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세.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고후 12:9-10)

사람이 왜 위대합니까? 사람이 왜 귀합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알고 감사할 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의 몇 만 종의 동물이 있지만 서로 만나서 인사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수많은 개를 보았지만 개가 서로 길 가다가 인사하는 것 한번도 못 봤습니다. 서로 노려보고는 갑디다. 사람만 감사할 줄 압니다. 사람만 인사할 줄 압니다. 아무리 원숭이가 똑똑해도 자기가 입을 옷 하나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동차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만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영혼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물과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사람이 만일 감사할 줄 모른다면 동물처럼 되는 것입니다.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한마디로 빈털터리 인생이었습니다. 율법교사도 포기했고, 결혼도 포기했고, 성공도 다 포기했습니다.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생활도 가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 그가 입 열 때마다 강조한 것은 감사였습니다. 특별히 감사가 많이 나오는 곳은 옥중서신입니다(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감옥에 갇혀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키프슨(Barnett Gipson)박사는 그의 저서 “행복한 하루(Happiness Days Night)”에서 “당신의 손에 얼마나 많은 것을 쥐었느냐 하는 것은 그대로 행복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대의 마음속에 감사한 생각이 없으면 그대는 파멸의 노를 젖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감사의 예술을 배울 때 그대는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고 쓰고 있습니다.
소크라데스의 제자 플라톤도 사람의 행복의 조건은 쓰고 남을 정도의 부가 아니라 쓰기에 약간 부족할 정도로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외모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잘난 사람이 아니라 자기가 보기에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하느냐에 달여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행 26:29)고 했습니다.
감사란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원망이나 불평도 찾으면 얼마든지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감사 쪽으로 눈을 돌리면 감사가 보이고 불평 쪽으로 눈을 돌리면 불평이 보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 그것은 나에게 달렸습니다. 감사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축복 쪽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메뚜기처럼 작은 내가 아니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이, 성령이 이 시대에도 여전히 역사 하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과 같이, 세상 적인 조건에 의해서만 기뻐할 때 기뻐한다면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이 기뻐하지 않을 때도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낙담하고 좌절해 있을 때에도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현재의 자신의 모습만 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의 나라까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바울사도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슬픔에 잠겨서 세상을 사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극복하고 일어나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같습니다. 누구나 세상에서 슬픔을 겪습니다. 어느 집이나 속 들여다보면 같습니다.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모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문제 투성이 속에서 빠져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구렁에서 나와야 합니다.
어떤 분이 사랑하던 아내가 먼저 사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나 그립고 못 잊어서 20년 동안 아내가 입던 옷, 사진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겁니다. 처음 5년 동안은 사람들은 참 그 사람 정말 진실한 사람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0년을 그러고 있으니까 이제 질렸습니다. 이것은 아닙니다, 털고 일어나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그 아내의 삶까지 다 살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2010.11.19) 96일만에 컴퓨터로 성경을 1독 타자 했습니다. (http://kcm.kr/bible_taja/)
참 많은 말씀가운데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타자할 때에 때로는 내 마음을 두드리듯이 타이핑했습니다. 때로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맞추어 피아노 건반을 타듯이 타이핑했습니다. 말씀 하나 하나를 깨달은 것도 큰 기쁨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의 임재 하심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자꾸만 말씀을 깨달으려고만 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느끼는 것입니다.
영성가 토마스 머턴은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 안에서 그분의 사랑을 인식함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품속을 느끼는 것입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평안함 기쁨입니다. 그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참 행복했습니다.
마지막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정말 은혜 받았습니다.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2-4)

성경타자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에 세 가지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첫 번째 편리하게 타자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두 번째 다양한 통계가 가능하도록, 세 번째 모든 기록을 잘 남기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은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데이터를 가지고 계십니다. 다 알고 계십니다. 머리카락 하나 까지도 다 세고 계십니다. 나에 대해서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현재의 나를 감사하세요.
본문 9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현재 상태를 감사하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약한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습 이 대로를 감사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세요. 얼마 전에 미얀마에서 카렌족이 동산 당에 의해서 또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국적이 없습니다. 산 속을 떠돌아다닙니다. 몇 백만 명이 넘습니다. 나라 없는 서로 움을 우리는 잘 모릅니다. 지금의 나와 주어진 상황을 놓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학자 헉슬리는 말년에 시각을 잃었습니다. 그는 점자로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점자를 읽을 수 있게 되니 담요를 뒤집어쓰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추운 밤에도 손이 따뜻한 채로 책을 읽게 된 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손으로 만져보고 감격했습니다. 만지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시각이라는 소유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도 존재가 희망이 있습니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은 강한 것, 있는 것, 가진 것만을 가지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우리는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약한 것을 가지고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강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 가운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강하면 주님을 떠나가십니다. 그러나 내가 약하면 주님이 머물러 계십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본문 10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예수님을 인하여 감사하세요.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우리가 감사할 것이 아주 많지만 그 중에 제일 감사해야 하는 제목입니다. 예수를 주로 받은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감사의 제목은 없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기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협박해서 무엇을 었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로마서 1:6에는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라고 합니다. 1:7에는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라고 합니다. 부르심에 대한 바울의 고백입니다. 부르심이 얼마나 대단한 은총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축복입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이 제일 많이 부르는 찬송이 뭐냐? 제일 좋아하는 찬송이 뭐냐? 조사를 했는데 제일 좋아하고 은혜를 받고 많이 부르는 찬송이 첫 번째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왜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 주셨는지 나를 구속해 주시는 그 은혜가 너무 크다 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감사를 처음 깨닫고 은혜를 받는 그 순간에 우리가 얼마나 감격했습니다. 그 감사가 얼마나 넘쳐흘렀습니까?
주님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것 다 잊어버리고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주님의 사랑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없으면 축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라고 하는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가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 보다 차라리 독사 이빨에 물리는 것이 났다”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녀로 키우시면 자녀교육은 성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에 맡지 않는 사람이 잘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출애굽기 22:29절에서부터 보면 “너는 네가 추수한 것과 네가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헨리는 말하기를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 해독제, 방부제라고 했습니다. 암을 막아내는 게 감사이며 해독제와 방부제가 됩니다. 과학적으로 수 없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사람은 감사하는 것만큼 잘됩니다. 밀러는 말하기를 감사의 크기에 따라 행복의 크기가 결정된다고 했고, 본 회퍼는 감사를 통해 부자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가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감사하시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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