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배필

이영제 목사 설교 MP3듣기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 2:18)

오늘 설교제목은 “돕는 배필”입니다. 제 집사람이 없으면 좀더 설교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오늘은 교회에 나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이유로 오늘 제가 설교를 조금 못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남편으로 얼마나 잘 살았나 생각해 보면, 아마 점수로 메긴다면 최하위권을 맴돌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거의 돈을 벌어다 주지 못했습니다. 암 병으로 고생하는 시어머니 10년을 넘게 돌보아 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곰살맞은 구석이 있어서 따뜻하게 대해주거나 밥하고 설거지 하나 제대로 해 주지 못했습니다. 또한 뭐 그렇게 성격이 남보다 좋은 것도 아닙니다. 고집은 있어서 우기기도 잘합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다행인 것은 이런 남편을 두고도 저만큼 잘 견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기적입니다. 제가 오늘 서론을 이 정도는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늘 설교하고 집에 가서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릅니다. 기도해 주세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만을 가지고 설교한다고 생각해 보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잘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 믿었다는 것 위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윗도 바울도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 티끌만도 못하다고 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한낮 잠시 지나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천사보다 나은 하나님의 자녀요 영광을 돌리며 받는 거룩한 존재가 됩니다. 이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철학서 회남자에는 ‘경계하라’는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수영 실력을 자신하는 사람이 오히려 물에 빠지기 쉽다’는 말입니다. 수영에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물가에서 조심하는 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증권시장에서 실패하는 이유도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지나치게 믿어 의심치 않는 자만심에 빠져, 결과적으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전설적인 주식시장의 드림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과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로 구성되었습니다. 미국은 이 팀을 ‘꿈의 운용팀’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 회사는 바로 미국의 초대형 헤지펀드 회사인 롱텀캐피탈 매니저먼트입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자기 자신을 과신한 나머지 망했습니다.
그래서 투자자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증권시장에서 회자되는 것입니다. 주식시장에서 스스로의 능력을 과시한 나머지 고집을 피우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부부사이에 어떤 부류의 부부가 제일 문제가 있느냐, 그것은 자신이 지나치게 남편 또는 아내의 역할을 잘하고 있다는 과신입니다. 그래서 금술이 좋은 부부는 완벽한 부부가 아니라 뭐가 좀 모자라는 그런 부부랍니다. 우리 부부처럼이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면서 가슴을 치며 “하나님 가까이에 가기도 송구합니다.” 하는 사람은 큰 문제가 없습니다. 율법도 지키고 다 했다는 사람이 문제가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오늘 우리는 “돕는 배필”의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맡겨주신 소명은 다하되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해답을 찾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머리의 책임 아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면 선악과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선악과를 하와도 먹고 아담도 먹었는데 하나님은 먼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고 찾으십니다. 먹기는 여자가 먼저 먹었고, 꾀임에 빠진 것도 여자가 먼저 빠졌는데 하나님은 그 책임을 남자인 아담에게 먼저 묻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는 그냥 머리가 아닙니다. 군림하라는 머리가 아닙니다. 잘 인도하라는 머리입니다.
성경을 잘 보세요. 창 2:16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입니다. 그런데 하와는 다음 18절에 지음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는 명령을 하와가 들었습니까? 못 들었습니까? 예! 하와는 지음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히 듣지 못했습니다. 아담만 들었습니다. 그럼 아담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17절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을 하와에게 잘 전해야 하는 사명이 아담에게 있는 겁니다. 하와가 나를 잘 도와주게 하려면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하와에게 잘 전해야 합니다. 머리가 역할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하고 머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군림하는 머리, 리더가 아닌 섬기는 리더, 바르게 인도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리더가, 머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머리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인간이 왜 길을 왜 모릅니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길이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가 길입니다. 예수가 우리의 꿈을 이루게 하실 분입니다. ‘어디로 걸어가는 걸까?’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생명의 길로, 예수께서 가르쳐준 길로 걸어가면 됩니다. 전해 주어야 합니다. 길이 어디 있는지 알려 주어야 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아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천사보다 더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는 것도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지만 남편이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전 11:11) 고 했습니다. 사실 이 차원은 바닥을 쳤을 때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배필이 왜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돕는”입니다. 부부의 임무는 도와주는 것입니다. 왜 도와 주어야 합니까? 부족하니까 돕는 것입니다.

아담의 첫 배필 하와는 실패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다른 배필이 필요합니다. 하와는 안됩니다. 죄를 몰고 왔습니다. 다시 진정으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그런 분이 필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2-3)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배우자로 중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도 처음 하와가 뱀(사탄)의 간계에 미혹 당한 것처럼 미혹 당하지 말 것을 부탁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은 보내 주셨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엡 5:23)고 했습니다. 아담의 죄가 무엇입니까? 자기가 머리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죄도 모두가 알고 보면 내가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나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본문의 ‘도움(rz<[e:에제르)’은 ‘rz”[:아자르’는 “방어하다, 둘러싸다”의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하와가 무엇으로 아담을 돕습니까? 밥 해 먹이는 것이요? 물론 그것도 한가지 일이겠지요. 그러나 정말 중요한 사실은 사탄에게서 아담을 방어해야 합니다. 둘러싸서 지켜야 합니다. 하와의 역할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을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방어하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을 보호해 주세요. 방어해 주세요. 사탄에게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방어해야 합니다. 지켜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에서 방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시 54:4) 하나님이 나를 돕습니다. 예수님도 돕습니다. 성령님도 돕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

우리 대한민국 사람은 이런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작년 2009년 9월에 중국인 기독교인 리 밍쓘이 탈북자들의 남한 행을 도왔다는 이유로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를 도와서 함께 활동한 여성 기독교인인 장 용후는 7년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 두 사람은 북중 국경지대를 탈출한 북한 인들을 비교적 안전지대인 몽골로 옮겨주는 활동을 벌이면서 이들에게 음식물과 숙박, 운송 수단 등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몽골은 탈북자 문제에 관한한 중립적 입장을 표방하고 있고, 탈북자들 상당수를 난민으로 인정해 주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들 두 사람은 지난 4월 29일, 탈북자들을 몽골 국경으로 넘기는 작업을 하던 도중 국경지대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들은 항소 재판을 통해 탈북 난민들이 중국에서 난민지위 부여를 거부당할 뿐 아니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이 지난 1982년에 서명 비준한 UN협약을 위반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강제 송환되면 그 대가는 혹독합니다. 일단 이들에게는 국가를 배신했다는 어마어마한 혐의가 적용되기 때문에 강제노동수용소 등에서 종신형을 살거나 사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중국당국은 체포한 탈북자들을 송환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탈북자 명단에서 삭제한 후 인신매매 조직으로 넘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나 여성들의 경우는 이런 식으로 빼돌려져 조직에 넘겨져 성 노예로 팔려 가는 경우가 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8-10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복음으로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여러분을 교회로 모으셨습니까? 헌금 거두려고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시기 위해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 모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두 번 사는 것 아닙니다. 한번뿐인 인생 돕는 배필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 길을 가야합니다. 도우면서 살다보면 복이 임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내가 혼자 성공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야 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여러분! 내가 헤엄처서 어떻게 미국을 갑니까? 그렇다고 날아갑니까? 그러나 비행기타고 가면 금방 갑니다. 나의 노력으로 못 갑니다. 천국이 미국보다 가깝답디까? 그보다 편히 갈 수 있는 그런 곳에 있답니까? 나의 힘으로 못 갑니다. 그러나 주님 보내주시는 구원의 방주를 타고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예수 그리스를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른 것 도와 주는 것 다 좋지만 천국 가는 길을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설교 : 주앙교회 이영제 목사