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계시니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1-14)

오늘은 2009년 성서 주일입니다. 대강절이 기독교의 절기가 시작되는 절기입니다. 미국의 성서 공회에서는 1943년부터 성서 주간을 매년 추수 감사절로부터 크리스마스까지로 확장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54년 이후 매년 12월 둘째 주일만 성서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비록 오늘 하루만을 성서주일로 지키지만 우리는 1년의 모든 날을 성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난해에 수능 끝나고 137명이나 되는 학생이 자살했습니다. 이 엄청난 학생들이 수능시험에서 인생을 걸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수능이 전부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인생의 극히 한 부분입니다. 살다보면 다른 길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또 하나님은 잘 되는 사람일수록 늦게 됩니다. 대기만성입니다. 먼저 쭉쭉 올라간다고 앞서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늦추어서 나가면 길이 다 있습니다. 조급하게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등산을 하다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아래로 내려가는 사람은 영영 길을 못 찾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서 보면 어디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멀리 보면 보입니다. 교회는 올라가서 보는 것입니다. 성경은 올라가게 만듭니다.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은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사모하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지키는 성서 주일은 대강절 기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메시야를 기다리면서 그 가운데 성서주일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메시야를 기다리되 말씀대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합니다. 성경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대로 갈 수 없습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에 나침반이 고장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미 성경을 가지고 있다해도 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그 말씀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행함이 없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에스라 10:3 “곧 내 주(에스라)의 교훈을 따르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가르침을 따라 이 모든 아내와 그들의 소생을 다 내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에스라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떨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범죄 한 후에도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교만해 졌습니다. 인간 최고의 교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에스라 10:11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따르는 자는 소망이 보이게 됩니다. 소생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버리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유명한 대학을 나와도, 사업에 성공을 해도, 세상의 영화와 부귀를 누려도 다 부질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만이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의 결과는
마음이 부패됩니다(딤전 6:3,5), 저주를 받습니다(신 27:26), 주께 버림을 받습니다(호 4:6), 역경으로 넘어집니다(마 7:26,27),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눅 8:12).
그러나 말씀을 따르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합니다(요 20:31), 교훈을 줍니다(롬 15:4), 성도를 거룩케 하게 합니다(요 17:17), 성도를 자유하게 합니다(요 8:32),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딤후 3:15-17), 영생을 얻게 합니다(요일 5:13).

욕쟁이 집이라는 소문난 음식점을 하는 할머니가 보니, 점잖은 장로님 얼굴이 항상 굳어있는 겁니다. 집에서 권사님과 부부싸움을 했는지, 사업이 잘 안 되는지, 목사님과 의견충돌이 있었는지… 그래서 저 장로님 나한테 한번 걸리면 가만 안 둔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장로님과 욕쟁이 할머니가 교회 현관에서 딱 마주쳤습니다.
“저 장로님… 잠깐 귀 좀…” 욕쟁이 할머니가 다른 사람들 들으면 곤란한 일이 있어서 그러나? 장로님이 별 생각 없이 궁금해하며 귀를 대주었습니다.
그랬는데 욕쟁이 할머니가 장로님의 귀에 대고 다짜고짜 “야, 이 새끼야. 얼굴 좀 펴라” 장로님이 당황하여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칠면조 얼굴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웃음을 몰랐던 장로님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얼마나 웃고 살았던지 장로님의 간수치가 위험수위에 있었는데 정상이 되었답니다. 복음을 듣고도 웃지 못하고 산다면 욕쟁이 할머니께 욕 좀 먹어야 합니다.

둘째는 메시야가 말씀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즉 성육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주일을 대강절 중간에 넣어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4복음서를 읽다보면 그 시작이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족보로 시작하고, 마가복음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글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님 출생 전에 있었던 세례요한의 탄생부터 예수님의 탄생 때의 천사들의 활동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시작은 매우 특이합니다. 영적 시작과 말씀으로 시작되는 세상의 빛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그 말씀들을 읽어 가다보면 눈을 떼지 못합니다. 조금 읽어볼까요. 본문 요한복음 1장 1-14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태초에 보이는 것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산과 바다 강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는 생명들과 자연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답니다. 그 말씀이 빛이랍니다. 그 말씀이 생명이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잘 몰랐습니다. 그 빛이, 그 말씀이 천지창조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이 놀랍습니다.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난 것은 육신의 사람의 방법으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성서주일과 관련하여 한가지 일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소녀 메리 존스(Mary Jones, 1784.12.16-1866.12.28)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웨일즈는 영국의 남, 서쪽 지방으로 지형이 험난하고 기후 조건이 좋지 않아 대부분의 서민들은 궁핍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호남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영국의 웨일즈 지방은 믿음의 본고장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성경을 가지고 들어온 토마스 선교사도 이 지방출신입니다. 영국의 마지막 청교도 후예라고 말하는 로이드 존스 목사도 이곳 출신입니다.
메리 존스는 매주 저녁 교회에 나가 성경을 배우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메리는 10살이 되던 해. 찰스 목사가 세운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집에서 학교가 3km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도 보통 이 정도의 길은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 먼 길을 오가며, 언젠가 글을 배워서 스스로 성경을 읽겠다는 소망을 키워갔습니다.
이 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주일학교가 시작되었는데, 메리는 첫날 마태복음을 공부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마태복음의 첫 장이라고 알고 있던 말씀이 첫째 장이 아니고 둘째 장인 것을 알고 나서 ‘성경의 필요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2년 전 자신의 집에 와서 성경을 읽어도 좋다고 한 이반스 부인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메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성경을 홀로 접하게 된 메리는 감격에 겨웠으나 시간적 제약으로 성경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아쉬워한 메리는 “몇 십 년이 걸려도 꼭 성경 한 권을 사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메리는 성경을 사야겠다는 일념으로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으나 시작 첫 해에는 모은 돈이 너무 적어 실망하였고, 아버지 병세의 악화와 집안 일로 돈을 모으지 못한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메리는 실망하지 않고 6년 간 각종 허드렛일을 마다 않고 돈을 모은 끝에 결국 겨우 한 권의 성경책 값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성경책 사려고 돈 모으는데 6개월 걸렸습니다. 10살 때 돈 모으기 시작해서 6년이 걸렸으니까 16살이 된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메리는 성경을 구하기 위해 30km나 되는 거리를 쉬지 않고 뛰다시피 걸어갔습니다. 그러나 웨일즈 성경이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메리는 엄청난 절망감에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한 찰스 목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성경을 메리에게 주었습니다.
마침내 자신의 성경을 갖게 된 메리는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피곤함과 배고픔도 다 잊은 채 30km를 단숨에 걸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반갑게 맞이하는 부모님과 함께 메리는 성경을 상위에 놓고 성경을 들여다보며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웨일즈 성경이 더 이상 인쇄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절망적인 눈물을 흘린 메리의 이야기를 찰스 목사는 1802년 12월 런던에서 열린 기독교서회 회의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이 회의를 계기로 드디어 1804년 3월 7일 영국성서공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번 미얀마에 갔을 때도 호텔 객실에서 책상의 서랍을 열어보니까 기드온에서 배포한 성경이 들어있었습니다. 공산국가에서도 불교국가에도 성경을 준비하여 고객에게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전 세계 2,479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2008.12). 그러나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6,500여 개의 언어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또한 발행한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읽힐 수 있는 성경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전해야 합니다.

웨일즈에서 메리 존스(Mary Jones)의 성경에 관한 일화가 생길 때 즈음에 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토마스 목사를 파송한 영국 웨일즈 라드노 주 하노버(Hanover United Reformed Church)교회입니다.
제가 2003년도에 이 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교회의 크기가 딱 우리교회만 합니다. 토마스 목사의 아버지가 시무 했던 교회입니다. 토마스는 이곳에서 1840년 9월 7일에 태어납니다. 메리 존스의 이야기가 있은 지 약 40년이 지나서입니다. 그러니까 메레 존스는 이 지역(웨일즈)에서 토마스 목사가 태어날 즈음에 1802년 16살 정도였으니까 56-7세 정도 되니까 아마 권사님이 되어 계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분들의 세대가 영국에서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내던 시대입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성경을 전달해 주었던 토마스 선교사는 1863년 24살의 나이에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꿈에도 그리던 중국 상해에 도착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내 캐롤라인이 오는 중에 병을 얻어 죽습니다. 그 때 그는 선교사역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하나님의 인도로 세관에서 통역 일을 하던 그에게 조선 선교라는 새로운 길이 열립니다.

그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생겼습니다. 아직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조선 땅을 향해 다시 복음 전달의 열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1865년 9월 13일 백령도에 도착해 성경책 200여권을 전하며 전도했습니다. 베이징으로 되돌아간 그는 런던으로부터 정식으로 조선 선교를 허락 받았고 다시 조선에 갈 배편을 찾던 중, 그의 앞에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통역관으로 그 배에 동승했습니다.
중국을 떠난 셔먼호는 일 주일 후 평양근처 대동강변에 도착(1866년 9월 2일경)했고 역시 우려하던 대로 조선군과 무력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시기적으로 너무 좋지 않은 때였습니다. 대원군 집권 3년인 1866년 병인년은 우리나라 교회역사상 가장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나라안의 천주교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병인박해가 일어난 때입니다. 조선의 쇄국정책이 극으로 치닫고 있을 때입니다. 이 때 나타난 셔먼호는 조선 입장에서는 조선을 쳐들어온 미국 침략선으로 간주한 것입니다. 결국 조선의 공격에 대동강변에 좌초하게됩니다. 불바다가 된 셔먼호 위에서는 백기를 들고 화염 속을 헤치며 사력을 다해 강가로 책을 던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토마스 선교사였습니다.
“단 한 권이라도 더 조선인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남은 한 권의 성경책을 품안에 넣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곧 조선군에게 생포되었습니다.
그의 처단은 즉시 집행되었고 그 임무를 맡은 조선 군사가 박춘권 입니다. 박춘권이 칼을 뽑아들자 토마스는 급히 자기 품에 들렸던 성경책을 꺼내어 웃으면서 그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마지막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하나님. 이 사람이 자기의 하는 일을 모르오니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조선 땅에 뿌린 복음의 씨앗이 헛되지 않게 하소서. 내 영혼을 받아주소서.” 기도하고 쑥섬에서 박춘권의 칼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박춘권은 그 일 이후에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자기를 향해 웃던 토마스 목사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전도사가 되었고 나중에 평양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박춘권과 함께 있던 영문주사 박영식은 성경을 자기 집에 가지고가서 성경을 뜯어 벽지로 발랐습니다. 결국 그의 집은 널다리골교회의 예배처소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널다리골교회가 장제대교회가 되었고 장대제교회는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의 시작이 된 장대현교회입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비록 정식으로 조선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한 채 27살의 꽃다운 나이로 죽음을 당했지만 그가 건네 준 한문으로 된 성경책은 이 땅에 복음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가 뿌린 복음의 씨앗은 이 땅에 복음의 부흥을 위한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1931년 대영성서공회가 발행한 성경책이 정..선교사 할아버님이 성결교 목사님이셨는데 가지고 계셨던 성경책입니다. 한문과 한글이 섞인 성경입니다.
국내 번역위원회가 구성되어 1900년 신약전서를, 1911년에 구약전서를 완역하였다. 이를 다시 1936년에 구약을, 1938년에 신약을 개정하였는데, 1938년에 개정한 성경은 1956년에 한글맞춤법통일안에 의거하여 개역성경을 발간하였다.

성경은 예수님의 보혈의 자국이 남아있는 책입니다. 우리를 사랑한단 말씀이 있는 책입니다. 세상의 어떤 책이 나를 위해 준비된 책이겠습니까? 오직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받으시기를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