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표적
예수님의 생애(6. 처음 표적) / 요한복음 2:1-11
“1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우리 나라 최고기온이 연일 경신되고 있습니다. 35도는 이제 ‘그것도 더위냐’ 할 정도로 별 것 아닌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더위도 식힐 겸 제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 해 드릴께요.
45층 짜리 아파트 꼭대기에 사는 잉꼬부부가 있었습니다. 꼭 퇴근시간을 맞추어 함께 집에 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난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45층까지 올라갈 생각을 하니 암담했습니다. 그래서 지루함을 잊고 재미있게 올라가기 위해서 번갈아 가며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처녀귀신, 몽달귀신 등 갖가지 무서운 이야기가 다 나왔습니다. 드디어 44층까지 올라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내가 이야기를 할 차례였습니다. 아내는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기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기절시킨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여보, 나 수위실에서 열쇠 안 찾아왔어.”
이렇듯 사람들은 뜻밖의 결과에 깜짝 놀랍니다. 오늘 본문도 깜짝 놀랄 사건이 소개됩니다.
갈릴리의 작은 마을 가나에서 혼인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정확히 누구의 혼인인지는 모르지만 예수님의 친척 중의 하나이거나 제자들의 친척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예수님과 마리아, 제자들이 초청을 받았다는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의 혼인 잔치는 1-2주간에 걸쳐 길게 진행됩니다(창29:27, 삿14:12).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 잔치에 예상외로 많은 손님이 왔습니다. 이 때는 혼인 잔치가 끝날 무렵이었기 때문에 잔치 집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막바지에 이른 잔치 집의 흥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주인으로서는 기분 좋은 잔치를 망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 마리아는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이 상황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대답이 이어집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4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어머니를 부를 때 사용한 “여자여”는 한글개역성경에서 어색한 표현으로 들리게 번역되었습니다. 원어의 guvnai(귀나이) 존칭 호격으로 “여성, 부인”을 뜻하며, 그리스에서는 자신의 아내를 다정스럽게, 그리고 최고로 높여 부르는 존칭어입니다. 이 말은 왕후를 부를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용하는 “마담”이라는 단어도 프랑스에서는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프랑스 대사관에서 한국정부에 건의도 하고 압력도 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화가 되어버려서 정부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한 것은 포도주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마리아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입니다. 다시 표현한다면 “나에게 무슨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까?”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다면 그것은 마리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에 의해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묻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여러분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리아도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와 자신의 육신 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로마 카톨릭에서는 마리아의 여러 경우를 예수 이상으로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격렬한 어조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거의 다 빼앗아버린 미친 헛소리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은 이런 일을 염두 해둔 예수님의 질문이었습니다.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4절 하반)
w{ra(호라) “정한 때”는 일반적으로 지정된 시간을 말합니다(눅14:17, 행3:1).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의 시작을 자신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시작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때를 기다려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때를 회피하거나 서두르지는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운전하실 줄 아시지요. 처음에 면허증 따고 너무 기뻐서 운전면허 시험장 나무껍질이 벗겨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면허증 교부 받아 가지고 그것만 쳐다보고 오시다 나무를 받아서 껍질이 다 벗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운전할 줄 알면 운전하고 싶어서 몸살이 납니다. 이런 증상은 1년 이상 간답니다. 차만 보면 운전하고 싶은 겁니다.
아마 우리가 능력이 있으면 못써서 몸살이 났을 겁니다. 태권도 처음에 배워보세요. 내가 정말 힘이 쌘 건지 한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한번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괜히 시비를 겁니다. 싸움에 자신 있는 것 같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진짜 고수는 길거리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러시아 선교사님 한 분 중에는 합기도 9단에 태권도 7단의 소유자입니다. 그런데 몸집도 작고 선교사가 고단 수의 운동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모릅니다. 어설픈 사람들이 조금 힘이 있으면 사용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있는 사람은 결코 보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아직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으셨기 때문에 시험을 해 볼만도 하신 데 안 하십니다. 사실 처음에 사단이 시험할 때 그 능력 사용하시기를 시험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믿음
마리아는 예수님의 대답에 섭섭하기보다는 하나님에 의해서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절)고 말했습니다. 따라합시다. 기적은 믿음에서 일어난다. 기적은 순종에서 일어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됨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6절) 유대인의 집 입구에 놓인 이 항아리는 민19:1-22에서 유래한 정결 의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두 세 통 드는 돌항아리”는 매우 큰항아리로 약 70-120리터 정도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항아리가 6개이면 적어도 420리터에서 720리터에 달하며 결혼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충분히 마실 양이 들어갑니다.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라고 했습니다. 분명히 기적은 일어났는데 그 흔한 주문 같은 것 하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컨데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어라”라고 명령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그런 말이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본문은 ‘물을 항아리 아구까지 채우고 그냥 그 물을 떠다 주어라’고만 했습니다. 이후에 일어나는 기적도 대개가 하나님께 미리 감사의 기도를 하시거나 교훈을 주기 위해서 하신 말씀 밖에 없습니다.
“아구까지 채우니”는 그들이 100% 순종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순종이란 하다말면 소용이 없습니다. 99% 순종하고 한번 거역하면 그것은 거역한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순종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기적을 일으키게 합니다.
하루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물었습니다. 어느 군인이 그 날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생각들을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어느 장교는 가장 탁월한 군인은 그 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교들은 이 군인, 저 군인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지휘관은 말했습니다. “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장에서 최선의 군인은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 오늘의 가장 고귀한 일인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순종함으로 된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땅에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표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17:7-8절에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출애굽기 6:8절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시작은 이렇게 합니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마 1:1-2) 하나님의 세계는 순종의 믿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건축 설계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설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많은 손님들은 이미 마음속에 원하는 모양의 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양대로 설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만약에 제가 설계한 것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은 몹시 못 마땅해 합니다”
물론 집이야 자신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설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들의 삶을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설계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께서 설계하신 인생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연회장은 오늘 우리로 말하면 주례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례처럼 잠시 교훈적인 주례사만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연회가 마칠 때까지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연회장은 신랑, 신부를 잘 아는 동네의 어른이며 잔치에 제공되는 음식을 감별하는 임무도 연회장에게 있었습니다. 포도주를 연회장에게 먼저 갖다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에 의해서 좋은 포도주임이 증명된 것입니다.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서 보통은 먼저 좋은 것을 내어놓고 술이 어느 정도 취한 다음에, 한마디로 맛을 잘 모를 때 나쁜 것을 내놓는 것이 일반인데 잔치 끝 무렵에 좋은 포도주가 나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당시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형식주의에 이미 오래 전부터 빠져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우리의 양반 풍습하고 비슷합니다. 유교문화에서 나온 풍습이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서 형식주의가 나온 것은 믿음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옛날 백제에서는 불교 행사의 하나로 짐승을 놓아주는 날이 있었습니다. 불교 중생의 자비에서 나온 풍습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래 자비 사상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 형식만을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그 날에 놓아주려고 짐승을 잡아 가지고 있다가 그날 놓아주는 난센스가 있었습니다. 꼭 흥부처럼 제비의 멀쩡한 다리를 부러뜨려 다시 고쳐주는 선심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런 형식주의로 변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오늘 혼인잔치의 주인은 사실 정말 좋은 포도주를 숨겨놓았던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와 같은 칭찬을 듣게 된 것입니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9절)
그러나 정녕 이 연회장은 이 좋은 포도주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마리아의 부탁대로 예수께서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순종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오지 않으시는 분들이 교회에 다니는 재미를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순종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눈빛만 보아도 압니다. 목자는 양을 알아봅니다. 양은 자기의 목자를 알아봅니다.
여러분! 연회장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 순종하고 그 기적을 예수께서 일으켰다는 것을 알게된 이 하인들이 복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믿게되기 때문입니다.
영광을 나타내고, 제자들이 믿음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11절) 우리는 예수님의 처음 기적에서 이 기적의 목적이 두 가지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혼인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져 좀 창피하고 문제가 생겼다고 합시다. 솔직히 그것이 예수님하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처음에 예수님은 스스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던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간청과 순종하는 하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을 보고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솔직히 본문을 해석해온 지금까지의 입장을 보면 혼인집 주인의 난처한 입장을 너무 많이 부각시켰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혼인집의 안타까운 사정은 익히 알겠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킨 것은 아닙니다. 다시 따라합시다. 기적은 믿음에서 일어난다. 기적은 순종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적을 절대로 자신의 이익과 사적으로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주신 능력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만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이 기적을 통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께서 친히 능력을 나타내신 적이 없으시고 이 기적이 처음이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이 기적은 표적이 된 것입니다.
우리 주앙교회도 하나님의 주신 헌금예물,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오직 하나님께만 사용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개인에게 주신 능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재능,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이익을 위해서, 내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미련한 것이며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의 생애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