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다시보는 동방박사 이야기(1)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마 2:2)라고 한다. 이 동방의 박사들을 이해하려면 뭐 별들이 있었느냐 없었느냐, 그것이 사실이냐, 이런 이야기들은 본문의 핵심이 아니라고 본다.
마태가 왜? 유대인이 아닌 멀리 이방(동방)의 박사들을 소개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태는 이 복음서를 유대인에게 보내고자 쓰고 있다. 유대인들이 이 편지를 받아보고 무엇을 느끼겠는가? 생각이 있는 유대인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우리가 선택받았던 민족이 아니냐? 우리가 어떤 민족이었는데 왜? 우리가 예수를 못 찾고 저 이방의 사람들이 예수를 찾는가? 그리고 마태는 도대체 무슨 의도로 유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요나서를 배웠다. 요나서의 메시지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엘리야, 엘리사 다음에 요나 선지자를 보냈을까? 그 회개치 않을 것 같던 이방의 니느웨가 요나가 반나절 외쳤는데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고 그 성읍이 멸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마태의 입장에서 유대인에게 그와 같이 이방인은 예수를 영접하러 오는데 너희 유대인은 무엇이냐? 하는 반문을 마태는 하는 것이다. 바로 동방박사들이 떠난 나라들이 니느웨 가까운 지역이라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서 다시보는 동방박사 이야기(2)

또 한가지는 동방의 박사들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주일학교 설교하듯 이만 배워왔습니다. 솔직히 이 이방의 사람들이 뭐 하려고 예수께 예물을 드리고 그럽니까? 여러분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솔직히 이들은 나라의 관례상, 또 미래의 관계를 위하여 정치적인 목적으로 예수께 예물을 드린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시 동방은 로마에 의해서 계속 침략을 당해가는 중에 있었습니다. 동방의 나라들 입장에서는 왕이 태어난다는 소식은 로마와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별을 연구하고 당시 로마가 주둔하고 있던 예루살렘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나마 가다가 또 인도하던 별을 잊어버렸습니다. 별을 잃어버린 박사들은 왕이 탄생하시니까 당연히 예루살렘 헤롯궁에서 태어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하고 물었기 때문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야 하는데 집중을 안 하니까 잃…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방해꾼이 끼어 듭니다. 헤롯왕도 예수의 나심을 알고자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식구들 말고 그 누구도 유대에서 왕이 나온다는 것은 자기들의 정치적인 위협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를 찾아 헤롯은 죽이기 위해서 찾았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생각하고 영접하는 세력이 아니라 경쟁자로 보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인 제사장이나 서기관 심지어는 바리새인까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잘못하면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라 경쟁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하고 경쟁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세례요한의 고백처럼 우리는 그분의 신발 끈 풀기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비교할 수 없는 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