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 드리는 보화(크리스마스)

본문 : 마 2:10-11

동방박사(마기) 메데파사의 제사장, 지도자들. 여러 분야를 연구하여 오직 로마를 무너트릴 방법을 찾고 있었음. 그러나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은 연구해서 찾은 별이 아님.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난 별이 그들을 인도하셨음.
로마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음.

성경에는 세 명의 동방박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동방박사가 한 명 더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만 늦게 도착하여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목사님 그런 이야기 성경에 없잖아요? 네 성경 밖에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 전해드리는 이야기입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도 아주 귀한 세 가지 보석을 준비하고 낙타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낙타가 발목에 부상을 입고 얼마가지 못해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돌아갈까 끝까지 가볼까? 생각하다 하나님이 아들이 오시는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시는데 끝까지 가봐야지 하고 마음먹고 길을 떠났습니다. 악착같이 가야지 하고 걸어서 광야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쯤 같을까요. 동네 어귀를 만났는데 한 불쌍한 아주머니가 울면서 나오는 거예요. 왜 그러세요. 사정을 물어 보았더니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이 탄생한 다음 헤롯왕이 남자 어린아이들은 다 죽이라 해서 대 학살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 때 그 아주머니 아들이 죽은 거예요. 이 아주머니를 보고 네 번째 동방박사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측은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기가 어린 새싹처럼 소중히 여기는 보석을 하나 주고 길을 떠났어요.
얼마나 지났을까요.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 만나러 이집트로 가자 죽을 고생을 하고 이집트에 도착을 했는데 들리는 소식은 또 실망이었어요. 예수님이 잠깐 그곳에 계시다가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지금 이집트 카이로에 가면 예수님이 머물다 가신 기념교회가 있답니다. 여기서 3년 지내셨답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에게 낙심이었어요. 그런데 동네를 다니다 어디에서 잠을 잘까 하고 왔다 갔다 하던 중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문둥병자 한 사람이 너무 불쌍하게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거예요.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어요. 그대로 살다가 그대로 죽을 사람이예요. 그래서 두 번째 자기에는 너무너무 소중한 보석을 그 문둥병자에게 주고 말았어요. 이제 하나 남았어요. 소문을 따라 이런 식으로 예수님을 만나려고 다닌 시간이 어언 30년이 지났고 이제는 이 네 번째 동방박사도 늙고 초라해져서 어느 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오는데 어린 그지 하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두 손을 들고 돈을 달라고 하는데 표정이 너무너무 불쌍하고 해서 나도 고향 땅에 자식이 있는데 생각하면서 마지막 남은 것 하나, 예수님께 바쳐야할 딱 하나 남은 보석을 그 어린 거지에게 주었어요. 그런데 조금 있다가 대낮인데 온 천지가 캄캄해지는 거예요. 그러더니 심한 지진이 일어났어요. 몸을 가눌 수 없어요. 뒷둥 뒷둥 대다가 언덕을 바라보았는데 거기에 십자가 세 개가 있었고 그 가운데 30여 년을 찾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 때 예수님이 이 네 번째 동방박사를 바라보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자식을 잃어 너무 너무 슬퍼할 때 나를 위로해 주었고, 내 몹쓸 병에 걸려서 아무도 나에게 오지도 않는데 너는 나에게 보석을 주었고, 내가 목마르고 몸을 둘 곳이 없을 때 그대는 나에게 먹을 것과 거처할 곳을 주었으니 나는 당신의 사랑을 잊지 않을 거야.
네 번째 동방박사 예수님께 말했대요. 저는 지금 예수님을 뵙는 것이 처음이고 저는 예수님께 그렇게 해 드린 것이 없습니다. 할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까지 네가 나에게 주려고 했던 그 보석을 네가 불쌍히 여겨 다른 사람들에게 준 것은 곳 나에게 준 것이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제일 확실한 것은 영, 육간에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가 잘못하는 것은 비 기독교인을 멸시하는 것 같은 태도입니다. 자꾸만 그분들을 멸시하는 듯한 태도입니다. 거룩한 것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따지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식 투자하듯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헨델의 ‘메시아’가 신앙의 생활화의 표준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더욱 자주 듣게 되는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도 헨델(George Fredrich Handel)이 이사야서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입니다. 진실한 기독교 신앙인 이었던 헨델은 ‘메시아’를 작곡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하셨던 까닭이 바로 그로 하여금 ‘메시아’를 작곡하도록 하시기 위한 연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메시아’를 작곡하면서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그 긴 대곡을 불과 2주만에 작곡을 다 끝내고 난 후 방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았던 하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가득했고 양 볼에는 눈물 자국으로 범벅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는 그를 시중들던 하인에게 “나는 메시아를 작곡하는 동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보았네”라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음악적으로만 이해하여서는 그 진수를 맛볼 수 없고 음악 속에 살아 있는 헨델의 신앙과 함께 들어야만 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헨델의 음악세계가 그렇게 뜨거운 신앙을 바탕으로 하였기에 훗날 베토벤과 같은 위대한 음악가로부터도 “나는 헨델에게는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한다. 그분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유능한 작곡가이었기 때문이다”라는 찬사를 듣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전에 교회는 종이 있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그 종을 쳐본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교회 종에 줄이 없어 종을 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전설에 의하면 그 종은 남에게 아주 많은 봉사를 한 사람이 있으면 저절로 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자기 딴에는 봉사한다고 여기저기 금은 보석도 바치는데 종은 울리지 않는 거예요. 그 소문이 왕궁까지 들어갔어요. 그래서 왕도 왔어요. 그래서 왕으로서 많은 헌금을 드렸는데 그래도 종소리가 울리지 않자 자기 왕관을 벗어서 바쳤는데요 종소리는 울리지 않는 거예요. 응답이 없는 거예요. 왕까지 다녀간 후에 좋지 않은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전설이지 실제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거야! 왕까지 오셨었는데 안되었는데 말야.
그러던 어느 해 성도들이 크리스마스 찬송을 다 부르고 있었는데 그 때 갑자기 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은은하면서도 장엄한 종소리가 들렸어요. 성도님들은 찬양하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누가 어떤 헌금을 했는데 저 종소리가 울리나 관심이 다 그 종소리에 가 있었습니다. 얼마 안 돼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다니는 청년이었습니다. 성탄절 예배를 드리려고 오는데 교회근처까지 왔는데 한 사람이 눈 속에서 죽어가는 거예요. 저 사람을 지금 데리고 가서 먹을 것을 주고 살리는 것이 우선인가 지금 성탄절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우선인가? 잠시 망설였지만 그 사람을 집에 데리고 가서 살려내려고 애쓰는데 성탄절 예배시간이 다 되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동생에게 빨리 교회에 가서 예배가 끝나기 전에 내가 준비한 성탄헌금을 드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 동생이 뛰어와서 예배당 뒤에 있는 헌금함에 은전을 넣는 순간에 울렸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들 때문에 하늘 문을 여시고 감동 하실까? 하나님이 교회의 종소리를 누구에게 울려 주실까? 어떤 교회, 어떤 사람, 이야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우리 교회가 과연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성도가 있는가? 말구유에 오신 예수를 진정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어려운 설교를 하는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 제일 상급이 많을 수도 있지만 제일 하나님께 책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교회는 나름대로 애쓰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됩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 마 챙겨놓고 선교할 수 없습니다. 구제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1년 동안 열심히 돈벌어서 헌금한 것 귀한 것입니다. 어떤 분은 매일 매일 그만두고 싶었을 것입니다. 당장 나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고 견디면서 그렇게 번 돈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예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이 목자와 동방의 박사들에게 먼저 전해졌던 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다행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 당시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은 동방박사들을 통해 부자와 지식인, 권력자들에게도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헤롯왕을 비롯해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그 소식을 들었지만 소동만 벌였을 뿐 직접 찾아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마2:3-4). 그들은 오늘날 우리들과도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식인, 부자, 권력자들의 성향은 비슷합니다. 그들은 사물을 순수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론을 전개하고 입으로만 말할 줄 알았지 행동은 할 줄 모릅니다. 성탄의 소식이 오직 그런 사람들에게만 전해졌다면 그 당시 직접 아기 예수께 나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목자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빨리 가서’(눅 2:16) 아기 예수께 경배하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멀고 먼 예루살렘까지 몇 달 동안이나 걸리는 길을 진지하고 끈기 있게 찾아가 기어코 아기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없습니다. 별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헨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별은 우리에게 길을 안내합니다. 예수를 만나게 합니다. 예수께 드릴 보화를 드리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예수를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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