지냈고 정신여학교와 경신학교와 연동교회를 설립했습니다.]이었습니다.
길선주는 별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 장롱 밑에 밀어 넣고 여전히 선도에 몰두하였다. 그 날도 주문을 열심히 외우고 있는데 김종섭이 찾아왔습니다.
“아직도 삼령 주문을 외우고 있소?”, “그러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는게 어떻겠소?”
길선주는 날마다 삼령신군에게 기도하였습니다.
“삼령신군이시여, 예수교가 참 도인지 거짓 도인지 알 수 없으니 가르쳐 주옵소서!”
그는 이렇게 기도하기를 며칠이 지나니 선도가 과연 영생불사(永生不生)의 도인지 차츰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는 지금까지 썩은 새끼줄을 튼튼한 생명줄로 잘못 잡고 있었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김종섭 처럼 예수교를 냉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 예수교 역시 구원의 길이 보장되는지 확실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러 지도 못하고 저러 지도 못하는 가운데 심한 번민에 빠져 입맛을 잃고 몸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문득 김종섭이 갖다 준 [천로역정]이 생각나 장롱 밑에서 꺼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뜻밖에도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큰 감동을 받아 솟구치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길선주는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령하신 하나님이시여, 저는 심히 마음이 괴롭습니다. 오랫동안 영생불사의 도로 알고 정성껏 선봉 해온 선도에 대해 의심이 생기고, 저 예수교의 도리는 영생의 진리인지 아직 알 수 없으니 저는 마음이 괴로워 견딜 수 없나이다.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가 참으로 인류의 구세주인지 아닌지 분명히 가르쳐 주옵소서!…”하고 기도를 미쳐 마치기도 전에 천장에서 “길선주야, 길선주야, 길선주야!” 하고 세 번 크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는 너무나 놀랐고 두려워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드린 채, “사랑하시는 아버지여, 저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를 살려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그 후 그는 찾아오는 손님을 피하여 100일 기도와 성경 연구에 열중하였습니다. 전에는 아리송하기만 하던 성경 구절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인간을 생명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꿀맛처럼 달아, 밤을 새워가면서 탐독했습니다. 그는 성경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으로 이루어진 감격스러운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영원한 예술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입신하여 조사가 될 때까지 신. 구약 성경을 20번쯤 통독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메시아에 대해 예언한 대. 소 선지서, 시편, 신약의 복음서, 로마서, 요한서신 등은 개별적으로 50번 가량 독파하고 중요한 대목은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는 성경의 심오한 진리에 도취되어 성경 해석에도 일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리하여 선교사들 자신이 은혜를 받기 위해 그를 가끔 집회에 초대하여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의 설교에는 청중의 심령을 찌르는 영력이 깃들어 있었으며 그의 기도에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기도와 성경의 사람]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907년 1월 6일에 장대현교회에서 2,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부흥회에서는 성령의 역사가 크게 일어나 많은 회중들이 회개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1898년 길선주는 30세에 평양 널다리골교회 목사가 되었고,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목회하다가 1935년 안남도 고창교회(高昌敎會)에서 집회 설교도중 뇌일혈로 67세에 순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할 일은 이 말씀을 사모하고 열심히 읽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반드시 전달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성경을 컴퓨터보다 좋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은 먼저 우리가 성경을 좋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곁에 두시고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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