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안에서(정 선교사 파송예배)

본문 :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우리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었던 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민국에 약 1,000만 명의 성도와 7만 명의 목회자, 45,000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에는 20만 명의 역술인(무당)이 있으며 첨단 시대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700번 서비스 ARS와 인터넷으로 역술사업 규모가 연간 1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사명을 확인시켜 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오늘 파송을 받게되는 에스더, 에스라가 가게되는 A나라에는 공식적인 통계에는 개신교인 0%로 나옵니다. 그리고 카톨릭 포함하여 0.02%라고 말합니다. 누군가는 이곳에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달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운명적 삶을 살았습니다. 마치 힌두교의 사상처럼 원래 그런 팔자를 타고 태어났다는 식으로 운명이라며 잘못된 것도 수용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소설이나 동화에 보면 이런 양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는 약자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자의 태만과 실수에 의해서 문제가 해결됩니다. “흥부와 놀부”에서는 두 형제 공히 문제 해결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능한 흥부는 마음씨 나쁜 형의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문제의 해결은 전혀 뜻밖의 제 삼자의 개입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심청전에서도 제 삼자의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됩니다. 장화홍련전은 미해결 비극으로 끝나는데 단지 압제자에 대한 막연한 경고로 끝을 맺습니다.
이런 사고의 틀에서 깨어나 이제 문을 두드리며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되었습니다. 책임질 줄 아는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복음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 선교사를 보내고 가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여…”(사 61:1)

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기독교의 믿음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처럼 기독교는 예수를 떠나면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선교하며 왜 복음을 전합니까? 그것은 모든 일을 예수 안에서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슬람은 마호멧은 있어도 예수는 없습니다. 이곳에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1885년 최초의 목사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도착했을 때 이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들이 처음에 왔는데, 세례를 받기 위해 나오는 사람이 79명이나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서상륜(1849-)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집안이 어려워서 20대부터 보부상으로 만주로 다니며 한약재와 인삼을 팔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 1878년 만주 땅에 있을 때 열병에 걸려서 죽게되었습니다. 그 때 그의 친구들이 아일랜드 출신의 의료 선교사 헌터(Joseph M. Hunter)가 있는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스코틀랜드 출신 장로교 선교사 맥킨타이어(John MacIntyre)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개종한 그를 맥킨타이어는 영국 성서공회 선교사인 로스(John Ross)에게 소개해 줍니다. 이 때 그는 이응찬이라는 사람과 함께 한문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1887년 최초의 한글 성경인 “예수 셩교 젼서”가 발간됩니다.
당시 조선은 쇄국정치를 펴서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는 “금지된 나라, 은자의 나라”였습니다. 서상륜은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합니다. 1883년 성경 100권을 밀반입하려다 중국국경에서 조선관리에 의해 체포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있는 한 관리로부터 도움을 얻어 가까스로 풀려나게 됩니다. 그 후에 그는 도피하여 은둔생활을 황해도 소래라는 작은 마을에서 하게됩니다. 그곳에서 은밀하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한국 최초의 개신 교회인 소래교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소래를 떠나 서울로 들어갑니다. 그는 로스에게 부탁하여 1884년 상해를 통해 성경 6,000권을 제물포에 들여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경을 받은 그는 서울의 동료 포부상들에게 복음을 전해 그 해 13명의 결신자를 얻게됩니다. 그리고 다음해 언더우드, 아펜젤러가 왔을 때 79명이 세례를 받겠다고 나간 것입니다.
서상륜이 전도할 때, 그의 봇짐에는 항상 세 가지를 가지고 다녔답니다. 성경, 금계랍이라는 한약재, 그리고 씨감자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의 필요도 함께 전달해 준 것입니다. 오늘 A나라로 파송을 받게되는 에씨네 부부도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들을 오늘날 전문인 선교사라고 합니다.

3.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느니라
주진국(1944-2005) 선교사님이 들려준 선교사의 삶을 요약하면
1)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처럼 선교지에서의 생활 그 자체가 선교가 되어야 한다.
2) 선교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3) 선교는 말이 아니라 액션(action)이다. (컴퓨터의 일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액션입니다.)
애국과 종족우월주의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되 모든 민족 속에 위대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션(mission)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이요, 영웅주의를 버리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오신 겸손의 본을 보여주신 것이며,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원하지 않는 방법과 행동을 하면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신처럼 살고 행동해야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1) 기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기쁨이 없이는 못합니다.
요한복음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2) 성령이 충만하여 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이 충만하여 한다는 것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3) 감사의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12: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공동번역(개정)] “그 날, 너희는 이렇게 감사의 노래를 부르리라. “야훼께 감사하여라. 그의 이름을 외쳐 불러라. 그가 하신 큰일을 만민에게 알려라. 그 높으신 이름을 잊지 않게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