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홀(笏)과 실로이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 신가?(7. 나의 홀(笏)과 실로(hlyvi)이신 예수님) / 본문 : 창49:8-12

오늘 본문은 성경의 첫 권 창세기 49장입니다. 창세기에는 천지창조로부터 아담의 타락, 노아의 방주를 통한 심판과 구원의 역사 그리고 아브라함의 선택과 이스라엘 족장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족장들의 역사가 기록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49장은 창세기의 한 장(50장)을 남겨놓고 바로 전에 기록된 것입니다. 다음 장(50장)은 야곱의 장례식과 요셉의 죽음에 대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창세기의 결론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에서 아담의 타락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의 죄 때문에 벌을 내려주신 것은 이미 창세기 3장 16절에서 하와에게 잉태하는 고통을, 17절 아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벌만 내려주시고 만 것일까요?
아니면 역사가 한참 흐른 다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나셔서 죄로 인한 고통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예수님을 급히 보내주셨을까요?
여러분은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잘못을 이다음에 야단치려고 수첩에 꼭꼭 적어놓습니까? 아니면 지금 야단을 칩니까? 지금야단을 쳐야하는 것입니다. 혹 감정적으로 질책하지 않으려는 부모는 모았다가 다음에 야단을 칩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자녀들은 우리 부모가 또 어떤 빌미를 잡아 가지고 언제 나를 혼내줄까 염려하여 불안에 떨며 지낼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서 그가 타락했을 때 바로 그 죄의 대가가 주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 죄를 통해서 인간에게 내려진 죄의 대가를 다시 거둘 계획도 세우십니다. 아마 당장의 죄만을 혼내주고 자녀를 위해서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자녀의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것을 기록한 창세기를 넘기지 않고 마지막장이 다 되어서 야곱을 통해서 열 두 아들에 대한 “후일에 당할 일”(1절)을 말씀하시면서 유다지파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 속에 이 놀라운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2절에서 “너희는 모여 들으라 … 들을지어다”가 반복적으로 기록된 것은 야곱의 죽음이 임박했음과 야곱이 말하려고 하는 계시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이 단어의 어근 솨마([m’v;)는 단순히 듣는다는 뜻 외에 “경청하고 동의하고, 순종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단순히 야곱이 죽기 때문에 유언을 하는 의미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들으라” 이 말씀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임하여 경청하고, 동의하여 아멘으로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유다지파에게 내린 야곱의 예언은 다른 지파에게 내린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지파에게서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 유다지파에게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이스라엘의 유다지파에게 뿐만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내린 예언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야곱의 4째 아들로 레아가 B.C 1755년에 하란에서 낳았습니다. 유다지파는 가나안 정복에 있어서 선봉이었습니다(삿1:2). 이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해 용감하고 탁월했습니다. 이 지파에게서 이스라엘이 제일 번창했던 ‘다윗’이 탄생했습니다.
야곱의 예언을 통해서 나타난 ‘유다’ 지파의 예언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메시야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찬송 받으실 분이십니다.
‘유다’ 이름의 뜻이 ‘찬송’입니다. 그의 이름대로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1절)고 말합니다. 사람의 이름은 그 뜻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지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메시야 예수님께 해당되는 말입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21:9)했으며 대제사장이 예수를 죽이려고 음모를 꾀하여 책잡으려고 할 때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막14:61)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한 말이지만, 예수께서 찬송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알고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롬1:25)이라고 함으로 예수께서만이 영원히 찬송 받으실 분임을 선포했습니다.

2. 원수를 이기신 분입니다.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1절)했습니다. 우리는 죄(사단)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가 된 사이가 되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5:10) 이것은 예수께서 원수를 그의 죽으심으로 이기신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기자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히10:30)로 확실하게 예언된 말씀을 인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사자(狮子)이십니다.
“유다는 사자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같고 암사자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9절)고 합니다. 이것은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에 대한 상징입니다. 구약시대 성전 칸막이에도 그려져 있었습니다(왕상7:9). 사자는 짐승들의 왕으로서 숲 속에서 사자가 울부짖으면 모든 짐승은 숨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는 포악하고 성난 사자가 아니라 자기 힘을 원수를 이기는데 만 사용한 웅크린 사자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예언된 이 말씀이 성경의 마지막 권 요한계시록 5장 5절에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기록되었습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하나님의 숨결이 베어있는 책입니다.

4. 홀(笏:홀홀) 이십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10절) 우리말 ‘홀(笏)’의 뜻은 ‘홀기(笏记)’의 준말로 혼례나 제례 때 의식의 순서를 적은 글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홀’은 왕권을 상징하기 위한 증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표준새번역성경에서는 ‘통치자의 지휘봉’이라고 했으며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왕의 지팡이’로 번역했습니다. 족장시대에는 이 ‘홀’(증표물)은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지팡이였습니다. 우리나라 왕통시대로 말한다면 왕의 상징인 ‘옥새’를 말하는 것입니다. 족장시대 ‘옥새’는 지팡이에 새겨 가지고 다닌 것입니다. ‘옥새’도 새긴다 할 때 사용하는 ‘도장 새(玺)’자를 뜻합니다. ‘홀’로 번역된 이 단어 역시 하카크(qq’j;)라는 단어인데 “새기다, 제정하다, 통치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사야는 바벨론의 패망 가리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악인의 몽둥이와 패권자의 홀을 꺾으셨도다”(사14:5)고 말했습니다.
야곱의 예언은 유다에게서 왕권이 떠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유다지파에서 왕이(메시야)가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마27:37). 사람들은 예수께 ‘왕’이라고 조롱했지만 그는 유대인의 왕으로만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5. 실로(hlyvi)’이십니다.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0절)의 본문은 난해한 본문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에 같은 단어로 나타난 곳은 예루살렘 북쪽 약 48km떨어진 곳에 있는 ‘지명’이름입니다. 여호수아가 이곳을 본부로 장막을 쳤던 곳입니다(수18:1). 그러나 본문의 뜻은 장소를 말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어떤 장소를 ‘오시기까지’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앞에서 ‘홀’에 대해서 언급했기 때문에 여기에 나오는 ‘실로’는 당연히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에는 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실로(hlyv)’의 뜻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구약역본(LXX)은 ‘그가 그 자신으로 오시기까지’로 옮겼습니다. 표준새번역은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면”으로 현대인의 성경은 “그 지팡이의 소유자가 오실 때까지”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에는 분명 ‘실로(hlyv)’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있는 개역성경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어려운 원문과 여러 성경을 비교하여 말씀드리는 것은 이 문제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라”고 했는데 이 얼마나 중요한 말씀입니까?
‘실로(hlyv)’의 어근 ‘솨라(hl;v;)’는 “안전하다, 성공적인, 잔잔하다, 평안하다”를 뜻하는 것으로 ‘평안이 올 때까지’로 다시 말하면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6)로 이스라엘의 인사말 ‘샬롬’(!/lv;)과 같은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사들이 부른 노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부른 노래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19:38)에서 ‘하늘에는 평화요’로 찬송했습니다. 예수님께는 늘 평화가 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진정한 평화와 평안을 안겨주실 분입니다.
인간에게는 죄로 인해서 불신과 불안만이 존재했습니다.

나폴레옹이 독서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병사 한 사람이 와서 물었습니다.
“장군은 어느 때가 가장 두렵습니까?”
나폴레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발할 때가 가장 두렵다네. 면도사의 칼이 왔다 갔다 할 때면 으스스하기까지 한다네. 그래서 나는 면도할 때에는 부하를 시켜서 이발사의 아들의 목을 잡고 있게 하여 이발사가 내 목을 벨 때는 그 아이의 목도 잘린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네.”

나폴레옹과 같은 독재자에게만 두려움과 불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삽니다. 즉 이 세상에는 두려움과 고통이 그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겪는 불안과 괴로움은 죽음이 올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며 죽음 앞에서는 극도의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입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10절)의 ‘복종’은 복종의 의미도 있지만 ‘순종’의 의미도 있습니다. 결국은 사단과 믿지 않는 자들도 복종케 될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순종의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8:27) 자연도 순종했습니다. 또 귀신들도 순종합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1:27)
믿지 않는 자들과 사단이 마지막에 예수께 복종할 때는 강제적인 것으로 예수 앞에 무릎을 꿇는 마지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6)가 됩니다.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11,12절)라고 했는데 히브리인들은 평화시에 나귀를 타고 여행을 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대개 나귀는 잡목에 매어두기 마련인데 본문에서는 포도나무에 매어둔다고 했습니다.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땅이 축복을 받아 비옥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이 이렇게 오래 전 창세기에 이토록 정확하게 야곱에 의해서 예언되고,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 아닙니까? 또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녀가신 이후 성령시대에 살고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평안의 축복입니까? 이 축복의 기회를 놓치시지 마십시다.
우리에게 ‘홀(笏)’로 왕권을 가지시고 ‘실로(hlyv)’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께 순종하심으로 영생을 소유하시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