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복음서를 중심으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129. 새해에는…(복음서를 중심으로)) / 본문 : 막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ajlla;(알라)” 예수와 자기들 뿐이었더라”

새해에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직, 반드시, 꼭”으로 번역할 수 있는 “ajlla;(알라)” 에 대해서 지난주에 설교했는데 벌써 작년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마태복음서에 나온 것을 가지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복음서에 나오는 것을 좀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단어가 “알라”입니다. “알라”에 대해서 들으시면서 “알지”못하면 안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예수님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며 변화하신 것입니다. 이 광경이 너무 황홀해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짓겠다고 했을 때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막 9:7)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예수 외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약의 선진들도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비교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온갖 것하고 비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008년도에는 오직 예수만 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만 보셨습니다.

“알라”가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거의 이 단어를 포함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자주 쓰는 말이나 어법이 있는데 예수님은 이 단어를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포함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ajlla;(알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ajlla;(알라)”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요 7:16)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ajlla;(알라)” 내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요 6:38)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ajlla;(알라)”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 5:30)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에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이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예수님의 뜻이 된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조지 뮬러 목사는 독일 사람으로,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기 위해 영국에 공부하러 갔던 사람이었습니다. 뮬러 목사는 평소 많은 고아들이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을 보며 공부했는데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편 68:5)는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뮬러 목사의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바로 뮬러 목사에게 주어진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뮬러목사는 “하나님께서 고아의 아버지시라면 나는 고아들을 돌보는 총무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 고아를 돌보는 사명을 주셨으니 길도 열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결국 고아원을 세우는 길을 얻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고아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2. 반드시 주님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ajlla;(알라)”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막 9:37)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도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없이는 그 무엇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군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아들의 행동이 망나니 같았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 동안 너의 행동을 참고 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다. 내가 너를 산 에 데려가 크게 혼내겠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산 속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산 길이 하도 험하니까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좀 쉬었다 가요.” “이 놈아 쉬기는 뭘 쉬어.” 아들은 계속 쉬어가자고 사정합니다. 그래서 잠시 쉬는데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하고 등산하니까 참 좋 네요.” “이 녀석아. 조금 더 가면 크게 혼날 건데 좋긴 뭐가 좋아.” “아빠랑 등산하는 것이 처음이 예요. 혼나러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좋을 수 없네요.” 곰곰 생각해보니 아들과 등산 한번 간 적 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만 마음이 풀려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아들과 산을 내려 왔습니다. 아버지와 손잡고 가는 길은 항상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오늘은 전 가족이 찬송가 456장을 불러보세요.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우리 주님 걸어가신 발자취를 밟겠네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

제가 오늘 주일이 되어서 설교만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또 무엇을 준비했겠습니까? 어린이들을 위해서 무엇인가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서은이를 위해서 “목사님은 복어다!” “목사님은 갈치다”하는 것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말이 안통해도 아이들과 노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가도 자신 있습니다.

3. 주님은 우리를 꼭 지켜주십니다.

” “ajlla;(알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 “ajlla;(알라)”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눅 12:7)

초인종 소리를 듣고 문을 열었더니 낯선 사람 둘이 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60대쯤 돼 보이는 할머니, 또 한 사람은 4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나누러 왔습니다.” 그럽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는데요.” “교회에 다니시는군요.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을 아시나요?” 그럽니다. 그냥 ” ‘하나님 아버지’ 라고 하면 되지요.”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름이 아닙니다. 당신이 ‘하나님’ 하면 어떤 신이 대답할지 모릅니다. 꼭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그럽니다.
그래서 “당신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부르나요?” 그랬더니 “아버지라고 부르지요.” “아버지의 이름을 안 불렀는데도 알아들으시잖아요.” 그러자 그들의 그냥 가버렸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요 10:14-15)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아버지’ 하는 우리의 음성을 듣고 알며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ajlla;(알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 13:20)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ajlla;(알라)” 하나도 잃어 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

미국 어느 지방의 산 속에 한 가족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힘이 세고 용감한 사람이었으나 어린 아들은 몸도 약하고 겁도 많았습니다. 아들이 7살이 되어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학교를 가려면 깊은 숲을 지나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매일 아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오늘까지만 너와 함께 갔다 오겠다. 내일부터는 혼자 다니거라” 아들은 울며 아빠, 무서워서 싫어요.” “아무리 울어도 안 돼”
아들은 할 수 없이 혼자 다녔습니다. 그러기를 이틀, 아이가 학교에서 오다가 숲에서 커다란 곰을 만났습니다. 아이는 도망도 못 가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순간 총성이 울렸습니다. 아이가 눈을 떠보니 자기를 덮치려던 곰이 쓰러져 있고 총을 든 아버지가 웃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일으키며 아버지가 한 말입니다.
“아들아, 아버지는 항상 네 곁에 있었단다.”
“미국은 지금 국방의 힘, 경제의 힘, 과학의 힘이 사상 최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이 없으면 모두 헛것일 뿐입니다”
닉슨 대통령 당시 레너드 국방장관이 조찬기도회 때 한 말입니다.

4. 반드시 믿음을 가지십시오.

” “ajlla;(알라)” 그러나(카이)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마르다의 고백)”(요 11:22)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ajlla;(알라)”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모든 사람들은 자기 앞에 버티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것은 고독과 낙심일 수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스트레스, 슬픔 또는 경제적인 궁핍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산들은 대부분 높고 험준하여 산들을 가로지르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산들을 옮기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큼 작은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산들을 바다에 던질 수 있습니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ajlla;(알라)”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ajlla;(알라)” 옮겼느니라”(요 5:24)

대학 다니다가 군에 들어간 육군 신병이, 내가 이 3년 동안 군인생활을 하면서 일생 추억에 남을 만큼 좋은 군인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선배되는 병장에게 물었습니다. “군인 생활을 좀 깨끗하게, 명예롭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좀 자세하게 가르쳐주십시오.” 선배 되는 병장은 껄껄 웃으면서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군인 생활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면 되느니라. 명령 떨어지는 대로만 복종하면 돼. 네 앞에 할 것까지 미리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어.” “아, 간단하군요.” 가만있다가 이 머리 좋은 청년이 다시 질문합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이 사람은 이렇게 하라, 저 사람은 저렇게 하라 하고 여러 상관이 명령을 각자 다르게 내리면 그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 사람아, 별걸 다 걱정하는군. 그럴 때는 말이야, 최고 계급 자에게 순종하면 돼.” 대단히 중요한 예화입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ajlla;(알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 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