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은 누구 신가?(27. 나의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 본문 : 마 1:1

마태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개할 때 그 시작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사람도 족보를 잘 따지는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대민족을 따라가지는 못합니다. 유대민족은 선민 이스라엘 사상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자신들만의 메시야가 올 것이라고 믿고 초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가 증거하는 것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자신이 구원자이심을 말하고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다윗을 통해서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 라는 것입니다.

본서와 이를 기록한 마태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은 시간적으로 신약에서 제일 처음 기록된 성경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위치한 것은 구역성경의 성취와 신약의 시작을 제일 잘 알리고 있어서입니다. 특히 마태의 주요 사상의 주제는 ‘① 예수는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다. ② 예수의 교훈은 새로운 것이다. ③ 하늘 나라는 이 땅 뿐만이 아니라 새하늘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④ 교회는 구약을 계승하나 이방인까지 포함된 신앙 공동체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마태는 잘 알려진 제자도 아니었으며 죄인으로 낙인찍힌 세리에 불과했습니다(막2:14, 눅5:27). 그는 유대정통사회로부터 소외된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부르시어 제자 삼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다’(마19:11, 눅7:34)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태는 가버나움에서 세리를 지냈는데 이 지역은 로마제국 헤롯 안티바스의 통치지역으로 헬라어와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아야 세리를 지낼 수 있었습니다. 마태는 헬라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다른 제자들이 경제적으로 빈곤했다면 마태는 상당한 자산가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의 직업 때문에 가지고 있었던 속기술과 회계에 밝은 마태는 화폐에 대한 언급과 수치를 밝히는데 뛰어났습니다.
이런 죄인 마태를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나라에 대해서 증거하십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인류구원의 대속사역을 이루신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구약성경 16권에서 90번이나 구절들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천국 복음을 전파하러 오신 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늘나라’에 대해서 32번을 언급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분에 대한 소개 첫 번째 입니다.

약속된 메시야

400년 동안 선지자의 가르침이 없었던 이스라엘의 축복의 예언자로(창12:3)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성군 다윗의 직계후손임을 밝혀줌으로 왕의 출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이스라엘의 왕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18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 22:17-18)고 하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의 씨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 바칠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의 머리카락 하나도 상치말게 할 것이라”고 하신 후에 수양을 가시나무에 메여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여호와이래) 수양으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축복해 주신 말씀입니다. 마태는 오늘 이 말씀의 예언이 이루진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당시의 아브라함은 오늘날 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혈통에 나실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을지 모릅니다. 다만 자신의 앞에 있는 ‘복’만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이 무엇입니까? “약속의 땅으로 가라 내가 너에게 씨를 줄 것이다 그에게서 복의 근원자가 날 것이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은 십 년이 지나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 15:5)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밖에 불러내어 하늘의 별을 세게 했습니다. 하나 둘 셋 …, 새로 다시 하나 둘 셋 넷 … 도무지 셀 수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내가 그처럼 많은 자식을 네게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별같이 많은 자식을 주시겠다는 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러한 많은 자식을 주면 ‘약 속의 땅 가나안은 협소한 곳인데 어디서 살 것인가?’하는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주신 기업은 이러합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15:18)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유브라데까지는 당시 세계의 범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온 세계 천하를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육적인 이스라엘의 백성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왜 이렇게 큰복을 주시고, 택하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한마디로 ‘순종의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떠나라” 하니까 그냥 떠났고, “이삭을 바치라” 하시니까 그냥 아들을 칼로 칠 정도의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종을 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을 이제야 알았노라” 하셨습니다(창22장).
뿐만이 아닙니다. 롬 4: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죽은 것 같음”의 뜻은 “이미 죽었다”로 현재 완료형입니다.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포기해야 될 때가 된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롬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다시 말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 순종과 믿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성품이십니다. 자신을 내어 주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예수님의 본을 받아 우리도 순종해야 합니다. 아닌 말로 순종을 안 하시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시겠다는 말입니까?

선교사 가족이 아프리카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뒤뜰에서 혼자 놀고 있는데 갑자기 아빠가 급한 목소리로 아이를 불렀습니다.
“얘야, 얼른 땅에 바짝 엎드려라!”
그 아이는 대꾸하지 않고 즉각 땅에 엎드렸습니다.
“자, 이제 내게로 빨리 기어와” 아이는 시키는 대로 기었습니다.
“이제 일어나서 나에게 뛰어와!”
그 아이는 아버지의 품으로 달려와 안겼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자기가 놀고 있던 나무를 쳐다봤습니다. 거기엔 길이가 5m나 되는 무서운 독사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만일 그 아이가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지금 놀고 있는데… 당장 가야 해요?”하며 꾸물거렸더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은 믿음과 사랑의 증거입니다.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렘 7:23)고 하셨습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만일 순종치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머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쏟아질 수 있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머리 위에 있는 것입니다.

다윗에 대해서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삼하 7:16)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뿌리에서 영원한 왕국이 세워질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다윗 왕권은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약 6세기가 흐르는 동안 왕통이 거의 단절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께서 그의 왕통을 계승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태만이 그 사실을 처음부터 지적하고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또 그 후손을 영구케 하여 그 위를 하늘의 날과 같게 하리로다”(시 89:29)고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다윗이 왜 이러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다윗도 따지고 보면 죄가 많은 사람입니다. 다윗은 용맹도 했고, 성실하기도 했고, 부지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장점은 ‘기도와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위기 때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시편의 대부분이 다윗의 지은 기도 시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았습니다. 시편3편은 압살롬을 피할 때 지은 시입니다. 시편18편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한 날에 지은 것입니다. 한 절만 보면 이렇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계속해서 더 읽고싶지 않습니까?

톨스토이 단편집 제일처음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세몬이라는 구두장이가 자식을 데리고 한 농가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자 구두장이는 약간의 여우가 생겨서 양가죽을 사려고 마을로 나갔습니다. 겨울 외투를 지어 입을 생각이었습니다(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은 겨울이 길기 때문에 제대로 된 외투 한 벌을 마련하는 것이 바램입니다). 그리고 모자라는 돈을 구두 수선한 외상값을 받아 사려고 했습니다. 이집저집 들리다 외상값을 받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양가죽을 사려던 미리 준비한 약간의 돈을 가지고 이 사람은 보드카를 사서 마셨습니다. 그리고 혼잣말로 양가죽 옷도 필요 없네 몸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교회 옆을 지나가는데 한 사람이 벌거벗은 채로 교회 벽 옆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구두장이는 망설이다 그 사람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웃옷을 벗어주고 자기 집으로 대려왔습니다. 아내는 사오라는 양가죽은 사오지 않고 자기 옷을 이상한 사람에게 입히고 들어오며 보드카 냄새를 풍기는 남편과 주정뱅이 같아 보이는 그 사람을 모두 내어쫓으려 했습니다. 이 때 세몬은 아내에게 그래도 내 말 좀 들어보아요. 계속해서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말하는 마트료나(아내)의 말 틈을 비집고 “마트료나 당신에겐 하나님도 없소”라고 말할 때 마트료나는 낯선 사내를 쳐다보며 차츰 기분이 가라앉았습니다.
이 때부터 이 집에 머물게된 젊은 청년은 말이 없었습니다. 이름만 ‘미하일’이라고 말해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차츰 구두 수선하는 방법을 배워주며 함께 일하는데 이 청년은 한번만 가르치면 그대로 잘 배웠습니다. 1년이 되어서 이 수선공은 세몬보다 더 이름이나 이 집에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덩치가 큰 사람이 마차를 몰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구두를 만들 가죽을 내어놓으며 독일에서 구해온 것이니 망가트리지 말고 잘 만들 수 있으면 해보라고 했습니다. 세몬은 미하일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때서야 할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미하일은 장화구두를 만들지 않고 슬리퍼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세몬은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집 하인이 와서 주인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구두는 소용없고 “슬리퍼를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도 미하일은 말이 없었습니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할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젊은 엄마가 두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미하일은 눈이 번쩍이더니 아이에 대해서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은 육 년 전에 두 아이를 데려다 키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4흘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아기를 낳고 하루도 못 살았다고 했습니다. 미하일은 갑자기 일어나 앞치마를 벗고 주인 내외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떠나겠다는 것입니다. 주인내외는 미하일에게 빛이 비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인은 참다못해 “미하일 자내는 보통 사람이 아니네 이제 떠나게 되었으니 말 좀 해주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미하일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원래 천사였습니다. 제가 교회 벽 옆에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 벌을 받고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여인의 영을 빼앗아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여자에게 갔을 때 그 여인은 나를 알아보고 흐느끼며 사정했습니다. 천사님 남편은 몇 일전에 나무하다 숲에서 나무에 깔려죽고 내게는 형제도 자매도 친척도 없습니다. 두 쌍둥이는 나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라고 애원해서 도저히 산모의 영을 빼앗아 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내려가 산모의 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뜻을 깨닫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게 되면 하늘나라에 다시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땅에 내려와 여인의 영을 취하고 하나님께 올라가려고 할 때 자신의 날개가 강한 바람에 부러져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알몸인 채 들판에 버려져 있었는데 인간의 추위도 배고픔도 얼어붙은 몸을 통해 추위도 알았습니다. 교회벽에 붙어서 죽어가고 있을 때 세몬 당신을 만난 것입니다. 세몬 집으로 온 나는 한 여자가 나와서 쫓아내려고 할 때 또 한번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세몬이 하나님 얘기를 꺼내자 금방 태도가 누그러졌습니다. 여자가 저녁밥을 권하면서 흘끗 쳐다보았을 때 그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가 없어졌고 거기서 신의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그 때 저는 ‘인간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되리라’는 첫 번째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인간 안에 있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두 번 째 장화를 만들어 달라고 왔던 부자가 자기 영혼이 떠날 줄 모르고 일년을 다녀도 끄떡없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어머니가 쌍둥이 아이들이 부모 없이 못 산다고 했는데 엄연히 두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남의 아이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 세 번째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불기둥이 내려와 천사는 “사랑 속에 사는 자는 하나님 안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찬송하며 하늘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9-1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할 때 ‘아브라함의 순종의 믿음과 다윗의 기도와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다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러한 성품을 본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능력이요 이것이 성령입니다. 이와 같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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