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46.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본문 : 마가복음 9:14-29

“21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 기도하시고 변화된 모습이 보였을 때, 산 아래에서는 제자들이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남아있는 제자들 앞에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이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려고 제자들은 그 동안 사용했던 여러 방법을 사용해 가며 고쳐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똑 같았습니다. 고쳐지지 않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는 똑똑한 서기관들이 질문 공세를 퍼붓습니다. 난감해 하고 있을 그 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예수님께 달려갔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려고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 남아있던 백성들이 한 행동이 출애굽기 32장 나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아론이 주동자가 되어서 자신들을 위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듭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의 이와 같은 행동을 보고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십계명을 던져 깨뜨렸습니다. 모세의 인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한 행동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래도 구약의 이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병은 고치지 못했지만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포기한 사람입니다. 지금 공부를 못하지만 공부를 하려고 하는 학생은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비록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아이의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님이 개입하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처음부터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고 있으면 주님이 도와줄 기회가 생기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되십시오.
본문 19절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22절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그랬습니다.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믿음은 모든 것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열기만 하면 되지 않습니까? 하늘 문을 열면 그곳에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면 다 되는 것입니다. 그 열쇠가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고백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것을 알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고 너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재자들의 믿음이 없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후에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막 16:14) 여기서는 믿음이 없는 것과 완악한 것이 함께 나타납니다. 바꾸어 말하면 완악한 자는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유한 마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온유함은 믿음을 얻는 좋은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도마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의심합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예수님을 확인했습니다(요 20:27). 믿음이 없다는 것, 마음이 완악한 증거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믿음 안에 거하십시오.
영어에 인과 아웃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인은 모든 게임에서 사는 것이고 아웃은 죽은 것입니다. 원문에 영어에서 말하는 인과 같은 단어가 있습니다. 엔(ejn)이라는 전치사 단어입니다. 이 뜻은 “…안에.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나오는 모든 곳은 좋은 성구가 있습니다. 믿음과 연결된 단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몇 개의 성구만 찾아보겠습니다.
롬 15: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딤전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모든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엔(ejn), 안에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만 생명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서만 소망도 사랑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하십시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간곡히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22절), 이 아버지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소리를 지르며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외쳤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믿음을 달라고 간구 할 생각은 안하고 시험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아버지의 태도는 적극적이었습니다. “소리질러”(kravxa”:크라크사스)는 마치 반항의 고함처럼 크고도 계속적으로 소리를 지른 것을 말합니다. 후기의 사본 중에는 ‘눈물로’라는 말이 첨가된 것이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간절했습니다. 아마 이 아이의 문제로 가정이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이 아버지의 소원이라면 아들이 이 귀신들림에서 벗어나는 것일 겁니다.
이 때 적극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입니까? 아니면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입니까? 믿음을 간구한 것도 귀신들인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이 아버지가 제일 이 아이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서 제일 간절한 사람입니다. 부모님 되시는 분들은 특히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자녀를 위해서 부르짖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아버지와 같이 주님께 간구하세요.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기도 외에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려다 땀만 흘린 제자들은 조용할 때 예수님께 물어 보았습니다.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님의 대답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28절)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준 일이 있습니다. 지금 이 아이가 처음이 아닙니다. 막 3:14-15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여행으로 파송하시면서 이미 병 고칠 수 있는 은사를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잘 되던 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당황한 것입니다. 은사는 지속적으로 기도함으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한 비결에 대해서 말할 때 새벽기도와 무릎꿇고 기도한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기도가 식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할 일 중에 제일 귀한 것 중의 하나가 기도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 약한 사람, 멸시받는 사람 등, ‘부정적 자질의 사람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세가 부름을 받았을 때는 80세의 늙은 목자였습니다. 다윗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양치는 어린 소년이었고, 요셉은 노예였으며, 다니엘은 포로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중요한 인물들을 부르실 때는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주앙교회 결코 적은 수가 아닙니다. 그리고 결코 못할 일도 없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성장시켜주는 기도입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갑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에 화재의 불길로부터 구조되었던 경험을 회상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급격히 세속화되어 가는 영국 교회에 ‘개혁’이라는 소명을 위해 주께서 자기를 살리신 것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산본지역 뿐만이 아니라 선교지의 한 나라들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가슴이 불타오르는 믿음과 열정적인 기도가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요일 5: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무디(D.L. Moody)는 “믿음은 최대의 것을 얻게 하며, 사랑은 최대의 역사를 이루게 하고, 겸손은 가장 많은 것을 보존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웁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공산주의는 사람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늘 서로 감시하고 고자질합니다. 이런 사회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세요. 믿음을 가지세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잘 살 수 있습니다. 결코 우리의 시간은 헛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은 가치가 있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나 자신 뿐만이 아니라 교회가 가정이 세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다시 기도할 것은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겸손히 주님께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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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47. 예수님을 따라) / 본문 : 마태복음 4:19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마 4:19, 막 1:17)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을 따라가면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도 안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도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합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CIS선교사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러시아 노보시비리스크로 떠났습니다. 비행기가 직항이 없기 때문에 다른 도시를 경유해서 가야합니다.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하루를 먼저 블라디보스톡으로가서 기다렸다가 가야하는데 비행기 표를 구할 때 비행기 회사에서 다 알아서 먹여주고 호텔 잡아 준다는 겁니다. 미심쩍어서 두 번이나 확인했는데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만 믿고 가는데 느낌이 이상한 것을 인천 공항에서 집 붙이고 그 쪽 공항사정을 알 수 없어 질문을 했습니다. 짐을 찾을 때, 그리고 어떻게 갈아타는지 등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비행기 타고 승무원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비행기를 탔습니다. 걱정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있는데 어떤 분이 다가오시더니 “컴퓨터 선교회 이영제 목사님이시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저는 노보시비리스크 김선종 선교사입니다.” 하시는 겁니다. 순간 모든 걱정이 다 달아나 버렸습니다. 거기서 선교활동 하시다 들어오셨다 다시 가시는 이분만 따라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서 오신 예수님만 따라가면 우리는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1)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막 8:34, 눅 9:23) 오른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왼손이 모르게 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 1:30절에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롬 4:2절에서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같은 본문이 누가복음에는 “…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 “날마다”가 더 있습니다. 십자가는 지고 싶을 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과 관계없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고백했습니다.

3)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요 8:15) 영적인 분별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육체를 따라” 즉 외모로 판단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자기 제자들을 보냈습니다.“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마 22:16)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것을 바리새인도 인정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꾸만 외모로서 사람을 판단하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려고 들면 끊임없이 싸움이 일어납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이 하도 싸우니까 이런 말이 다 있습니다. 술집에서 사람들이 술 먹다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싸우고 있는데 주인이 하는 말이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그랬다는 겁니다. 저는 치아가 좋지 않아 지난번 기둥을 세우고 해 넣을 때 이런 생각이 나는 겁니다.

4)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요 10:4)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만일 예수님의 음성으로 알고 갔는데 만일 그것이 사람의 음성이었다면 모든 것이 잘못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9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이번에 갔던 선교대회 장소는 노보시비리스크인데 그 시에서 한 1시간 정도 들어가면 ‘시비락’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 선교대회를 했습니다. 말이 러시아를 갔다 왔지 그곳에 갇혀서 진짜 러시아를 다녀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아주 외딴 곳으로 주변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숲 속에는 벼룩 같은 벌래(시크락?)가 있는데 사람 몸에 붙으면 거머리처럼 살을 파고 들어간답니다. 실제로 이 벌레에 물린 선교사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멋있다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도 한번 못 걸어 다녔습니다.

제가 선교대회에 참석하면 네 가지 정도의 유익이 있습니다.
① 선교사님들을 만나 교재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고생하면서 갔다해도 저는 별 것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빼째르부르그에서 만났던 분 그리고 이 노보시비리스크에 제가 두 번째 가는데 10년만에 만난 분, 그리고 기태 형제 먼저 신앙 생활하던 교회에서 보낸 선교사님이 이번 대회 총무를 맡아 일하고 있었고 이분도 우리 사무실을 다녀간 분입니다. 그리고 저희 집사람이 전돌이 성경여행을 주었는데 지금 얼마나 아이들이 열심히 보는지 고맙다고 전달해 달라는 분, 몽골에서, 우즈벡에서, 하바롭스크에서 오신 분들하고 교재를 나누고 이분들을 저를 그곳에 꼭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교재가 있었습니다.
② 영적 충전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를 인도만 하지 예배 드리는 자로 있기가 쉽지 않은데 예배를 드리며 함께 충전하며 지낸다는 것입니다.
③ 세계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④ 또 하나는 유명 강사님들을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것입니다. 선교사 대회가 보통 대회입니까? 아무나 안 부릅니다. 고신의대 양리학 교수님이셨다가 한 달 전에 은퇴하신 강 교수님이 계십니다. 장로님이신 데 같은 방을 사용하면서 정말 많은 교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과 대화 나눌 때 저를 “이 어르신이”그렇게 부르시는 겁니다. 장로님의 고백가운데 “지금도 이런 목사님이 계시네” 저에게 그러시는 겁니다. 제가 다른 이야기 안 했습니다. 예수님의 방법대로 예수님만 보고 따라가려고 설교도, 성경도 그렇게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이유는 길 잃어버리지 않고 예수님께 오라고 인도하시는 영을 보내주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하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사람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CIS선교사 대회에 오신 분 중에 미국 국제제자훈련원 사역을 하는 김홍장 장로님이 계십니다. 여기서 하는 사역이 ‘릭 워렌’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을 가지고 성경공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 책이 인기가 많다는 것입니다. 사실 교회처럼 목적이 분명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책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것을 가지고 교육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유행 따라가 가는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혹 남들은 무슨 …훈련을 하는데 우리 주앙교회는 아무 것도 안 한다고 우리의 신앙이, 우리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따라가세요. 그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의 목표입니다.
베드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베드로와 같이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는 선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질그릇일지라도 그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사람을 얻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우리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러시아 동남쪽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가까운 곳에 ‘날칙’이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 도시에 처음으로 선교사로 간 사람은 고려인이었습니다. 이 고려인 전도사는 한국선교사님이 훈련시켜서 보냈는데 파송한 선교사님에게 6개월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고려인 선교사님에게 한 달에 2백불 정도를 지원해 드리는데 이 돈을 노리고 이 선교사님을 죽였습니다. 선교사님이 4일이 넘어서 도착해서 보니까 시체가 그냥 천으로 덮여져있는데, 확인하기 위해서 천을 열었을 때는 시체에 구데기가 득실거렸습니다. 그런데 이 고려인 선교사의 순교의 피가 흐르는 ‘날칙’에 실버 선교사님 한 분이 1년 전부터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분은 4박 5일을 걸려서 기차를 타고 선교대회에 도착하셨습니다. 여성 선교사님 한 분은 100만 명이 있는 도시에서 혼자 사역하고 계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계속 선교사님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나갈 수 없지만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도 죽음을 무릎 쓰고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