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48.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 / 엡 4:15-16, 5:23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

제가 공원에 앉아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비둘기를 보았더니 다리가 멀쩡한 놈이 별로 없었습니다. 뒷발이 부러진 놈, 옆 발이 부러진 놈, 한 마리는 아직도 실이 얽혀져 있어 잡아 가지고 풀어주려고 했으나 푸드덕거리더니 도망가 버렸습니다. 저도 살려고 인간 가까이 다가왔으나 살아남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상처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배가 고파도 산비둘기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없는 한적한 곳 자연만 있는 곳, 오히려 그곳이 이들이 살기에 더 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둘기는 죽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살겠다고 먹이를 주어 먹으러 오는 모습은 우리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도 비둘기 보다 별로 나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많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닙니다. 다리만 아파서는 죽지 않습니다. 머리가 상하면 죽는 것입니다. 창세기에 사단과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한 것이 있습니다.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심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머리를 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발꿈치 약간을 상하게 됩니다. 시편 74:13에서도 “주께서 주의 능력으로 바다를 나누시고 물 가운데 용들의 머리를 깨뜨리셨으며”라고 했습니다. 사단은 사망 직전에 있습니다.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발꿈치만 상했습니다. 사단의 머리가 깨어진 후에야 교회가 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최고의 인사는 머리숙여 절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찾아온 장면입니다. “그들이 대답하되 주의 종 우리 아비가 평안하고 지금까지 생존하였나이다 하고 머리 숙여 절하더라”(창 43:28)고 했습니다.
“네 아비의 축복이 내 부여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창 49:26)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땅에서 나와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 12:27)고 했습니다.
세상 많은 민족이 인사하는 방법은 약간씩 다르지만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최고의 인사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머리를 숙인다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겸손히 낮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도 머리 숙여 경배해야 합니다. 고개 뻣뻣이 들고 있는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겸손을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북한에는 “숙인 머리 베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잘못을 진실로 뉘우치는 사람은 관대히 용서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머리에 면류관을 씁니다.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를 더하고”(출 29:6)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출 29:7)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시 21:3)
머리가 신체 중에 제일 귀중한 부분이기 때문에 머리에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되는 예식, 왕이 되어 면류관을 머리에 씁니다. 마라톤 우승자는 월계관을 씌어줍니다. 미스코리아는 미스코리아 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좋은 것은 잠언서 기자가 말한 관입니다.
잠언 1:8-9에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
제물에도 머리에 안수했습니다. “너는 수송아지를 회막 앞으로 끌어 오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송아지 머리에 안수할지며”(출 29:10) “너는 또 수양 하나를 취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수양의 머리위에 안수할지며”(출 29:15)라고 했습니다. 또 레위기에 보면 재물을 드릴 때마다 “머리에 안수하고”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그냥 드리면 되지 왜 머리에 안수하고 드리라고 했겠습니까? “안수”예식을 행해야 우리 인간을 대신해서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수하지 않으면 그냥 양, 소를 드리는 것이지 우리 죄를 담당한 제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머리는 신체의 다른 부분과 구분되었습니다.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민 6:5)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민 6:7)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욥 1:20)

예수님이 말씀하신 머리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마 5:36)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마 6: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눅9:58)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마 10:30, 눅12: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마 26:7, 막14:3)

교회의 머리되심
“머리”는 지체를 인도하는 부분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은 곧 교회의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궁극적으로 교회의 머리가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믿음이 있어야 교회가 바로 섭니다.
“두 사람의 머리는 한 사람의 머리보다 낫다.”(헤이우드)고 했습니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바둑둘 때 보면 9급이 100명 모여도 1급 한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머리로 하는 것은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을 합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있으면 있을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머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마음을 합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머리를 가지고 교회를 운영하려고 한다면 안됩니다.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며 운영은 하지만 머리는 되지 맙시다. “주앙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아멘
본문 엡 4:16절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한 지체라고 비유했을 때 그리스도가 머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뜻대로 움직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성전에서 비둘기 팔고 세금내기 위해서 돈 바꾸어주는 사람들의 상을 왜 엎으셨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의 머리가 당시의 대제사장이 마음대로 하고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앙교회는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예수님이 가르쳐 준대로 일러 준대로 만 하시기 바랍니다.

두개의 머리(탈무드)
탈무드에는 어떤 사고법을 단련시키기 위해 현실성이 부족한 원리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어린아이가 태어났다면, 이 아이를 한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아니면 두 사람으로 대우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얼핏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는 것 같지만, 예를 들어, ‘인간은 설령 머리가 둘 이더라도 몸통이 하나이면 한 사람이다’라든지 ‘머리 하나를 한 사람으로 취급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가 태어나 한 달이 지나면 예배당으로 데리고 가서 축복을 받는다. 그런데 이 때 머리가 둘이면 두 번 축복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몸통이 하나이니까 한번만 받아도 되는가? 또, 기도할 때는 작은 주발을 머리 위에 얹는데 이 때 머리가 둘이니까 두 개의 주발을 얹어야 하는가? 혹은 몸통이 하나이니까 한 개의 주발을 얹어야 하는가?
여러분은 이 가설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겠습니까? <탈무드>의 답은 아주 명쾌합니다.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다른 쪽 머리도 뜨겁다고 비명을 지르면 한 사람이고, 만일 다른 쪽 머리가 무표정하게 있으면 두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태인들이 어떤 민족인가를 이야기할 경우, 이 이야기를 잘 인용합니다. 결국, 이스라엘에 있는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거나, 러시아에 있는 유태인들이 박해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고통을 느끼고 비명을 지른다면 그는 유태인이고,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하면 그는 유태인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지체라면 머리는 한 분 예수그리스도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체입니다. 우리 지체 중 하나가 아프면 그리스도는 아프신 것입니다. 즉 교회에 머리가 되신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아픔과 슬픔, 기쁨을 함께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따로 따로 느낀다면 이것은 그리스도가 머리되시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왕의 머리가 되심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되실 뿐만 아니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5)
이 땅의 모든 왕들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을 알면 이 세상의 왕도 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로 다윗 왕이 그랬습니다. 다윗 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제일 큰 민족을 이루었지만 그는 결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맷돌로 골리앗을 이겼던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면 이긴다는 것을, 승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평생 괴로우나 즐거우나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의지했습니다.
왕은 한 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직장에도 있습니다. 가정에도 있습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곳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요, 왕이 되실 때 우리는 그분의 보호와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자기가 머리라고 착각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왕”입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의 긴 주둥이로 내 목의 가시를 좀 뽑아줄 수 있겠나, 사례는 충분히 하겠네”
학은 늑대의 입에 긴 주둥이를 집어넣고 목구멍에 걸린 가시를 어렵게 뽑아냈습니다. 늑대는 그제 서야 살 것 같았습니다.
“옳지 됐어, 참 시원하군, 이렇게 좋은걸”
학은 늑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자 이제 약속한 사례비를 좀 주시지요”
그러자 늑대란 놈이 화를 벌컥 냈습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구, 네 머리가 내 입에 들어갔을 때 깨물어 토막을 내지 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해라”
이솝우화의 한 토막입니다. 세상에는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주앙교회 성도여러분 주님의 은혜 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니까 내가 왕이 되고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