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만 구하는 자들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31. 표적만 구하는 자들) / 마 16:1-4

“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어떤 노총각에게 요정이(천사?) 나타나 한가지 소원만 말하면 들어주겠다고 그랬습니다.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세 가지를 한가지처럼 빨리 말했습니다. ‘돈, 여자, 결혼’이요.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소원이 이루어졌대요. ‘돈 여자하고 결혼한 것입니다’ 욕심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제가 늘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정직 하라’입니다. 그리고 정직한 사람은 자기가 심지 않은데서 거두지 않는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공짜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공짜를 좋아하는 것도 비 정직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병든 자 가난한 자의 친구로 오셔서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을 불쌍히,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다.’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단순히 표적만을 구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실 때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사단의 역사로 귀신들리고 병이 들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이런 동기 없이, 이유 없이 표적을 나타내시지는 않습니다.

표적만 구하는 자들은
1) 예수를 시험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사단이 예수님을 시험한 적이 있습니다(마 4:1).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자신들의 신앙체계만 고집하고 예수님을 선입관을 가지고 대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예수님을 음해 하려는 생각만 있는 자들입니다.

2) 자신은 노력하지 않고 말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말로만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행함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는 속죄하는 고백(회개)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갈 때 뒤에는 바로의 군대와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바다를 가른 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지금 구하지 않으면 죽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표적을 보여줄 만한 이유가 있습니까?
출애굽기 17:10-12절에 “10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11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12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 오지 아니한지라 13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아말렉과 싸울 때에도 모세가 손을 들고 있었습니다. 최소한의 수고가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는 것입니다.
홍수가 나서 섬처럼 고립된 마을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살려달라고요. 그런 하나님의 도움은 없었습니다. 이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왜!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았냐고 따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하여 배도 보냈고, 헬리콥터도 보냈지만 너는 그것을 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노력이 동반된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 그렇게 행해야 합니다.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시간을 정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돈을 달라고 기도한다면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3) 진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 좋아하십니까? 진심으로 예배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진심이나 진리에 응답하는 말이 아멘입니다. 아멘의 뜻이 진리와 진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아멘하는 자를 좋아하십니다. 아멘은 순종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께 표적만 구하는 이 사람들은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정말로 기적이 필요해서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여러분 돈도 무조건 많이만 모아놓으려고 하지 마세요. 돈도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합니다. 만일 네게 돈이 있다면 바르게 사용하세요. 무조건 물질의 축복만 간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잘 쓸 수 있는 사람, 그런 그릇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하신다고 하셨습니다(사11:4).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고 판단이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시119:137).

4) 악하고 음란한 자들입니다.
본문 4절에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 21:13절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 강도가 악한 사람입니다. 강도의 특징은 요 10:1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 10: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이러한 강도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악한 사람입니다.
예레미야 시절에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를 예레미야 3:2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네 눈을 들어 자산을 보라 너의 행음치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네가 길 가에 앉아 사람을 기다린 것이 광야에 있는 아라바 사람같아서 음란과 행악으로 이 땅을 더럽혔도다”
지금 얼마나 음란한 세대인지 모릅니다.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서 돌아다니는 음란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원래 모텔이라는 곳이 가족이 여행을 하면서 하룻밤 묵고가는 곳이 모텔입니다. 그래서 고속도로 옆 같은 곳에 이런 숙박시설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는 하루면 갔다가 오는데 왜 모텔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내가 한 것이 없으면 미안해서 달라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그런 마음을 갖아야 합니다. 꼭 악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자신만 알고, 달라는 사람을 보면 가까이 하기 싫어집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주기를 좋아합니다. 베풀면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천기는 분별할 줄 아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틴 사람들은 하늘의 변화에 상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처럼 일기예보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하늘을 자주 관심 있게 처다 보게 되었습니다. ‘저녁 하늘이 붉으면 다음날 맑은 하늘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날이 궂겠다”는 찌푸린 날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가 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들은 “천기”(하늘에 나타나는 자연적인 제현상)를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 일어나야 할 최대의 사건, 표적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농사를 짖고 살아가려면 천기를 알아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정치이야기하면 안 빠집니다. 심지어는 정치인 주변의 인물들까지 꿰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연애 인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스포츠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출세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식이나 경제에도 상당히 높은 관심이 있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처럼 살아가는데 필요해서 ‘천기’를 잘 분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를 살아가려면 시대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안됩니다.

시대의 표적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최대 표적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나가 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을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의 표적을 분별해야 합니다. 본문 3절 하반 절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최대의 표적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제일 큰 표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역사와 함께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시대의 표적입니다. 바로 이것을 분별하고 전도하고, 선교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을 몰랐던 사람처럼 정치와 경제, 연예계에 대해서는 훤히 알면서 이 시대의 표적에는 무관심한 자들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인도의 선교사로 갔던 한 핀란드 여인이 그만 심한 폐병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돕던 중 이번에는 탈곡기에 한쪽 팔을 잃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겹치는 고난에 그 여인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기도했습니다.”주님, 저는 이제 오른팔이 없습니다․.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
그 여인은 왜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오직 무엇을 할지를 물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탓인 양 하나님을 향해 “왜 이런 일이 저에게 일어나야 합니까”하고 따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머리 속에 ‘왜’라는 말 대신에 ‘무엇’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린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게 전개될까요.
우리 한국 성도들은 아직도 기복 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모든 일이 범사에 잘돼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릴 약속을 받은 우리들이기에 그분이 가신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아야겠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칠 때에도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몇 년 전에 가나에서 풍토병으로 어린 딸을 잃은 한국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곳 풍습에 따라 사흘 동안 장작불에 딸의 시신을 태우면서 견디기 힘든 슬픔 속에 선교를 포기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헌신의 행군은 계속되었고 주님께서는 많은 결신 자와 함께 현지에 학교 병원을 세우는 등의 열매를 허락하셨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한 차원 성숙된 눈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표적만 구하면 예수님은 떠나갑니다.
본문 4절 하반 절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시면 끝입니다. 예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비전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람이란 말만 무성하지 창조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하나님 앞을 떠났습니다. 가인이 아우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 앞을 떠났습니다(창 4:16).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할 때, 민수기 12:9-10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10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문둥병이 들었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니까 10절에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대통령이 떠나면 호위하던 모든 사람이 함께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하나님의 모든 축복도 떠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떠나가면 성령이 떠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돕는 천사가 떠나갑니다. 축복이 떠나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착각하지 맙시다. 우리 인간의 힘으로 무엇인가 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 없이는 하나도 되는 것이 없습니다.

영국의 한 광고회사가 큰상을 내걸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런던까지 가장 빠른 시간에 갈 수 있는 방법을 묻는 퀴즈를 내었습니다.
워낙 상품이 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응모했습니다. 비행기가 가장 빠르다느니, 기차를 타고 오다가 어느 시점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느니, 새벽에 지름길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오면 가장 빠르다느니 등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고 실제 시간을 재어보면서 서로 자기들 아이디어가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상을 탄 사람의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아무리 먼길이라도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거리 계산법입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아무리 멀고 험한 길이라도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떠나가게 만드는 것은 이기적인 마음입니다. 욕심입니다. 자신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하나님이 해 주신다고 말만 하는 자들입니다. 공짜만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이란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원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의 진실한 예배와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이 주앙교회에서, 우리가정에서, 내 삶에서 떠나지 않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