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써 지키는 교회

힘써 지키는 교회 / 본문 : 엡 4:1-6

바울은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있으면서 에베소 성도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형편이 좋은 사람이 형편이 나쁜 사람에게 전달하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형편이 나쁜 사람이 전달하면 그 말은 우습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1.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1절)
하나님이 부르신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1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 ‘합당하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악시오스’는 문자 적으로 ‘다른 들보를 하나 더 세워’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함을 의미한다(Wood, Lincoln). 그 기준은’부르심’으로서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속을 통한 새 생명에의 초대이다(1:4, 5, 12, 13). 본 절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신앙인의 고백과 실천 사이에는 항상 평형(平衡)이 유지되어야 함을 시사한다(마3:8; 10:38; 행26:20; 빌1:27; 골1:10).

[등대지기] 한 외딴섬에 등대가 있었다. 어느 날 우편집배원이 섬을 찾았다.
집배원은 한 명 때문에 섬을 찾은 것에 짜증을 내며 불평했다.
“기껏 편지 한 통 배달하느라 기차타고, 버스타고, 배타고 꼬박 하루 걸려 이 섬에 도착했소.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기분이 나빠진 등대지기가 한마디했다.
“당신, 자꾸 투덜거리면 일간신문 구독할 거야.”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 다하고 남는 시간에 기도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남는 시간에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는 성도가 아닙니다.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2절)
본 절은 부르심을 입은 성도가 지녀야 할 구체적인 덕목들을 제시한다(Bruce).
(1) 겸손 – 이것은 자신의 부족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 자세이다(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당시 ‘겸손’은 비열한 마음과 노예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미덕이 아니었다(Foulkes, Wood). 그러나 예수님이 친히 낮아지시는 모범을 통해 겸손의 미덕을 보여주셨기 때문에(빌 2:6-11; 벧전 5:5)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모든 미덕가운데 중요한 것이 되었다.
“모든 덕이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인데 겸손이 그 첫째 계단이다. 이 첫째 계단에 오르면 그 다음에는 위로 올라가기가 쉬운 것이다.”(어거스틴)
“동전을 담는 저금통은 동전이 가득할 때 소리가 안난다.”
(2) 온유 – 이것은 ‘이해심 깊음’이라는 말로서 ‘정중함’(gentleness)이라고도 번역된다. 이 미덕은 그리스도의 성품이며(고후 10:1) 성령의 열매로서(갈 5:22, 23)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첫째, ‘중용’(中庸)을 뜻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할 때 사용된다. 둘째, 자신의 생각과 마음 그리고 본능적인 욕구 등을 스스로 자제하는 덕성을 의미한다(약 3:3-8).
(3) 오래 참음 – 이것은 죄인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이며(롬 2:4;9:22; 벧전3:20; 벧후 3:15) 그리스도인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내야 할 성령의 열매로서(고전 13:4; 고후 6:6; 갈 5:22; 골 3:12), 복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복수하지 않는 정신이다.
(4)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 본문은 앞서 언급한 ‘오래 참음’의 확대된 미덕이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단순히 ‘서로 용납하라’고 권면하고 있으나(골 3:13) 본 절에서는 ‘사랑 가운데서’를 삽입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타인을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사랑’이다. 여기서의 ‘사랑’은 성령에 의해 공급되어지는(롬 5:5) 새 시대의 능력으로(고전 13장; 갈 5:14, 22), 어떤 보상이나 조건을 내걸지 않은 자기 희생적인 무조건적 사랑이다.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것은 상대방의 연약함과 결점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Lincoln).

3. 성령은 하나되게 하신다.(3절)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바울은 하나됨의 생활 곧 일치의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일치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수단은 ‘평안의 매는 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원수 된 관계를 화해시키고,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화해를 이루셨으며(2:14-18)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됨’을 유지(维持)하도록 하기 위해서 평안과 화해의 대리자라는 직분을 주셨다(고후 5:18).
이러한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치가 분열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매는 줄’(쉰데스모)은 성도들을 서로 묶어 주는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현한(골 3:14) 것으로 족쇄보다 강한 결속을 시사한다.
한편 ‘힘써 지키라’의 헬라어 ‘스푸다존테스’는 ‘노력하다’보다 강한 표현으로서 어떤 목적을 향한 진지하고 열심 있는 태도를 가리킨다(Blaikie).
‘나는 배운게 없어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지만 남의 말에 항상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내 귀는 나를 현명하게 가르쳤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
나 자신을 극복하자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4.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4-6절)
몸이 하나이요 ‘한 몸’을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를 뜻한다(1:23; 2:14-22). 이러한 ‘한 몸’은 서로 나누어질 수 없는 온전히 하나로 묶여진 유기체로서 통일성을 이룬다(고전 6:15;10:17; 골 1:18).
성령이 하나이니(헨 프뉴마) –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성령을 영접하였다고 선언한다(1:13, 14).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사이의 공통적 근거로서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적인 통일성을 이룸을 시사한다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 교회가 통일성을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부르심의 한 소망’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특별한 소망을 위해서 부르셨는데 여기서 ‘한 소망’은 ‘우주적 통일성’에 관한 소망을 가리킨다
“해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이사야 45장 6절)
이사야 45장 22절에도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이가 없음이라.”고 했고, 호세아 13장 4절에도 “나 밖에 네가 다른신을 알지말 것이라 나외에는 구원자가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은 한 분이어야지 두 분이라면 이해가 됩니까? 당연히 우리를 지으신 분은 한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혹 다른 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이해했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누가 속여도 속이는 것입니다.
◦ 구세주도 오직 한 분입니다. / ◦ 구원의 길도 오직 하나입니다 / ◦ 중보자도 오직 한 분입니다.

어느 날 소녀가 아버지 서재 안으로 살며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그 아이는 아버지 옆에 조용히 앉아서 아버지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후에 아버지가 말했다. “얘야 뭐 원하는 것이 있니?” “아니요.” 그 소녀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 앉아서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곧 소녀는 들어올 때와 똑같이 조용하게 방을 나갔다.
그 소녀는 자기가 아버지에게 무엇인가 해 달라고 온 것이 아니었다. 그 소녀는 그저 아버지 곁에 있고 싶고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직 이 하나를 힘써 지키시는 주앙교회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