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여자의 후손(창세기 4)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렘 35:16)

오늘도 성경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죄의 문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죄의 문제는 대충 넘어갈 성질이 아닙니다. 이 문제를 그냥 두고 무슨 축복 운운하는 것은 맡지도 않고 되지도 않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 될 때 사함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모든 축복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왕이 가면 다 따라옵니다. 신하들과 선물들이 다 따라옵니다.

성경은 죄인의 역사입니다. 구약 성경의 전체가 죄인의 이야기입니다. 신약성경은 그 죄를 어떻게 사함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예수님도, 성경도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용서를 받아야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이런 사람은 아무 죄 없는 자기 아내를 구타하고, 욕하고, 미워하고, 시간만 있으면 남을 헐뜯으면서 자기는 죄가 없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모두 옳습니다. 그리고 남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이 사람이 아무 죄가 없는 의인 같습니까?
우리는 모세의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단 한번의 바위를 물을 달라고 내리쳤는데 이 사건으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매일 같이 남을 미워하고 욕하고 때리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일생에 단 한번도 시기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살았다고 말할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수 없는 살인을 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정말 용서 받아야 할 죄인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죄가 믿어지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으면 구약성경을 열심히 보아야 합니다. 구약을 보지 않으면 죄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구약 없이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 성경을 다시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서양학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사람은 헬라의 철학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여기에 또 얹혀졌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학교에서는 진화가설 같은 이론도 배웠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이러한 기본 틀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 상태에서 성경을 보게되니까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온갖 잘못된 사상과 철학과 과학을 위장한 학문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바울도 이러한 것을 나중에 주님을 만나 은혜를 받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롬 3:4)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탄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사탄을 우습게 알면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절대로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떠나서는 사탄을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사탄을 이기려면 하나님께 부탁을 해야 하고 하나님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사탄이 어느 정도 간교하냐,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창 3:1)고 했습니다. 이것이 처음 하와에게 접근할 때 그대로 나타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고 했습니다. 원문에 “lk’ato al:로 토칼”입니다. 로(al)는 ‘진리’라는 뜻도 함께 있는데 기본 불변사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하와에게 접근하면서 “…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고 헷갈리게 물어봅니다. 질문이 벌써 이상한 겁니다. 유도하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뉴스 보면서 못 마땅한 것이 있습니다. 그냥 사실만 보도하면 됩니다. 그런데 상당히 유도성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아주 그렇게 인식되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정말 마리아가 처녀인데 아들을 낳았을까요?’ 이런 식입니다. ‘여러분은 뱀이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치 ‘그렇게 믿으면 당신은 잘못 생각 한 거야?’ 이런 식입니다.
헷갈리게 물어보니까 하와가 약해졌습니다. 여러분 질문의 의도를 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미 사탄이 거짓말을 붙여서 헷갈리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으로 먹되”(창 2:6)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하와가 약간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대답이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창 3:3)고 합니다. 여기서 뭐가 하나 빠졌습니다. 로(al) ‘반드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많이 약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탄이 결정적으로 시간 끌지 않습니다. 틈이 보이니까 바로 들어갑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반드시 죽으리라”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로 바꾸어버린 겁니다. ‘결코’라고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말한 것과 같습니다. 원문에 보니까 ‘반드시’와 ‘결코’는 모두 ‘로(al)’로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사탄도 모두 단호합니다. 헷갈리게 시작해 놓고 단호하게 끊냅니다. 헷갈리게 물어보는 것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점점 약화시키면 안됩니다. 그것은 죄를 짓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과목 중에 ‘성서비평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뭘 비판하려면 먼저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르치지도 않고 비평부터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교육입니다. 그래서 이런 교육을 받다가 나와서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분은 나가서 성경을 이상하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분이 있습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다른 철학에 의해서 다루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은 과학의 지배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무슨 사람들의 철학이나 과학 운운하면서 그 위에 놓고 평가하고 난도질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의 사상 철학 아래로 들어가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사 40:18)고 합니다.
욥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욥 21:22)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자기들의 전통을 지키니까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렘 35장).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사탄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기준이 달라져야 합니다. 무슨 세상의 철학이 아닙니다. 과학을 위장한 학문이 아닙니다. 마치 과학은 다 증명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엉터리 같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이제 시작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오늘 본문의 레갑 사람들은 참 진실한 사람들입니다. 갈대아 수리아 군대를 피하여 살아남았고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말을 잘 따르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선한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못하는 이유를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3 이는 너희 손이 피에, 너희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졌으며 너희 입술은 거짓을 말하며 너희 혀는 악독을 냄이라”(렘 59:1-3)
죄인이 된 우리에게 나타난 제일 심각한 현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상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제일 큰 문제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즉시 나타나야 하는 반응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5)그랬는데 정말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그것이 7절에 나타납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신비주의 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체험주의’입니다. 내가 경험했다는 겁니다. 그것만큼 강력한 것이 없습니다. 네가 보았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 들어 가면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안 믿습니다. 자기 경험입니다. 자기가 보고 경험한 것처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무슨 능력이 자꾸만 나타나면 이상한 겁니다. 이런 것 좋아하지 마세요? 저처럼 아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정상이고 좋은 것입니다. 신비주의에서 체험주의로 가잖아요. 이런 사람은 이게 최고입니다. 그것만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탄이 자꾸만 예수님께 해 보라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무슨 서커스하시러 오셨습니까?

두 번째 즉시 죽어야 하는데 안 죽는 겁니다. 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틀리고 사탄의 말이 맡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일시적으로는 사탄의 말이 맡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됩니다.
사실 여기서 놀란 것이 누구냐? 아담과 하와가 아닙니다. 사탄입니다. 죽어야 되는데 저것들이 안 죽는 겁니다. 이상한 겁니다. 죽이려고 먹으라고 했는데 안 죽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습니까? 그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그것을 모릅니다. 여기에 한가지 비밀이 숨어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숨기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중에 말씀하실 때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기껏해야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물거 라고 그러니까 뱀이라는 것은 천사가 타락해서 마귀가 되었는데 ‘후손’ 이라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말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비밀이 있는 겁니다. 먹으면 죽기는 죽는데, 먹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 후손 자손을 낳을 수 있는 유예기간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비밀에 붙인 거예요. 뱀은 몰라요.
하나님이 모르게 한 것은 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하면 사람도 모르고, 뱀도 모르고, 귀신도 모르고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이 모르게 한 것을 누가 알겠습니까?

여자가 자녀를 낳는다, 여자가 후손을 낳는다 것은 비밀중의 비밀이고, 극비중의 극비고, 신비중의 신비야. 천사는 백만 번 죽었다 깨어나도 개구리 올챙이 한 마리도 못 낳아요. 남자도 몇 만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아무것도 못 낳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낳는 것은 여자만이 할 수 있어요. 천사도 안 되고, 남자도 안 되고. 온 세상 천사 다 동원되고, 온 세상 남자 다 모여도 안됩니다. 딱 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신비입니다. 더 이상 무슨 신비를 원하십니까?
이런 창조주 하나님의 솜씨를 보면서 우리가 헛되이 엄벙덤벙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정말 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생명 있는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 이제 정리합시다.
세상 학문이 다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호소합니다.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호 6:3-6)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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