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7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하지 못하게 하더냐 8 그 권면은 너희를 부르신 이에게서 난 것이 아니니라 9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11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걸림돌이 제거되었으리니 12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은 스스로 베어 버리기를 원하노라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갈 5:1-15)

오늘은 광복절입니다. 일본은 어설픈 말로 사과하고 있습니다.
간 나오토 일본총리가 10일 한일강제병합 100년 사과담화 발표문에 보면 “1910년 강제병합이 한국민의 뜻에 반하여 이뤄졌다. 일본 궁내청이 보관 중인 조선왕실의궤 등 도서를 인도하겠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제병합조약의 불법성’과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동원’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과로는 우리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기는 부족합니다. 아직도 일본은 솔직히 교만합니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도 포기 안 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 사과문을 이끌어 낸 것은 한국이 이제 예전과는 사뭇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많은 부분에서 일본에 뒤 처지지만 그래도 한 두 분야에서는 일본을 앞서기 시작한 분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반도체는 세계시장의 50%이상을 점유하고 있습니다. 모니터, TV분야도 세계 최고입니다. 조선산업은 이미 오래 전에 일본을 제쳤습니다. 태평양에 떠다니는 절반이 한국에서 만든 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축구는 다른 나라에는 다 져도 일본에 지는 것은 용납 못합니다. FIFA순위에서는 일본에 밀리지만 우리는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일본과 경기에서이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입니다. 이제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소중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런 질문이 인터넷 한 포털 사이트 지식사전에 올라왔습니다.
김일성이 어떻게 북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던 거죠?
그리고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언제부터 남북사이에 마찰이 빚어진 거죠?
광복해서 다 신나 좋았을 텐데요…

우리가 기뻐하는 그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민족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아마 앞에서 질문한 한 학생도 질문의 내용에 보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민족이 하나되어 처음부터 광복의 기쁨을 간직하고 살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조금만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광복에 대한 기쁨에 들떠 있을 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소련과 미국이 이미 38선 긋고 군정 통치하는 것까지 합의합니다.
일본은 여운형에게 과도정부를 세워서 정권이양 받으라고 하지만, 차일피일 미루면서 소련과 미국에 어필할만한 정치세력으로 키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미군은 기존에 있던 조직마저 무색케 만들고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2차 대전 말, 1945년 8월 9일에 소련은 만주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소련과 미국이 잠정적으로 한반도를 반으로 나누기로 결정합니다.
당시 미군은 겨우 오키나와 점령한 상태였고 한반도까지 병력 보낼 여유가 안 됐습니다. 여기에 한반도 전부 점령하기엔 소련과 중국이라는 공산권과 국경선 맞대고 있어야 하니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Colonel Dean Rusk and Colonel Charles H. Bonesteel III 이 두 미군 장교는 한반도 남부에 항구 두개 정도만 가져가면 족하다고 보고 38선을 경계로 긋고 이것도 단 30분만에 결정했답니다. 소련 역시 동유럽에서의 소련 점령지역에 대한 합의를 위한 카드로 미국의 한반도 남부 점령을 용인하게 됩니다.
이후로 소련은 소련 점령지역을 공산화하는 데 적극적입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별 관심 없다가 소련이 급속히 공산권을 확대하자 부랴부랴 막으려고 뛰어듭니다.
김일성은 1937년경에 중국 공산당 계열의 게릴라부대를 지휘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당시 이런 부대에는 조선족 출신들만을 모아서 부대를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에 일본군에 추격을 받다가 소련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때부터 소련군 장교가 되는 것으로 나옵니다.
한편 1945년 일본 항복 이후,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은 북한을 대리 통치할 후보를 찾게 되는데 Lavrenty Beria가 김일성을 추천하게 됩니다. 이유는 원조 공산주의자하고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라서 통제하기 쉬울 거라는 이유였습니다. 그가 처음 북한에 도착했을 때는 소련군의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저 소련군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고 또 소련군은 그를 지도자를 내세우기 위해서 그를 제외한 다른 지도자 후보군들을 모두 제거합니다.

이 모두가 우리나라가 전적으로 힘이 약해서 강대국들의 편의에 따라 놀아난 것입니다. 그 이전에도 이 나라에는 많은 기회가 있었습니다. 조선왕조는 쇄국정책을 사용해 외국과의 문호를 막았습니다. 그 결과 세계의 흐름을 놓쳤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도약해야 할 그 시기에 싸움만 일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무너진 것입니다. 끝까지 싸우면 어떻게 됩니까? 다 망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망합니다.
본문 마지막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기 위해서 힘쓸 때입니다. 길을 찾아야 됩니다. 화합할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되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누군가 욕을 먹어도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당이라는 곳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서로 대변인을 내 새워 발표를 합니다. 어떤 때는 유치해서 듣기도 민망합니다. 책임은 다 다른 당에게 있습니다. 자신들은 거룩합니다. 아무 문제도 잘못도 없습니다. 이런 태도로는 화합이 안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사회가 바로 되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힘없는 사람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인도 카스트 못지 않은 신분계급이 있었습니다.
조선은 양반이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양반들은 상놈을 억눌렀고 상놈은 그 지배 아래서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백정은 상놈의 대명사였습니다. 백정은 기와집에서 살 수 없었고 비단옷이나 갖신도 신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양반이 지나갈 때에는 길을 비켜서야 했으며 항상 허리를 구부리고 뛰어가듯 껑충거리며 다녀야 했습니다. 만일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중형에 처해졌습니다.
평양에 신학교를 세운 마펫 선교사가 상놈 출신을 받아들여 교육을 시켰는데 그 중에 백정 박씨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박씨는 불행히도 장티푸스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고 마펫 선교사는 왕의 시의였던 애비슨을 데리고 와서 치료해주었습니다. 백정으로서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박씨의 온 가족이 개종을 하였습니다.
박씨는 1895년에 세례를 받게 되었는데 그가 백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백정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하면서 반 이상이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펫 선교사는 “예수의 사랑 앞에는 사람의 차별이 없다”고 양반들을 설득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양반들은 “그러면 교회에서 양반과 백정의 자리를 구분하여 양반들에게 앞자리를 달라”고 타협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마펫 선교사는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1895년 4월 마펫은 한학자 최씨로 하여금 박씨를 도와서 정부에 백정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할 것을 탄원하는 청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정부는 그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평민들과 같이 초립과 망건을 착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해 3월에는 인구조사에 백정이 빠져 있자 이것을 시정하여 백정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게 해달라고 청원하여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백정 박씨의 개종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들 박동열은 1907년에 최초로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한 학생이 되었습니다. 박씨 자신도 은행업을 시작하여 사업가와 장로가 되었습니다. 박씨는 백정조합 회장으로 선출되어 백정들에게 해방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일을 한 마펫 선교사는 현재 총신대와 장신대의 뿌리인 평양신학교를 세운 초대 교장이었습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기 위해서는
첫째, 4절입니다. 율법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이 무엇입니까? 행위입니다. 자기가 다 지켰다는 자만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빠집니다. 주님이 없습니다. 은혜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입니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율법주의 인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고 당이 하고 수령님이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습니다. 농부가 자기 잘나서 풍년이 옵니까? 자신도 최선을 다했지만 하나님이 도우셔서 풍년이 왔다고 해야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삷니다.

둘째, 5절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하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내가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주님 안에서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주실 소망을 기다립니다.

셋째, 6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여러분! 여기서 잘 알아야 합니다. 할례는 역사 안 합니다. 죽은 것입니다. 사람의 행위가 무슨 역사를 합니까?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기다린 소망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에게는 역사합니다. 이 역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입니다.

넷째, 9-10절입니다. 죄를 버려야 합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10 나는 너희가 아무 다른 마음을 품지 아니할 줄을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러나 너희를 요동하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심판을 받으리라” 다른 마음입니다. 죄의 마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닙니다. 누룩은 퍼뜨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죄도 삽시간에 퍼져나갑니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일이 간혹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전보다 더 잘 퍼집니다. 잘못된 이단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잘하는 말이 11절에 나옵니다.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박해를 받으리요” 십자가를 전하니까 백해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 맡습니다. 지금도 율법이나 전하고, 사탄이 좋아하는 제사도 지내고. 아무하고나 손잡으면 박해받을 일이 없지요. 그러나 십자가를 전하니까 박해합니다. 사탄이 하는 겁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전하는 게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사탄이 방해하는 겁니다.

해방 후가 중요합니다.
처음에 억압되어있던 개인이나 민족은 해방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못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해방 이후입니다. 해방 전에는 그 사람들 원망만 하면 됩니다. 모든 문제를 일본군 탓만 하면 끝납니다. 그러나 해방 후에는 다릅니다. 남의 종으로만 있던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미숙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 또한 함께 져야 한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주인 노릇도 해본 사람이 한다’는 말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아직 미숙한 것이 많지만 영국과 미국이 300년 만에 이룬 민주주의를 단 50년 만에 이룩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13절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는 말씀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해방에 대해서 “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20 이는 갇힌 자의 탄식을 들으시며 죽이기로 정한 자를 해방하사 21 여호와의 이름을 시온에서, 그 영예를 예루살렘에서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시 102:19-21) 고 말했습니다. 우리 민족도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해방되었습니다.
당시 외국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일제의 핍박 때문에 당시 5,000여 곳의 교회 중에서 1,200여 교회가 문을 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투옥이 되었고, 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약 70만을 헤아리던 개신교인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고 말았습니다. 일제는 오늘 바로 우리가 해방하던 날을 1945년 8월 18일을 기하여 한국 전역에 산재하는 기독 신자들을 진멸 할 계획을 세워 놓고 은밀히 진행 중이었음이 해방 이후 저들의 비밀문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민족에게 여호와의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이 민족에게 해방을 주셨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칩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은혜만 받아서는 안됩니다. 은혜 다음에 책임을 배워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책임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탄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자기만 빠져나가면 그만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2) 남을 왜 우리가 욕하게 됩니까? 우습게 알기 때문입니다. 남을 왜 지배하려고 합니까? 우습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욕하는 것이요 사탄이 하는 겁니다. 남을 지배하는 것 사탄이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섬깁니다. 섬김의 종이 먼저 됩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우리가 자유하면서도, 해방의 기쁨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번영하는 길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에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책임을 지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서로 잘못을 떠넘기기만 해 가지고는 안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는 이 민족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 12:2-3) 하신 아브라함에게 내렸던 축복이 오늘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이 민족에게 내릴 줄로 믿습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