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에서 만나자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생애(52. 갈릴리에서 만나자) / 막 14:28, 16:7
막 14: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 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 16:7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사람은 누구나 고향이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을 보낸 땅은 그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중국 한 나라의 유방과 초 나라의 항우가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유방이 항우의 10만 군사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유방은 가을 달밤에 자기 군사들로 하여금 퉁소로 구슬픈 초 나라의 가락을 불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초 나라 군사들은 고향의 구슬픈 가락을 듣고 향수병에 걸려 뿔뿔이 흩어져 고향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퉁소 가락으로 유방은 대승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고향이란 인간에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고향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갈릴리입니다. 예수님은 지리적으로 이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에게는 갈릴리가 센터입니다.
갈릴리는 가나안 땅 분배 때 납달리 지파에게 제공된 땅입니다(수 21:32, 대상 6:76). 갈릴리는 동쪽으로 바다와 같은 호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는 두로 왕 히람(Hiram)차지하고 있었는데, 다윗이 궁전을 지을 때와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목재와 석재와 기술자를 제공해서 솔로몬은 사례로 갈릴리 땅 20을 떼어주고 또 다시스에서 선박을 만드는 일에도 많이 협찬하고 해외 통상도 같이 하여 번창했습니다(왕상 9:10, 11, 10:22).
패망하는 갈릴리 땅
그리고 역사가 흐른 후 가나안땅은 유다와 이스라엘로 분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분리된 나라의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악한 왕이 나왔습니다. 열왕기하 15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나마 제일 나았던 왕이 아사랴인데 이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왕이었으나 결정적으로 산당을 없애지 않고 제사드렸습니다(왕하 15:4-5). 그후 스가랴(9절), 살룸, 므나헴(18절), 브가히야(24절), 베가(28절)까지 이어집니다. 이 왕들은 하나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왕들입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은 베가 왕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쳐들어가게 하여 전쟁이 일어납니다(B.C. 739-732). 전쟁의 직접적인 이유는 유다왕이 이스라엘과 시라아 사이에 맺은 동맹 관계를 시기하여 앗시리아의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왕하 16:7). 이것이 외형적인 전쟁의 발단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지속적인 내분과 악한 왕들이 계속해서 통치하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지역에 갈릴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왕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고 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땅이 적군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이 땅을 하나님이 어떻게 분배해 주신 땅입니까? 아브라함 때 약속하고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하게 하고 여호수아를 통해서 점령하고 나누어준 땅 아닙니까? 그런데 그 땅을 다시 원수들의 손에 넘겨준 것입니다. 자신들의 내분의 싸움으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계속해서 악을 행하다 하나님은 이 전쟁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회복되는 갈릴리 땅
이렇게 패망한 땅에 하나님은 한줄기 빛을 내리십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 이사야 9:1절에 나옵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람들의 죄악으로 그 땅을 짓밟게 하셨으나 하나님은 영원히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땅을 영화롭게 해 주셨습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는 벽이 수정처럼 아름다운 왕궁이 있는데 그 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깨진 유리를 모아 붙여 놓은 것임을 알게 됩니다. 원래는 판유리로 사용할 계획이었는데 유리를 운송하던 기술자가 실수하여 유리를 깨뜨렸답니다. 그래서 공사 책임자는 고민하던 중에 그 깨진 유리로 모자이크하여 건물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완성 후에 보니 원래의 설계보다 더 아름다운 오색찬란한 예술품이 되었답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이 죄악으로 깨어진 갈릴리를, 우리들을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1) 갈릴리 나사렛(거룩하다) 사람
갈릴리 나사렛은 천사 가브리엘이 다윗의 자손 요셉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을 계시해 준(눅1:26-38) 곳입니다. 요셉이 마리아와 베들레헴으로 호적 하러 갈 때 바로 이곳을 출발했던 것입니다(눅 2:4). 예수님은 어린 시절을 이 나사렛에서 사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 21:11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빌라도 뜰에서 심문을 받으실 때 군중들은 “무리가 더욱 굳세게 말하되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눅 23:5)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빌라도는 예수님께 묻기를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눅 23:6)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잡히신 밤에 예수님을 심문하는 성전의 바깥 뜰에서 예수님을 엿보다가 그만 계집아이에게 눈에 띠었습니다. 그가 계속해서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마 27:55, 눅 22:59)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역시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은 갈릴리 사람들이었습니다.
2)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심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바로 이 갈릴리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마 3:13, 막 1:9). 그리고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도 갈릴리 가나에서 있었습니다(요 2:1, 11). 또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막 1:16).
3)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하심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시기 시작하신 곳도 갈릴리입니다.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이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퍼졌습니다(막 1:28). 이 지역에서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마 4:25, 막 3:7). 예수님의 12제자뿐만 아니라 70인 제자와 많은 무리들 역시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미래의 일을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마 17:22-23)고 말씀하셨습니다.
4) 갈릴리에서 만나자
예수님에게 예루살렘은 좋지 않은 기억들뿐입니다. 바로 그곳에서 자신의 사역을 방해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예수님께 붙여서 늘 예수님의 행동을 감시하고 예루살렘에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심문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가고 싶으신 곳이 있다면 그곳은 세례를 받으시고 제자를 부르시고, 복음을 전하시던 갈릴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활 후에 제자들보다 앞서 갈릴리로 가시겠다고 하셨습니다(마 26:32). 이 말씀은 여자들이 예수님 무덤에 갔을 때 천사가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마 28:7)이라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 일을 고하려고 달려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마 28:10)고 했습니다.
5) 부활의 증인들
갈릴리 사람들은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여자들이 좇아와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무덤에도 그 시체를 보려고 갔다가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눅 23:55).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을 바라본 것도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31절에 보면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설교할 때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그의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의 증인들입니다.
갈릴리는 이사야의 예언대로(사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요 7:41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고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요 7:52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의 말은 하찮은 지역에서 메시야가 나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이 큰 도시에서 예루살렘 같은 곳에서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은 달랐습니다. 세상에서 힘있는 자의 품에서 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같은 수도에서 자라신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변방인 북쪽 갈릴리 지방에서 자라시고 사역을 시작하셨으며 그곳에서 부활 후에 제자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셀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했던 존경받는 지성인이 폐수종으로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고통 속에서 소리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는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예리하게 파헤쳤던 20세기 최고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였습니다. 그는 입원한지 한 달만에 육신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죽어야 했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각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그 때 한 독자가 신문사에 이런 기사를 투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마도 비 그리스도인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동물이나 어류 가운데도 귀소본능(歸巢本能)을 가진 것들이 있습니다. 코끼리는 죽을 때를 알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시화되면서 정작 고향에 가면 아무 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살던 터는 만남의 광장으로 변했습니다.
마음의 고향은 어머니입니다. 신앙인의 고향은 교회입니다. 갈릴리는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영적 고향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을 갈릴리에서 만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갈릴리에서 만나려면 특권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소박한 시골사람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갈릴리로 가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