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사랑하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45. 서로 사랑하라) / 요 15:9-12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친자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부모들의 모임이 최근 결성돼 유사한 처지에 놓인 40여명의 부모들이 회원으로 가입, 매주 월요일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 서로의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자녀들의 학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정신과 상담 도중 자녀들로부터 매맞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발견, 8개월 전(95년3월30일 기준) 이 모임을 결성한 여성 정신심리분석학자 살비아 베인스텐은 “이 모임은 무엇보다 이 같은 불행의 근본적인 책임이 가해자인 자녀가 아닌 부모 자신의 무분별한 애정에 있음을 인정토록 하면서 해결점을 찾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들 부모의 대부분은 자녀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무조건 충족시켜 주는 그릇된 교육관을 갖고 있었고, 따라서 그런 가정의 자녀들은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이나 부모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제 능력이 크게 부족해 친부모를 구타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고 분석합니다(1995.3.30일자 동아일보 해외토픽).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잘못 인식된 것이 하나있습니다. 유교사상이 지배하던 시절에 기독교가 단순히 조상신에게 절하지 않고 부모제사를 지내지 않으니까 조상도 부모도 모르는 불효의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교와 같이 하지 않는다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 이상으로 성경은 엄격한 교훈을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에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중에 5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5개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계명입니다. 이 대인관계 계명 중에 첫 번째 계명이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얼마나 엄격한 교훈이 있는지 아십니까? 유교도 이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1) 출 21:15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2) 출 21:17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라”
(3) 잠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
(4) 잠 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는 엄한 교훈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계명을 지키셨다고 하시며 우리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1. 사랑은 서로 해야 합니다.
본문 9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서로”라는 관계를 우리는 남과는 잘 비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일 중요한 관계에 있어서는 “서로”라는 말을 적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서로”는 제일 가까운 사이에서부터 적용해 나가는 것입니다. 파도가 일어날 때 가까운 원안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는 서로였습니다. 하나님만 일방적으로 아들을 사랑하시고 그것으로 마친 것이 아닙니다. 아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고 그 사랑 안에 거했습니다. 육신을 입은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부모님을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인간의 마음 자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 6:5에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를 경외(fear)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사랑(love)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것하고 사랑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만약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이유가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이라면 율법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짐이 되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라면 율법을 위한 희생 자체가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자기 희생이 의무적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기쁨으로 드리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유가 단순한 자기 축복에 있었다면 그것 또한 오래가지 못합니다. 만일 우리 한국교회가 축복신앙의 논리에만 매달려 있다면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식이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받고자 외식 적으로 부모를 섬기는 것하고 같습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신 31: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조건적으로, 부모님을 조건으로 섬기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단 국물이 다 떨어지면 더 이상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참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2. 계명은 지켜야 합니다.
본문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 계명”도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말씀가운데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 중에 우선해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계명”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땅을 사고 팔 때와 같은 “매매 증서”에 사용되었습니다. 출 24:12 십계명에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 계명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19:7-8, 24:3-8)라고 응답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이 언약 속에는 “이스라엘 자손대대로 여호와 말씀을 전수시키겠다”는 맹세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신 28:1-68, 32:7).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 먼저 계명을 잊지 않도록 해야했습니다. 알아야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옷단 끝에 술을 만들어 명령들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마나 손목에 매며, 하나님의 말씀을 문설주에 써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자녀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신 6:6-9). 그리고 율법 책에 기록해서 후손에게 전해주었습니다(신 30:10).
아울러 하나님이 내려주신 율법은 사람이 일 점 일획이라도 변경할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신 12:32). 하나님의 계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반드시 지켜야될 중차대한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부모님들은 단순하게 이다음에 효도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진정으로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켜야될 것을 우리는 얼마나 가르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늦게 받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자녀들이 다 성장했다면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자녀들에게 효도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난 자식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께 대적한다면 그 자식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계명은 조금이라도 범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이며 반드시 속죄제를 지내야 했습니다(레 4장).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계명을 업신여기면 죽게됩니다(민 15:31). 솔로몬은 그의 생에 말년에 계명을 범했습니다(왕하 11:31-39). 이로 인해서 왕국이 분열되었고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들이 나왔고 결국 다윗 왕가는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느 1:8).

3. 사랑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본문 11절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을 빼고는 인간을 정의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인간에게 사랑이 없다면 인간 또한 동물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인간을 감동시키며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을 우리는 냉혈인간이라고 부릅니다. 피도 눈물도 감정도 없는 사람을 일컬어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은 눈물도 피도 뿌립니다.
오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의 가정에서 먼저 사랑이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가정에 사랑이 없는데, 부모자식간에 사랑이 없는데 다른 어디에서 사랑이 자라난다는 말입니까?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저도 이제 부모님이 안 계십니다. 잘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랑과 감사를 왜 못하는지 아십니까?
시 104:24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부부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만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나보다 하나님이 나보다 아내가, 남편이, 그리고 부모님들이 하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게 됩니다.

저희 어머님은 17년 동안 귀 암 이라는 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평생을 시골에서 사셨기 때문에, 도시 아파트에서는 답답해서 못사시겠다고 하시면서 동네사람들과 홀로 사셨습니다. 저는 가끔 한번씩 찾아가 뵙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사시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저희 집으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오시던 첫날 제가 발을 씻겨 드렸더니 “내 아들 효자네”그러시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어머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단 한번인데 어머님은 “내 아들 효자네”하시는 것입니다. 어머님은 저를 위해서 수 없이 발을 씻겨 주었을 것입니다. 어디 발뿐이겠습니까?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양주동) 노래의 가사처럼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것입니다. 저희가 자랄 때의 어머님들은 지금 어머님들과 그 고생은 비교가 안될 것입니다. 그 때는 세탁기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입니다. 차가운 얼음을 깨뜨리며 겨울에 냇가에 가셔서 빨래를 하셨습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지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정말 허리한번 필시간 없이 하루종일 노동에 시달리셨습니다. 그러면서 자식들 먹여 살릴 걱정을 하시면서 당신은 고기 뼈만 발라 드시면서 자식들 좋은 것 하나 더 먹게 하려고 희생을 아끼지 않은 분들입니다.
우리어머님이 사시던 뒷집에 현욱이네라고 있습니다. 현욱엄마는 치매로 15년을 넘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현욱 엄마만 시어머니를 잘 모시는 것이 아니라 손자, 손녀들까지 모든 집안 식구들이 잘 모셨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현욱엄마 같은 사람이 없다고 면사무소에 몇 번을 들려서 상 주어야 된다고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어머님 돌아 가셨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면에서 조사가 왔더라는 겁니다. 이 집안 식구들이 얼마나 효도하는지 알아보려고요. 그런데 조사 나온 분이 치매환자인 시어머니 머리에 비녀가 꼿혀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더랍니다. 15년이 넘도록 치매환자를 돌보면서 시어머니 머리 감겨서 깨끗하게 비녀를 꽃아 드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귀찮으니까 대부분 머리를 홀딱 밀어 논답니다. 그래서 현욱엄마 말로는 면에서 주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서 주는 제일 좋은 상을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상 받으려 고는 그렇게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정말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부모님 섬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뿐만이 아니라 바로 부모님의 심정을 깨닫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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