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성육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세계적인 미국의 미래학자 레너드 스윗 박사는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전도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을 알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뉴질랜드의 복음주의자 브라이언 메드웨이는 “교회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은 사랑하지 않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들어가서 애쓰시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흔히 현시대를 일컬어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본질과 핵심은 결코 변할 수 없지만, 세상을 보고 대하는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오늘날 교회의 가장 커다란 죄는 실상 Commission(죄를 범함)도, Omission(태만)도 아니라 세상 속에 들어가 No Mission(선교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세상을 품에 안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행하는 진정한 사랑과 선교가 없으면, 교회도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이 인생을 입고 오신 사랑과 은총의 사건(성육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세상을 이해하고 품어, 변화와 구원을 이끌어 가는 사명과 역할을 다하는 우리 교회와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언의 성취자 예수 그리스도

구약성경에는 약 300여 가지의 예언이 나옵니다. 이 모든 것은 구세주에 관한 예언으로 예수님이 모두 성취하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모두 이룬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이미 예언이 구약 성경에 나와 있으니까 그대로 따라하면 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첫 번째 예언의 성취 부분을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태어날 장소를 내가 결정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래 전에 출판된 책으로 저자 죠쉬 맥도웰(Josh McDowell)이 쓴 “판정을 요하는 증거” 라는 베스트셀러였던 책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구세주에 대한 8가지 예언만이라도 특정한 한 사람이 성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것입니다. 스토우너 교수가 뽑은 8가지 예언은,
구세주가 나실 장소(미 5:2)
구세주의 태어나심을 예비할 사자(使者)의 등장(사 40:3)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슥 9:9)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것(시 41:9)
은화 30에 팔리고(슥 11:12)
그 돈이 성전에 던져지고 연고자 없는 사람들의 묘지를 구입하는데 사용한 것(슥 11:13)
구세주가 대적자들에게 곤욕을 당해도 입을 열지 않은 것(사 53:7)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못 박히는 것(시 22:16, 사 53:12) 등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 8가지 예언을 한꺼번에 성취할 확률은 10만조대 1쯤 될 것이라고, 스토우너 교수는 결론 지었습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모든 예언이 사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위의 예언 중에서 혹 구약의 예언을 보고 따라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 ‘곤욕 당할 때 입을 열지 않는 것’은 혹 따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따라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천사가 나타난다거나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그 돈으로 밭을 샀다던가 하는 것은 예수님이 직접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섭리하시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2.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하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구역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요 8:58)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 창조에 대해서도 증거 합니다. 적어도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거나 그것을 만드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3)

3. 예수님은,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은 하나님의 육체적 형상이십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 1:15)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8)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가 육신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볼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고 우리와 동거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인성이 되셨다는 것은 그도 피곤(요 4:6)을 느끼셨고, 갈증(요 4:7)을 느끼셨고 하나님을 의존하셨으며(요 5:19), 슬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5).

본문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ejskhvnwsen ejn hJmi’n:에스케노센 엔 헤민)
(ejskhvnwsen:에스케노센)의 어근은 ‘skhnovw:스케노오’입니다. 에스케노센은 스케노오의 부정과거 능동태입니다. 스케오는 “야영하다, 천막을 치다”입니다. 구약시대 하나님은 모세가 친 장막에 처음으로 이 땅에 임재하셨습니다. 그 전에 잠깐씩 사람에게 말씀하시고 명령을 주신 적이 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직접 내려오셔서 이 땅에 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이 모세가 광야에서 친 장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얼굴은 모지 못했습니다. 출 33:20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출 33:23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한 몸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30)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것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삼위는 엄연히 구분되지만 동시에 하나이십니다. 이것을 아무리 인간의 지식으로 유추하여도 만족할 만한 해명을 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신비입니다. 우리 인간이 다 이해하고 다 설명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닌지 모릅니다. 태양과 태양광선 태양열로 우리는 삼위일체이심을 조금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하나님이시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고,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은 하나님의 현신(現身)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님을 통하는 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행동방식과 행동의 동기를 이해하면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주장하신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요 10:30) 말씀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 주장이야말로 대경실색(大驚失色)할 만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주장은 단순히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가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확인하셨으며 예언의 말씀들이 성취한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심이 드러나게 되신 것입니다.

본문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헬라어에는 일반적으로 본다는 단어는 ‘이두’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단어는 ‘이두’가 아니라 “ejqeasavmeqa:에데아오마이”입니다. 이 뜻은 ‘놀라운 광경을 보다’입니다. 어근단어는 ‘jqeasavmeqa:데아오마이’의 부정 과거 중간태로 ‘놀라운 상태에서 직접 목격했다’는 뜻입니다.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 17:2, 막 9:2-8, 눅 9:28-36) 이 장면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우리는 적어도 구약시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구원 길을 하나님은 당신이 스스로 오셔서 다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랜 구약시대의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이 처음 선택한 민족이 당신의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직접 인도하신 땅에서 그들을 끌어내시고 벌을 주셨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바리지 않으셨습니다. 율법도 패하지 하니 하셨습니다. 당신이 다 만들어 놓으시고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그 모든 율법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한국 전쟁 취재로 풀리쳐 상을 받은 히긴스(Marguerite Higgins)가 중공군과의 대전으로 몹시 지친 해병중대를 찾아 얼어붙은 콩을 씹고 있는 어느 병사와 대담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면 어떤 소원을 말하고 싶으냐” 하는 질문에 병사는 “내일을 달라”(Give me tomorrow-궵~ 미 투머로우)고 대답했습니다. 미래가 약속된다면 오늘의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는 답변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대하여 우리들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소망을 주십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사느니라.”(롬 1:17)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8-29)
“네 믿음이 네 죄를 사했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7)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율법에서 명한 흠 없는 거룩한 어린 양으로 하나님께 바쳐졌다는 그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서 믿음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구약시대가 율법을 지키는 것이었다면 신약 시대는 그것을 이루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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