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9-10)
우리 기독교인이 가장 잘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은혜’입니다. 은혜 없는 기독교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존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배드리고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말씀으로 보고도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세상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일을 경험하면서도 은혜 받았습니다. 그럽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것이 은혜로 시작하고 은혜로 마칩니다. 내가 노력해서 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다 피해집니까? 몇 개는 피하겠지요. 그러나 다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피할 길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세상에 모든 것을 물로 심판하실 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이 뽑았습니다.
하나님 믿으면 왜 감사의 삶을 살아갑니까?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불평의 삶이 아닙니다. 감사의 삶입니다.
눈이 따가워 안과에 가면 인공 눈물을 줍니다. 의사 선생님이 “하루에 네 번씩 넣으세요.” 그럽니다. 어떤 분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루에 네 번씩 울면 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울려고 하니까 눈물이 잘 안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돌아와 하루에 네 번씩 눈물을 흘리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저도 참 잘 웁니다. 남이 볼까봐 화장실에 가서 웁니다. 혼자 있을 때 웁니다. 교회에서 주님과 함께 웁니다. 은혜 받으면 잘 웁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 하면서 웁니다.
성경 적인 이름으로 제일 많은 것이 남자는 ‘다윗’, 여자는 ‘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난 21일(목)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중학생 아들 이모군(13)이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할머니 일가족 4명이 숨졌습니다. 이군은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잔소리가 싫다”고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자식을 두고는 언제나 자식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식의 문제는 부모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자식을 다 욕할 수 있어도 부모는 못합니다.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아는 아이로 키워야합니다. 은혜를 알면 사람이 됩니다. 은혜를 알면 다 됩니다. 잘못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디 가서 이 은혜를 배웁니까? 어디 가서 이 은혜를 받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와야 됩니다. 교회는 노력해서, 우리가 도 닦아서 사람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함으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곳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되면 교만만 생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보세요. 겸손해 집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아직도 국가에 대해서, 사람에 대해서 불만이 많습니까? 분명한 것은 내가 아작 덜 변했다는 것입니다. 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말 그대로 국경을 넘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북한 탈북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나온 사람들을 돕고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신 없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북한으로 망명하려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의사 신모씨 등 3명이 구속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난 2월 스웨덴에 거주하는 지인의 도움으로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려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면 어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부모에게 감사하지 못하면 아무에게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 이민가신 분들이 자녀가 두 가지 말 배우는 것 때문에 고생하니까 한국말을 잘 안 가르치고 영어나 제대로 하라고 해서 지금 부모 자식간에 말도 잘 안 통하는 가정이 많다는 겁니다. 자식하고 깊은 대화를 못하니 자식도 아니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미국 오바마 대령은 어떤 때는 일주일에 공개석상에서 몇 번씩 한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때는 이병박 대통령에게 한국의 교육을 배우려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잘 살게되니까 한국어가 인기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한류 붐이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 남미까지 일고 있습니다.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해야 합니다. 한국말을 해야 한국사람입니다. 은혜를 알아야, 은혜를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에스라는 노예가 되어 타국에서 살았지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에 9:9) 노예가 되었던 것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해주신 것을 찬양합니다. 미래를 봅니다. 과거에 매여 원망만 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실 축복을 바라보세요. 열심히 살다가 하나님을 만날 천국을 생각해 보세요.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은혜가 있으면 봉사합니다.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모 교회 김 권사님은 93세의 고령에도 교회 강단 청소를 사명으로 알고 매주일 예배 1시간 전에 오셔서 기쁨으로 찬송하며 닦고 계셨습니다. 한 번은 너무 힘드신 것 같아 그만 하시라고 하니 “하나님의 사명은 은퇴가 없어요.”하시면서 기쁨으로 봉사했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남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것이 내 몸에 있다면, 우리는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은 병원에서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암 환자로 누워 있으면서도 편지를 써서 ‘예수를 믿으세요. 구원을 얻습니다.’ 하고 창 밖으로 하나씩 던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래도 예수 믿어 구원함을 얻도록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항상 궂은일에 솔선하기로 유명하였다합니다. 남강 선생께서 오산학교를 세웠을 때이다. 선생은 남들이 꺼리는 화장실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화장실이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강이 그쪽으로 가면, “서쪽, 서쪽!”하면서 학생들은 웃으며 따라갔습니다. 추운 겨울날 남강은 도끼로 얼어붙은 똥 덩이를 깨고 있었습니다. 또 후에 선생께서 3.1운동으로 옥중에 있을 때에도 변기를 맡아 청소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선생님이 그렇게 하셔서 되겠습니까?” 그러나 이승훈 선생은 그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알았습니다.
서울에 사무실이 있을 때입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못되었는지 사무실 앞에 차를 세워두면 늘 망가집니다. 백미러를 펴서 발로 차서 달랑 달랑 매달려있기가 일수입니다. 한번은 누가 계단에다가 큼지막한 똥을 싸고 갔습니다. 주인이 그 위층에 사시는데 그분도 교회 집사님 입니다. 그런데 그 똥을 못 치우고 피해 가시더라 구요. 결국 우리 집사람이 치웠습니다.
속담에 “하루 은혜 백 날에 갚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은혜를 입기는 쉬워도 갚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전 6:1)고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봉사의 책임이 더 커짐을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8)고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보기 드문 선한 왕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한 가지 오점을 남겼는데 그것이 대하 32:24-26에 나옵니다.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된고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으로 보이셨으나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위급한 상황에 처한 히스기야를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구해 주셨습니다. 그의 통치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히스기야의 유다는 강성해졌고 이웃 나라로부터 부러움과 경계를 동시에 받는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바벨론까지도 유다에 사자를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선물을 바치고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으로 말미암아 히스기야는 도리어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듭된 은혜를 입고 보니 모든 일들이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잘 되었고, 그러자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고 자부심이 생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무를 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문제가 생겼을 때보다 그 문제가 해결된 후에 더욱 조심을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면서 감사의 고백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한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과 외국의 왕으로부터 많은 보물과 존경을 받았으나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섬기는 데는 인색하였습니다. 인색한 마음은 성도의 신앙을 좀먹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색한 봉사나 헌신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인색한 연보에 대해 말하기를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후 9:7).
참 사람이 간사합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 아니라, 인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산 자의 땅에 있음이여 여호와의 은혜 볼 것을 믿었도다”(시 27:13)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7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고 여호와께 간구하기를”(시 30:7) 라고 합니다.
여러분! 언제 기도하셔야 합니까? 주의 얼굴이 가리우시면 큰일입니다. 내가 보기 싫어지신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회개해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이 피하시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피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부르짖어야 합니다.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희돈 장로님은 3년 정도의 스케줄이 다 짜여있는 분입니다.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러나 매일 새벽에 교회에 가서 3시간 이상 기도하고 출근합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기도하는데 들어와서 “장로님 정말 기도하면 이루어집니까?” 그래서 그분을 바라보면서 한마디만 하셨답니다. “제가 바보처럼 보이십니까?” 그랬더니 그분도 열심히 기도하더랍니다.
은혜를 받고 봉사하지 아니하면 은혜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8-29) 일하지 않는 일꾼의 달란트는 빼앗아 일할 수 있는 사람에 주십니다.
바울은 솔선수범한 사도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무리 보아도 은혜로운 말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 이영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