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힘쓰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에머슨-오늘의 하루)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고령이신 김순이 할머님이 계십니다. 지금 연세가 111세이십니다. 기자가 찾아가 걸어나오시는 할머님을 보고 “걸어나오시네요?” 그러니까 “그럼 걸어나오지 기어 나오냐?”그러시면서 “기사 쓰려면 젊었을 때 하나님 믿으라고 써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06세 때 신앙고백하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고백하기를 “이제 한 살 됐네”라고 하셨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우상에게 절하며 사셨습니다. 우상에게 절하며 산 세월은 100살을 넘게 살았지만 다 헛것이라는 겁니다. 예수 믿고 산 것이 진짜 사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다보면 좋은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뱁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면 하나는 순간 순간을 무심코 보지 않습니다. 그 순간은 다시 찍을 수 없는 장면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그래서 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꽃을 찍습니다. 그런데 인물 사진도 찍는데 제일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자 누드요? 그거 별로 입니다. 자연스런 선을 통해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지만 진짜 아름다운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땀 흘리며 열심히 사는 모습입니다. 힘이 느껴지는 역동적인 사진, 그 사진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런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끔 아마추어들이 시장에서 고생하시는 주름이 많은 분들을 찍어 가지고 흑백으로 만들어 예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고생한 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고생은 하지만, 땀을 흘리지만 힘이 느껴지는 소망이 보이는 그런 사진이래야 됩니다.

이런 사진을 찍는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김희중(에드워드 김)씨입니다. 그가 잘 찍는 사진은 땀흘리며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이분은 한국농촌의 모습을 많이 찍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농부와 코스모스’(1974, 남해), ‘저녁 노을이 붉게 든 노을과 지게진 노인’(1975, 삼천포) 등이 있습니다. 그는 <내셔널 지오그라픽 18년> 기획위원, 편집팀장(4년 8개월)과 <타임> 사진기자를 지낸 분입니다. 타임지와 내셔널 지오그라픽 에서는 사진을 위해서라면 없는 렌즈도 새로 깍아 만들어 주고 비행기도 전세 내어 주고 모든 다 지원해 주는데 입니다. 그가 편집 팀장을 맡을 때 900만 부이던 것이 나중에 1,200만 부로 늘었습니다. 1,200만 부는 한 권의 두께가 1cm라고 할 때 일렬로 세워 놓으면 120km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국화보(영문, SEOUL)의 편집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18년 간 <내셔널 지오그라픽>에서 일하고 편집장까지 했으니 세계적인 한국화보가 나오는 것이지요. 7개 국어로 98개국에 86아세안 게임,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제작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내셔널 지오그라픽 수준으로 만들어지는 겁니다. 세계인이 감탄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인지 처음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휴대전화 LCD TV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없었던 때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나중에 그만두게 된 배경이 있습니다. 김희중씨는 열심히 일하는, 땀흘리는 사람을 찍어서 예술로 만드는데 정부에서는 굳이 돈 들여서 우리나라의 어두운 면을 보여줄 필요가 있냐는 겁니다. 그래서 잘렸습니다. 이분이 내셔널 지오그라픽에서 편집장까지 오르게 된 것은 1973년 최초로 북한을 취재한 공이 컷기 때문입니다. 북한에 갈 때 유서를 써 놓고 미국을 출발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생명을 보장 할 수 없으니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취재 허락을 받고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이틀동안 바깥구경도 못하고 김일성 초상이 붙어 있는 방에서만 지냈습니다. 그 때 그가 북한 안내원에게 말하기를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면서 몇 시간씩 낮잠만 자면 어떻게 합니까?” 이 말에 그들이 충격을 받았는지 그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면서 “김 선생 혁명정신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와 같이 혁명과업을 완수합시다.” 하는 통에 이제 못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이 때의 북한 취재로 <내셔널지오그래픽> 1974년 8월호에 북한 기사가 실렸고, 미국 해외 기자단 최우수상 취재상을 받았습니다. 이 상은 퓰리처상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상입니다.
그런데 그 때 북한의 아이들이 신발을 벗고 자유롭게 뛰어 노는 모습을 찍으려고 했는데 북한 안내인이 찍지 못하게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사회의 어두운 면이라고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이나 북한이 숨기려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꾸미지 않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못사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작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것입니다. 땀흘리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입니다.
사회보장 제도가 잘 되어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를 보면 그냥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일자리를 마련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온 사회가 일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사람이 산길을 가다가 네 다리를 모두 다친 여우를 보았습니다. 야생 동물이라 다리를 다치면 사냥을 못하기 때문에 죽습니다. 며칠 후 같은 장소에 갔는데 여전히 여우가 살아있었습니다. 궁금해서 숨어서 기다렸습니다. 그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호랑이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와 신기하다 하나님이 다리 다친 여우도 저렇게 먹이시는 구나’하고는 굳은 확신이 생긴 이 사람은 누워서만 지냈습니다. 그런데 먹을 것을 가져다 주는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굶어 죽었습니다. 죽고 난 후에 하나님께 갔습니다. 하나님께 항의했습니다. ‘왜? 내게는 호랑이를 보내주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왜 호랑이를 본 받을 생각은 안하고 여우를 본 받으려고 하니’하셨다고 합니다. 같은 이슬을 먹고살지만 뱀은 독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꿀벌은 꿀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누구를 본 받아야 합니까? 우리의 모델은 누구입니까?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땀을 흘리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본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을 다른 말로 성령행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또 다른 말로 부를 수 있습니다. 기도행전입니다. 땀의행전입니다. 성령이 나타날 때는 반드시 기도가 있었습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나타납니다. 이것을 사도행전을 통해서 생생하게 증거하십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잠시 이 땅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사도들이 모였을 때 “…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하셨습니다. 약속하신 것은 성령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형제들이 다락방에 올라가 “…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오순절 날 다시 모였습니다. 기도 중에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홀연히 성령이 임했습니다. 마치 불의 혀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습니다. 방언이 터졌습니다(행 2:1-4). 약속의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를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하면서 예수를 기다려야 합니다.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 문 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 옆에서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나니”(잠 8:34)라고 했습니다. 기도해서 무슨 큰 응답을 받아야만 복된 것이 아닙니다. 주께 기도할 때, 주님을 기다릴 때 이미 복을 받은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우리는 사실 혼자 하는 기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말하고 내 뜻대로만 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두 부부가 살면서 마음을 합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마음을 합할 때는 나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만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먼저 나섰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천주교처럼 예수의 어머니를 신성시 할 필요는 없지만, 인간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아는 분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었지만 육신으로는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태어날 때의 성령의 잉태함은 우리가 잘 아는 바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인간이기 때문에 예수의 신성을 때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12살 때 예루살렘성에 가셨습니다. 그 때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유월절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친족의 어느 무리에 예수님이 있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 사흘을 찾은 후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을 보이도록 간청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마리아는 예수님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가나에서 혼례가 있었습니다. 예식기간동안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안타까워하던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요 4:4)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부탁해 놓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고 당부합니다. 예수님께만 떼를 쓴 것이 아니라 다른 하인을 통해서 예수님의 명령을 받을 준비를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 합니다. 기도하지만 받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자에게 주십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이러한 간청함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시작하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 19:25) 예수의 십자가 밑에 어머니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당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은 더 이상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도 임하기 이전입니다. 제자들은 당황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다리라고는 했지만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제자들 틈에서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한다는 것은 큰 힘이었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아는 어머니가 먼저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예수님의 동생들도 함께 했습니다. 마리아가 교육을 잘 시킨 것입니다. 어머니 말 잘 듣는 자식들 중에 나쁜 자식 없습니다. 잘못된 자식 없습니다. 어머니는 예수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어머니의 역할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어머니만큼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님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자식을 키우실 겁니까? 남편 달달 볶아서 돈 벌어오게 하고, 아이들 밤새도록 학원 보내서요? 기러기가 되어서라도 유학 보내서요? 기도로 키우시기를 바랍니다.

“똥돌바우야, 어머니가 너를 위해 기도하시던 걸 기억하니? 눈감으시기 전에 너한테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잖니?” 42년 만에 러시아에서 극적으로 만난 누나는 똥돌바우가 미국이나 서울로 탈출해서 반드시 어머니의 유언대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똥돌바우는 지난 40년 간 평양사범대학에서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있다가 1992년 한국으로 망명한 김형직 교수의 어릴 때 별명입니다. 얼굴도 둥글둥글하고 몸도 둥글둥글하다고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1991년 김 교수는 러시아 대학생들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는 교환교수로 파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에게 다시 성경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똥돌바우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6.25 이전 함흥 함주군에 있던 오로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는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고 성경 구절도 잘 외워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주일날 새벽이 되면 똥돌바우를 일찍 깨워 가마에 데운 물로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손발톱을 깎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낼 연봇돈(헌금)을 부엌 아궁이의 재로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 주머니에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면 똥돌바우는 똑바로 서서 유년주일학교 교가를 불렀고, 어머니는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셨다.
주일아침 아들을 목욕재개 시키고, 헌금을 윤이 나도록 닦아 주일을 맞이하던 어머니의 신실한 신앙과 40년 동안 헤어졌던 동생 똥돌바우를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하던 누나의 기도는 잃어버렸던 김형직에게 새로운 신앙의 불을 지폈습니다. 그리고 1998년 어린 시절 유년주일학교 선생님이었던 최순직 목사(천안대총장)를 50년 만에 재회하고 주님을 새로 영접하였습니다.
최순직 목사는 임종의 순간 가족을 통해 똥돌바우(김형직)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최순직 목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주일학교 제자인 김형직 교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남북이 통일된 다음, 고향 땅에 돌아가 우리가 처음으로 주님을 알게 되고 따르게 되었던 잊지 못할 우리 오로교회를 저를 대신해서 다시 일으켜 세우게 하여 주시…” 그는 제자에게 이 마지막 기도를 끝내 마치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하나님은 똥돌바우를 위해 기도한 어머니의 기도를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는 위대합니다.
기도보다 더 소중하고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이 기도가 나를 살렸습니다. 우리 교회를 살렸습니다. 세계를 살렸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도 살아있는 기도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자들과 여자들과 마리아와 동생들의 기도는 대단한 것입니다. 이 합심기도를 통해서 성령이 최초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무식한 줄로만 알았던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2:21),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이라”(24), 다윗의 시편도 인용하면서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26) 하고 외칩니다. “진짜 베드로 맞아?” 할 만큼 놀라운 설교를 합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는 하지 못할 설교를 합니다.
이제 기도의 능력을 안 것입니다. 기도로 성령 받음을 안 것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재하며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42)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집사를 택하면서 사도들은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행 6:4)고 합니다. 왜 이런 말을 합니까? 기도의 능력을 안 것입니다.

바둑에서는 ‘묘수를 세 번 두면 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묘수를 세 번씩이나 두어야 할 정도로 형세가 어려우면 결국 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는데 우리가 아무리 묘수를 두어도 그것은 망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셔야 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 지역의 빌립보(최초의 유럽전도)에 이르렀을 때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행 16:13) 기도할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여기서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를 만나게 되고 그는 유럽 최초의 세례교인이 되고 그의 집이 유럽 최초의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곳 빌립보에서 복음전하다 옥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을 곧바로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기도는 역사를 동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