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어린이로 키우려면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예수님의 말씀(95. 행복한 어린이로 키우려면) / 본문 : 막 10:22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언제든, 무엇이든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가 저술한 『에밀』에 등장하는 한 구절입니다.

갖고 싶은 것은 ‘언제든, 무엇이든’ 갖게 하는 것이 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일까? 언뜻 모순처럼 들리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루소가 말하는 것에 공감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쉽게 손에 넣으면 인내나 노력이라는 소중한 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또한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무엇을 가져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됩니다. 사람은 무엇을 가졌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살아가느냐에 행복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따라간 것이 무엇을 얻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상의 왕이 되실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의정, 좌의정자리를 탐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것은 물질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건물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쳤습니다. 제자들이 고난을 당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무엇을 줄 것인가를 다시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자녀에게 물질을 남겨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모만큼 자녀를 잘 못 키우는 부모도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생각해 보세요. 간단하지 않습니까? 재물이 많으니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기도 어렵고 슬픈 기색을 하고 근심을 하며 갔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물질은 하나님을 따라가게 하는데 제일 방해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물질을 자녀에게 남기려고 합니까? 하나님을 따라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남겨서는 안됩니다.

부족함이 없이 자란 아이는 진정한 행복을 모른다.
통계청이 발표한(2007.5.2)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5-19세 청소년은 하루 평균 60.1건의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수업 중 문자를 보내는 학생도 46%(정보문화진흥원 조사 결과)에 달할 만큼 중·고교생의 휴대폰 중독 현상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 떼를 쓰지 않는 아이가 착한 아이는 아닙니다.
아이가 백화점이나 시장에 가서 이것이 갖고 싶다, 저것이 갖고싶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은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꾸짖습니다. 아이들이 불만스런 얼굴을 하면 엄마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야지. 그렇게 퉁퉁 부어있으면 다시는 백화점에 안 데려올 거야.” 이런 유형은 가정교육이 엄격한 엄마입니다.
좀 무른 엄마는 “내참. 그럼 작은 장난감으로 골라야 돼.”하고 사줍니다.
누가 더 현명한 엄마일까요?
어떤 엄마가 아이의 건전한 욕망을 길러줄 수 있을까요?
대답은 후자입니다. 후자 엄마의 경우 최선은 아니었지만 전자의 엄마보다는 후자 쪽이 더 현명한 것입니다. 전자의 엄마는 아이의 요구를 차단했을 뿐 아니라, 아이가 물건을 갖고싶어하는 사실마저 차단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욕망은 조금도 나쁜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욕망을 쉽게 충족시켜주거나 앞서서 채워주는 것이 나쁜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갖고 싶다고 느낄 때 아이는 참을성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 주실 때 그냥 고쳐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최소한 예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믿고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께 나왔을 때 고침을 받았습니다.
. 자녀에게 힘쓰는 일을 많이 시켜라. 엄살을 많이 부려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엄마가 힘들 거야!”라는 생각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엄마에게 자녀가 꼭 필요한 존재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믿고 키워라
. 믿음이 없이 자꾸만 아이를 의심하면 아이는 어떻게 해도 부모님은 믿어주지 않는다는 불신에 빠집니다. 부모님이 먼저 믿어 주어여 합니다.
. 아이의 물건은 아이가 처분하게 하라.
. 용돈도 아이와 상의해서 정하라.
. 물질보다 값진 상은 ‘참 잘했어요.’
. “어른 다 됐네”라는 말에 아이는 성장한다.
임종을 앞둔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내일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어린이들에게 좀 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기울여라”
어린이날을 만든 소파 방정환 선생은 아이를 어린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는 ‘어리신 분’이라는 존경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어린이는 희망의 동의어입니다.

참는 것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 ‘먹다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본인의 상징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 일본인들은 먹다가 거의 남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고, 먹는 것 자체가 양이 작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서양인에 비해 많이 남긴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말이 ‘먹다 남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본인의 상징이다.’라는 말입니다.

환경부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2005년) 우리나라의 1일 발생되는 음식물류 폐기물의 양은
약 11,397톤(8톤 트럭 1,400여대 분) 1,880+344=2,324
음식물 쓰레기에 의한 경제적 손실가치는
· 국민 전체 1일 약 404억원
· 국민 전체 1년 간 15조원
· 1인당 연간 314,700원
· 1가구당(3.6인 기준) 연간 1,133,000원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에서 복음을 전할 때 남자 어른만 계수 한 숫자가 5,000명이 넘었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자들을 포함하면 최소 15,000명은 됩니다. 오병이어로 이 사람들을 다 먹이시고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나누어 주다보니 남은 것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으로 먹고 남은 음식을 잘 거두었습니다.

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시골의 작고 오래된 교회에 젊은 전도사님이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첫 목회를 시작하는 전도사님의 감회는 남달랐습니다.
첫 설교로 오병이어의 기적의 내용으로 설교하게 되었는데 너무 긴장한 탓에 그만 “예수님께서 떡 5,000개와 물고기2,000마리로 다섯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나 남기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하여 큰 실수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말씀을 듣고있던 그 교회 장로님이 하는 말이 “그 정도라면 나도 하겠다”라며 전도사님에게 들릴 정도로 혼잣말로 말했습니다. 얼굴이 홍당무같이 달아오른 전도사님은 그 다음주에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실수한 것을 인정하고 “제가 실수하여 잘못 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 가득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장로님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이래도 하실 수 있겠습니까?”그러자 장로님 왈 “지난주에 먹다 남은 거 있잖아!”

아이의 행복에 필요한 것
앞의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엄마가 “돈 없어!”라고 딱 짤랐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이가 생각하기를 “돈만 있으면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또 엄마가 돈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 엄마가 없다고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에게 속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는 그 돈을 손에 넣으려고만 할 것입니다. 엄마가 돈을 잘 관리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일본 황족만 다니는 황태자 학교가 있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야구가 일반학교 학생들과 열리는데 말이 야구지 아이들끼리 노는 것인데, 일반학교 아이들은 야구 유니폼을 다 입고 왔는데 정작 황태자만이 유니폼이 없었다고 합니다. 황태자가 “저도 입고 싶어요.”하니까 황후인 미치코 왕비가 “크리스마스까지 기다리렴.” 그리고 3개월이 지나서 유니폼을 갖도록 했다는 겁니다.
제가 전에 협동목사로 있던 일산에 벧엘교회가 있습니다. 특별 40일 새벽예배가 있었는데 집사님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물어 보았더니 새벽기도 40일 다니면 컴퓨터 새것으로 사주기로 했답니다. 아이에게 아무 노력과 기다림 없이 갖게 하는 것은 아이늘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늘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우리 어른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갖은 방법을 적용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을 예수님으로부터, 십자가로부터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값없이…”란 말에 너무 소중함을 모르고 받으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고 말씀하셨다.
. 모든 것을 가진 아이는 양보를 배우지 못합니다.
. 부족함이 없이 자란 아이는 친구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 학용품을 소중히 다루지 않는 아이는 공부도 잘 할 수 없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아빠는 낚싯대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요리를 좋아하는 엄마는 주방기구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일수록 학용품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것입니다.
. 가족이 함께 무언가에 열중해 보십시오.

아버지 집에서 키우라
목사만 목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목회다’라고 생각합니다.
내 아이에게 제일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모님입니다.

시 한편 소개 드립니다.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먼저 아이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집은 나중에 세우리라.
아이와 함께 손가락 그림을 더 많이 그리고, 손가락으로 명령하는 일은 덜 하리라.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덜 노력하고, 아이와 하나가 되려고 더 많이 노력하리라.
시계에서 눈을 떼고 눈으로 아이를 더 많이 바라보리라.
만일 내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더 많이 아는 데 관심을 갖지 않고, 더 많이 관심 갖는 법을 배우리라.
자전거도 더 많이 타고 연도 더 많이 날리리라.
들판을 더 많이 뛰어다니고 별들을 더 오래 바라보리라. 더 많이 껴안고 더 적게 다투리라.
도토리 속의 떡갈나무를 더 자주 보리라. 덜 단호하고 더 많이 긍정하리라.
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랑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보이리라.

- 다이아나 루먼스 -

재물을 남기는 부모가 아니라 믿음을 남기는 부모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