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뿐인 추천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104. 단 하나뿐인 추천서) / 본문 : 요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 12:47)

지난주에는 “예수님은 누구신가?”를 교재로 만드는데 추천서가 필요하다고 하여 추천서를 받으려고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추천서는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 추천서를 예수님께 받았으면 하는 마음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추천서를 받았지만 예수님께 추천서를 받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추천서가 필요합니다. 이 추천서는 어떤 글에 대한 추천서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총 결산의 추천서입니다. 이 추천서가 ‘양가집’이 되지 마시고 ‘우수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의 노자는 ‘道可道면 非常道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도’가 ‘도’로서 정의되면 더 이상 ‘도’가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도’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노자는 ‘물’로서 ‘도’를 설명하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성경은 단 한차례도 꾸미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영웅담이 아닙니다. 또한 한 개인의 우상화를 위해서 기록된 책도 아닙니다. 구약의 그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있는 그대로를 말할 뿐입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모욕당한 것,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다 공개되었습니다. 성경은 분명 예수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 우리에게 구원 주로 보내신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추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천사들을 보낼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천사를 보내셨고, 롯을 구출할 때도, 욥에게 그의 위로하실 때에도, 여호수아에게 작전을 지시하실 때에도, 삼손을 보내실 때도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애굽에서 유대인을 이끌어 내시기 위해서는 모세를 불렀고, 미디안의 손으로부터 구원하고자 기드온 불렀으며, 블레셋을 쳐부수기 위해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제국를 건설하거나 막강한 왕위를 세우거나 무수한 군중의 경건한 예배를 받으시면서 어떤 광대한 영토의 국민을 통치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가난과 외로움, 잠 못 이루는 밤들과 괴로운 날들, 수난과 죽음으로 보내셨습니다.
어떤 분은 마치 유대인들처럼 자신만을 위한 강력한 왕의 메시야를 꿈꾸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강력한 독재자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이로써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위대한 추천서를 우리는 받았습니다. 본문의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 12:47)는 구원 주로서의 하나님의 추천자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가 러시아 소치로 결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평창을 4펴차로 따돌렸습니다. 여러 가지 패인에 대한 분석이 있지만 진짜 패인이 어디 있었을 까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마지막 프리젠테이션에서 평창이 밀렸다는 생각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으로 러시아는 공식 석상에서 영어나 다른 나라말을 사용하지 않고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어를 사용했고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도 함께 사용하여 각국의 IOC의원들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의사 선생님, 제 남편이 다 죽어갑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영국의 한 시골 병원에 초라한 모습의 부인이 찾아와 애원했습니다. 의사는 얼른 왕진 가방을 챙겨 들었습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만 의사 선생님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는 돈이 한푼도 없습니다만…” “사람부터 살려야지요.” 의사는 더 이상 군말 없이 부인을 따라갔습니다. 초라하게 누워있는 남자가 보였습니다. 진찰을 다 마친 의사는 안심하라고 하면서 작은 가방하나를 두고 갔습니다. 이 가방을 열어 적힌 대로 처방하면 됩니다. 부인은 의사가 돌아간 뒤 가방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약대신 돈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쪽지에는 “처방전- 당신 남편은 극도의 영양실조 상태입니다. 이 돈으로 무엇이든 먹고 싶은 음식을 사 주십시오.” 이 일화는 영국의 골드 스미스라는 의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구원의 인내와 희생

예수께서 구원받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이런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제자들의 반응은 마가복음 10:26-27절에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께 있음을 못박아 두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이 구원에 대해서 이기적인 욕심에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볼 때 희생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결코 희생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5, 막 8:35)

켄터키의 두 광부가 암석을 폭파하기 위해 선발되었습니다. 그들은 도화선과 나무토막 모양의 다이나마이트를 갖고 우물 속과 같은 굴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도화선을 점화할 때, 콘베이어 두레박이 그 두 사람을 광산으로부터 운반하도록 되어있었습니다. 다이나마이트가 준비되고 도화선에 불이 붙여졌습니다. 두 사람은 준비된 콘베어에 올라탔습니다. 어떤 잘못으로 인해 꼭대기에는 단 한 사람만 남아있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두 사람을 한꺼번에 들어올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 광부 중 그리스도인인 한 사람이 재빨리 그 두레박의 밖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신호로 그 로프를 잡아 당겼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아닌 그 동료는 위로 올라갔습니다. 뒤에 남아 있는 그 사람은 “나는 그리스도인 일세, 만일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난다 해도 나는 괜찮네”라고 그에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두레박이 밑으로 내려오기 전에 폭발했습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나 주께서 대답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굽어보시기만 하시나이다”(욥 30:20) 욥이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입니다. 오늘날에도 욥과 같이 하나님이 즉시 나타나셔서 도와 주시지 않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녀와 함께 길을 가다가 아이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일으켜 주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충분히 손을 뻗어 그 아이를 얼마든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도록 놔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 아이가 죽을 만큼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십시오.

K교회에 생긴 일입니다. 목사님이 갑자가 다른 교회로 떠나셨습니다. 이 교회는 500여명의 성도가 있는 교회인데 갑자기 목사가 없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적인 방법에 의하여 장로님들이 소집되고 일명 목사 청빙위원회가 생겼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목사를 모시고 올까를 고민하던 장로님들은 여러 가지 방안을 종합하여 일단 청빙 공고를 내고 목사 테스트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교회에서 30분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과 양력을 보고 투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문제도 많지만 장로님들의 생각은 대체로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 목사님을 모시기로 최종 결정이 났는데 미국에서 3000여명까지 부흥시켰던 경력이 있는 목사님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을 모시게 된 주된 결정도 아마 그것이었던 같습니다. 장로님들이나 성도들은 꿈에 부풀었습니다. 그 분을 초빙하면 교회가 3000여명 이상으로 부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이런 기대와 교회의 부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새로 모시게 되는 목사님과 자신의 신앙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고민하는 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목사님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외적 성장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경영자를 모시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그 남은 사람들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마 27:49),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막 15:30-31) 이 소리가 얼마나 가증한 소리입니까? 지금 자신을 생각할 때입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추천합시다.

제가 살던 시골집 뒤에 침 잘 놓는 명의로 소문난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습니다. 환자들이 새벽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 소식을 모르는 분들이 한동안 계속해서 왔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약이나 자신의 경험으로 어떤 의원에게 고침을 받고 효과가 있었다면 같은 병을 앓는 사람에게 그 방법이나 의원을 추천합니다. 바울은 그의 인생을 치료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전하는데 남은 인생을 사용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그분이 세상에 오신 목적 그리고 그가 받은 은혜를 전합니다. 바울이 전한 편지들은 위대한 추천서입니다. 저의 이 설교도 여러분에게 구원의 추천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께 추천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오라’는 말이 무려 642회나 나옵니다. 하나님은 문을 열어 놓으시고 간절히 들어오기를 바라고 계신 것입니다.

평양 부흥운동의 주역가운데 한 사람인 블레어(Blair)는 한국선교사역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사경회를 꼽았습니다. 사경회는 성경공부와 기도를 집중적으로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1907년 1월 시작된 사경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말씀과 기도로 이어져 성령의 도가니가 된 상태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요한복음 3장 34절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의 말씀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이 땅에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못 살았을 그 때 그 시절에만 성령이 필요했던 것은 아닙니다. 현재도 여전히 성령은 필요합니다. 우리가운데 역사 하셔야 합니다. 세상의 것으로만 살아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써 주신 추천서는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골고다 골짜기의 피로서 써 주신 것입니다. 이를 가볍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바쳐서 써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 더 확인해 봅시다. 민수기 23장 19절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